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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의 장소의 사색] 비 내리는 고모령

2026.06.03 09:01

폐역사가 된 고모역.


어릴 때 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쪽으로 올라가다 첫 번째 만나는 역이 지천역이고 남쪽 부산 방향으로 내려가다 첫 번째 만나는 역이 고모역이었다. 서울로 갈 일은 별로 없었고 부산으로는 자주 다녔다. 가까운 친척이 부산에 살고 있었고 나중에는 우리 집이 마산으로 이사를 가서 학교가 있는 대구와 집이 있는 마산을 오고 가다 보니 고모역이 친근한 역이 되었다. 대구를 떠나거나 대구로 돌아올 때 "떠나는구나!"와 "돌아오는구나!"를 되새기는 장소가 되었던 까닭이다. 알게 모르게 고모역이 내 내면의 고정석 하나를 차지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어떤 의미 있는 장소 이미지가 정서적 무게를 지니고 주체의 심리 변환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일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물상(物像)들이 주체의 의지와 관계없이 '장엄한 대상 이미지'가 되어 '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그런 '나와 세계를 덮어주는 에로스 지붕'으로 작동하는 물상을 보면 우리는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지거나 차분하게 가라앉거나 감상적이 되거나 흥분하게 된다. 그렇게 환경과의 일체감을 내 몸 안에서 확인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할 때 마을 앞의 정자나 성황당 나무나 솟대 바위, 동구 앞 구불구불한 언덕길 같은 것을 보면서 따듯하게 나를 반겨주는 고향의 정을 선불(先拂)로 미리 받아 챙기듯이 그런 공간 상징들은 언제나 인생의 훈훈한 정감을 고취시켜 주고 삶의 의욕을 부추기는 인생 필수 영양소 구실을 톡톡히 한다.

폐역사 안에 마련된 체험관.
폐역사 체험관에서의 다양한 체험행사.


고모역이 내게 그런 따뜻한 공간 상징 역할을 다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도 꽤 오래되었다. 역사가 폐사가 되어 드나드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의 자태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문득 생각난 김에 한 번 다녀왔다. 역사 안쪽으로 주차할 곳도 마련되어 있어서 차를 세우고 아무 생각 없이 역사 문을 열었더니 깜짝 놀랄만한 정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승객 대합실과 역무원 사무실 공간을 각기 다른 역사 체험관으로 만들어서 꽤나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주는 추억의 공간이었고 어리거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유익한 역사 학습관이 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근무하시는 두 분과 옛날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나왔다. 사진을 몇 장 찍으니 아주 좋아하셨다.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고모역을 나와서 고모령을 넘었다. 인터불고 호텔 앞으로 나오는데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 기념비가 길가에 서 있었다. 목포에 갔더니 유달산 달선각 아래 거창하게 이난영과 문일석을 기념하는 <목포의 눈물> 노래 기념비가 있었다. 그 만큼은 아니지만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 기념비도 제법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내로라하는 장소 상징을 알리고 있어서 작은 위로가 되었다. <목포의 눈물>이 목포의 노래이면서 전 국민의 애창곡인 것처럼 <비 내리는 고모령> 역시 대구의 노래이면서 전 국민의 애창곡이다. <목포의 눈물>과 <비 내리는 고모령>, 이 두 노래만큼 특정 공간의 정서를 노래하면서 우리 민족 전체의 심금을 절절히 울린 노래도 없다.

고모령 남쪽 초입길.


내가 대구 만촌동에서 고모역으로 통하는 그 작은 오솔길이 그리도 유명한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발상지라는 것을 안 것은 고모역이 내 내면의 고정석이 되고 난 한참 뒤의 일이다. 아마 내가 트로트에 취미를 붙여 이 노래를 애창곡으로 즐겨 부르던 2, 30대에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스물대여섯 살 때 광주 보병학교에서 장교 임관 훈련을 받을 시절, 쉬는 시간에 동료들 앞에서 이 노래를 아주 구성지게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인데 그때는 아쉽게도 이런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았더라면 더 잘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인데 고모역과 고모령을 연결시키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비 내리는 고모령이 내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은 특출난 어떤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노래의 첫 소절이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라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젊을 때나 늙을 때나 평생 모성 콤플렉스 중증(重症) 상태의 병인(病人)이라 할 수 있는데, 잡았던 어머니의 손을 놓고 고향을 떠날 때 온 산천초목이(1절에는 부엉새가 대표로 출연한다) 다 함께 울었다는 이 노래의 첫 소절이 그렇게 애달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놓고 고향을 떠날 때의 그 옛날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평생 어머니의 손을 한 번도, 그런 이별의 장면에서 잡았다 놓아본 적이 없었다는 게 너무 서러워서 울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괜히 떼를 쓰는 친구를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고모령 북쪽 초입에 자리잡은 대인베짱 빵가게.


이 고모령 일대가 내게 처음 각인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물론 그때는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노래도 실제 장소 고모령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봄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던 날이었지 싶은데 학교에서 보리베기 행사를 나가는 일이 있었다. 반마다 알려준 버스를 타고 정해진 장소를 향했다. 우리는 동쪽 어드메 끝자락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내렸다. '청기와 주유소'라는 이름을 가진 주유소가 정류장 아래 길 끝에 오똑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언덕 위아래로 호수처럼 푸른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에서 생전 처음 보리를 베어 봤다. 고개를 숙여 열심히 보리를 베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면 캄캄한 어지럼증이 도발적으로 찾아왔다. 고개를 들어 아래쪽을 보니 멀찌감치 기찻길이 흘낏흘낏 보였다. 그 너머는 강이 있다고 옆에서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길은 가늘고 길게 구불구불 철길 너머 어디론가 스며들고 있었는데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큰 강이 흐른다고 하니(낙동강의 지류 금호강이라고 했다)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 세상의 한 끝에 놓여있다는 막연함밖에 없었다. 그 막연했던 느낌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두 해 전에 어머니를 잃고 도망치듯 가난한 아버지를 떠나서 다시 대구로 올라온 나에게 그 낯선 풍경은 너무 푸르고 너무 평화롭고 너무 고요했다. 그 뒤 한동안 그쪽으로는 발걸음을 할 일이 없었다.

그 언덕 위 보리밭 언저리에 국군통합병원이 섰다가 다시 교외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도시의 정반대 쪽에 살다가 그 아파트에 정착하게 되면서 둘째 아이를 옛날 보리베기 시절 얼핏 보았던 그 철길 가에 자리 잡은 신설 고등학교에 보냈다. 밤마다 야간 자습을 끝낸 아이를 태워오면서 한 번씩 그 옛날의 보리 베기를 떠올리곤 했다. 그 철길 건너에 <비 내리는 고모령>에 나오는 실물 고모령(顧母嶺)이 있다는 것을 그때도 몰랐었다. 어느 날 밤 가요무대에서 맹인 가수 이용복씨가 나와서 <비 내리는 고모령>을 구슬프게 부르는 것을 듣다가 불현 듯 그 옛날의 고모역이 생각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고모역이 있는 곳이 바로 고모령 아래라고 나와 있었다. 그 다음 날 혼자서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다. 지금은 인터불고호텔이지만 그때는 파크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고모령 쪽으로 호텔이 있었다(지금은 금호강변으로 호텔건물이 크게 들어서 있다). 대구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수영장, 식당가, 결혼식장이 그 호텔에 있어서 나도 자주 가는 편이었다. 우리 가족의 주된 외식장소가 그 호텔의 중식당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내 애창곡의 발상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고모령은 아주 음전한 고개였다. 추풍령이나 조령처럼 위풍당당한 고갯길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따듯한, 나지막한 고갯길이었다.

그나저나 <비 내리는 고모령>은 역시 이용복 가수 버전이 제 맛이다. 내겐 그렇다.

소설가·대구교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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