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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직격인터뷰] “‘모르겠다’가 점점 늘어…‘1일 1쿠팡’ 못 해도 국회보단 낫더라”

2026.06.03 00:17

류호정 전 의원 인터뷰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을 지난 1일 서울 을지로 중앙일보 오피스에서 만났다. 김경록 기자
" 전직 국회의원, 목수, 내년 4월 4살 연상 변호사와 결혼을 앞두고 계속 오르는 부동산값이 너무 무서운 예비 신부…. "
스물여덟 나이에 군소정당인 정의당 비례 1번을 받아 21대(2020~2024) 국회 최연소 타이틀을 달았던 류호정(34) 전 의원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한국에서 20대 나이에 금배지 다는 일이 흔치 않은 데다, 얼굴 팔린 유명 정치인이 몸 쓰는 전업 육체 노동자가 된 건 아예 처음 보는 생경한 광경이라 그의 선택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일부는 "미래 도모용 또 다른 스펙 만들기"라는 식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그는 근무하던 원목 가구 맞춤 제작업체에서 10개월 만에 퇴사한 뒤에도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인스타그램 주문받아가며 여전히 일을 계속하고 있다.
정치 관두니 막막한 백수 신세
최저임금도 못 버는 초보 목수
쿠팡 알바·불장 덕 생계유지
결혼 목전, 부동산 급등 무서워

의원 시절엔 정치가 삶의 전부였다. 어렵게 성사된 소개팅에서도 정당 대변인처럼 정치 얘기만 하다 다 망칠 정도였다. 이젠 정반대다. 고양이가 그의 알고리즘을 지배할 만큼 정치와 담쌓았다.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갈 마음? 전혀 없다.
그런데 6·3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일 서울 을지로 중앙일보 오피스에서 만났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이런 말도 했다. "모두 정치를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 기성 정치인 탓해봐야 달라질 건 없고, 결국 정치를 바꾸는 건 시민의 투표다. 설령 지지 후보가 낙선해도 내 한 표는 더 나은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계속 존재하게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사표(死票)란 없다. " 차악도 아닌 차차악 고르기 싫어 아예 기권하겠다는 많은 유권자 귀엔 하나 마나 한 교과서적인 말로 들릴 거다. 하지만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긴 2시간여 대화를 나눈 뒤라서인지 나는 묘하게 수긍이 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안혜리 논설위원

Q : -정치를 왜 그만뒀나.
A : 이 얘기에 앞서 정치를 통해 뭘 하고 싶었는지부터 말하고 싶다. 국회에 들어가 보니 1, 2등만 번갈아 권력 잡는 양당제 독과점을 깨지 않고는 정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 지나친 진영 대립도 문제지만, 두 당이 침묵하면 중요한 일도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걸 너무 많이 봤다. 가령 당시 우리 사회는 이미 온라인 플랫폼이 지배하는 방향으로 가는데, 시대 못 읽고 오프라인 대형마트 휴일 규제 얘기만 하더라. 이런 현실과 정치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양당제 극복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교섭단체(20석)는커녕 입법 발의 요건(10명)도 안 되는 군소정당에 있다 보니 모든 정치 행위가 메시지 던지기에 그친다. 매일 이른 새벽 국회 목욕탕 가서 양당 다선 의원들한테 다가가 인사하는 등 사회생활 열심히 하면, 발의까지는 어찌어찌 해도 법안 통과는 안 된다. 정당 목적이 뭔가. 권력을 획득해 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 바꿔나가는 데 있지 않나. 적지만 필요하다는 의미로 지지자들이 정의당을 '소금 정당'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참 싫었다. 난 소금 말고 주식, 쌀밥이 되고 싶었다. 더 커질 방법을 늘 생각하다, 의원직 후반에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이 모인 곳(개혁신당)에 갔다. 막상 부딪혀보니 돈이 장벽이었다. 사는 집 보증금까지 다 합해봐야 1억~2억원이 전부인 나로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24년 2월 개혁신당으로 옮겨 성남 분당갑 출마 선언을 한 지 한 달 만에 후보등록을 포기하고 정계를 떠났다.
22대 총선을 앞둔 2024년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을 탈당해 개혁신당 성남 분당갑 후보로 공천받았으나 돈이 없어 출마를 포기했다. 포기 직전인 3월 서현역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Q : -돈? 후원금 모금이나 선거비 보전이 있는데.
A : 이런 제도가 오히려 정당 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고, 정치 신인의 국회 진출을 막는다. 당선되거나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 전액을 보전해주니까 거대 양당 후보는 사실상 공짜로 선거를 치른다. 반대로 10%(10% 미만은 선거비 보전 0원) 넘기 어려운 군소정당은 당 지원이나 추후 보전마저 기대하기 어렵기에 자기 돈만으로 치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유세차 한 대 2000만원, 건물에 대형 현수막 하나 거는 데도 1500만원…. 물론 생략하면 그만이지만, 다 없애면 선거가 아니지 않나.

Q : -여느 젊은 정치인들처럼 'N잡' 뛰며 훗날 도모할 생각은 안 했나.
A :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야 한다. 정치하려고 짬짬이 하는 직업? 그건 그 직업을 전업 삼는 분들한테 자칫 모욕일 수 있다. 이 직업으로 치열하게 성과 내서 살아남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선택하면 안 된다. 그게 의원 시절부터 얘기하던 내 방식의 노동 존중이다. 청년 할당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늘 노동을 얘기했던 정치인이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가 국민에게 해야 할 남은 AS다.

Q : -의원에서 목수, 신분 급전직하로 느낄 법도 한데.
A : 전혀. 직업 전환으로만 생각했다. 의원 시작 무렵부터 국회의원이 워낙 갑이고 혜택이 많다 보니 4년 지나 재선 안 되면 사람이 피폐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말자 다짐했다. 허파에 바람 들면 남은 생이 불행하다, 내 행복을 위해서라도 절대 그러지 말자 싶었다. 사실 나만의 돈 개념도 한몫했다. 정치 입문 전부터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최소 생활비를 따졌다. 최저임금(2026년 기준 주 40시간 환산 월 215만6880원)보다 좀 낮은 150만원만 매달 고정적으로 벌면 간간이 알바 뛰기만 해도 월세에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 사룟값, 가끔 친구와의 식사 약속 정도는 감당하며 불행하지 않게 살 자신이 있었다.
지난 2020년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국감에서 배선 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질의하는 류호정 의원. 막상 노동자가 되보니 기업과 노동 양측 모두 이해가 된다고 했다. 뉴스1

Q : -노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
A : 크게 바뀐 건 없지만 현장 경험을 할수록 "잘 모르겠다" 가 늘어간다. 예컨대 중대재해처벌법을 놓고 기업은 '비용이 너무 든다'고 하소연하고, 노동계는 '그럼 죽으란 말이냐, 안전은 양보 못 한다'고 맞선다. 대립하다 서로를 악마화한다. 이젠 양측 입장 모두 이해 간다. 비용과 절차가 추가되면 공사 진행이 힘들다. 공사 기간 늘면 비용이 더 드니까 현장에선 빨리빨리 속도를 내려 하고 그 과정에서 놓치는 안전수칙이 있다. 무조건 처벌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많은데 솔직히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정치권이 늘 하듯 "현실 모르네" "생명 경시하네"라며 의견 다른 상대를 적대시하며 비난하기만 해서는 현장이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안다.

Q : -중대재해처벌법에 더해 삼성전자 성과급을 계기로 노란봉투법도 논란이다.
A : 의원 시절 두 법안 모두 찬성 입장에 서서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없는 노동 약자들 상황을 얘기하면서 국민을 설득했다. 막상 법 통과 후 벌어진 현상을 보니, 의도와 달리 보호 못 받던 사각지대는 계속 사각지대로 남은 채 원래 견고한 성 안에 있던 대기업 정규직만 더 견고한 성을 쌓도록 돕고 있더라. 양극화가 심해져 다들 전보다 더한 각자도생에 내몰렸다. 아쉽다. 좀 다른 얘기지만 법 처벌 아닌 사회의 신뢰, 입법 아닌 행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은데 법조인 출신이 많아서인지 국회에선 사람 존중은 온데간데없고 뭐든 "법대로 해결하자"며 자기 당 의원들 줄 세우고 의석수로 상대 당 찍어눌러 자기편만 좋아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이 역시 양당제 폐해다.
개인사업자가 된 지금도 근무했던 남양주 목공소에 월세 내고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사진 류호정]

Q : -사는 얘기로 돌아와, 왜 목수였나.
A : 문과 출신(이화여대 사회학·사학 전공)에다 정치 입문 전 IT기업 기획자로 일했기에 늘 미래가 불안했다. 직업 재선택을 할 수 있다면 AI 위협이 덜한 기술직을 하겠다 마음먹었는데, 그 기회가 진짜 왔다. 그래서 출마 포기로 청년 백수가 됐을 때 고용노동부의 국민내일배움카드 찬스를 써서 목공 기술을 배웠다. 직업 훈련 프로그램인데, 자재·공구를 살 필요 없이 6개월 동안 주5일 '9 to 6' 전일제 수업 비용 수백만 원을 지원받는다.

Q : -목수로 생계가 유지되나.
A : 교육 직후 직원 5명 영세업체에서 최저임금 받고 근무했는데, 그마저도 건설 경기 불황이라 10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잘렸다. 개인사업자 등록하면서 '만약 최저임금도 못 벌면 쿠팡 알바로 생활비 벌겠다'고 계획했다. 단기 야간 알바해보니 한 번 심야 근무로 10만원은 벌더라. 이 경험을 토대로 '1 쿠팡=10만원'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1일 1 쿠팡, 그러니까 한 달 동안 가구 만들어 팔면 최소 20 쿠팡은 벌어야 내 몫을 하는 건데, 지금 생산성은 쿠팡에 지고 있다. 얼른 쿠팡을 이기고 싶다. 여담인데, 신문 칼럼에 쿠팡 알바 쓴 걸 보고 지난 2월 친한 언니가 "차라리 주식하라"며 선뜻 빌려준 2000만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불장에 올라탄 덕분에 지금은 생활비 걱정 없이 사업에 더 집중하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해 단기 알바 했던 쿠팡에서 찍은 사진. 류호정 전 의원은 "난 생계에 도움 받았지만 '패닉 쿠팡'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먼저지, 당장 돈 없다고 무조건 쿠팡부터 달려가지는 말라는 얘기다. [사진 류호정]

Q : -결혼 준비는 얼마나 했나.
A : 일단 대관료 20만원인 국회의사당 예식장은 잡았다. 아이돌 공연 티케팅하듯이 대관 공지 뜨는 시간 맞춰 PC방 가서 시간 띄워놓고 예약했다. 남자친구가 전문직이긴 해도 아주 부자는 아니라 서울 서초나 경기도 분당의 빌라 반지하 월세를 찾고 있다. 부동산값 급등 여파가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까지 밀려오다 보니 여의치 않다.

Q : -마지막으로 청년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 꼰대질 느낌이라 굳이. 다만 모든 유권자가 좋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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