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필리지수 94% 질주에 불붙은 ‘거품 붕괴’ 논쟁 [트럼프 스톡커]
2026.06.03 09:07
반도체주, 연일 랠리...‘신고가’ 나스닥도 압도
데이터센터 투자, AI 에이전트 진화에 초호황
월가에선 칩 공급난에도 불황 주기 논란 ‘솔솔’
“닷컴버블처럼 일부만 최고가...긴축 땐 붕괴”
손정의 “조정은 투자 기회”...갑론을박 가열
젠슨 황 한마디에 반도체주 또 급등...올 들어 ‘최고가 행진’ 나스닥·S&P500 수익률 압도
이날도 뉴욕 증시의 상승세를 이끈 업종은 단연 AI 반도체 관련주였다. 기업용 클라우드·서버·저장장치 기업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가 전날 AI 서버 수요 확대로 깜짝 실적을 공개한 것이 장 초반 관련주의 주가 상승에 불을 지폈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는 이날 19.47%나 급등했다.
여기에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IT) 박람회 ‘컴퓨텍스’에서 마벨테크놀로지의 매튜 머피 CEO를 향해 “1조 달러 가치가 될 다음 번 기업”이라고 언급한 소식이 전해지자 AI 반도체주는 한 차례 더 가파르게 올랐다. 마벨은 클라우드 컴퓨팅(연산 능력), 5세대(5G) 이동통신망 등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기반시설)에 사용되는 고성능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다. 황 CEO는 “마벨의 칩은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고, 마벨의 주가는 단숨에 32.52%나 치솟았다. 전날까지 2000억 달러에 못 미쳤던 마벨의 시가총액도 하루 만에 2544억 달러(약 386조 원)으로 늘었다.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 열기가 식지 않으며 브로드컴(4.70%), 마이크론(2.76%), AMD(2.24%), 퀄컴(5.17%) 등 다른 종목들도 강세를 보였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5.87%나 솟구쳤다. 사실상 AI 호재에 옷깃만 스쳐도 폭발적인 오름세를 보이는 형국이다.
반도체주의 고공행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AI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 심리가 중동 전쟁이라는 최근의 메가톤급 악재까지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올 들어 이날까지 93.80%나 올라 연일 신고가를 쓰는 나스닥지수(16.57%), S&P500지수(11.17%)의 수익률을 압도하고 있다. 아니, 바꿔 말하면 나스닥과 S&P500지수가 반도체 업종의 오름세로 최고가를 쓰고 있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개별 종목만 보더라도 마이크론(272.83%), 샌디스크(226.87%), 인텔(192.49%), AMD(143.53%), 퀄컴(40.80%), 브로드컴(39.17%), 엔비디아(19.47%) 등 주요 기업들이 모두 올해 시장 지수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 부는 반도체 바람은 바다 건너 한국의 SK하이닉스(000660)(262.52%), 삼성전자(005930)(200.67%)와 코스피지수의 최고치 행진에도 힘을 싣고 있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6일과 27일 나란히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이퍼스케일러 투자에 AI 에이전트 진화로 칩 공급난...월가에선 불황 사이클 논란 ‘솔솔’
최전방 산업인 AI 모델이 질문에 단순히 답변하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업무 도우미)로 진화하는 점도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AI 가속기 시장에서도 엔비디아의 고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해지자 인텔, AMD 등 중앙처리장치(CPU) 업체들까지 줄줄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PC 제조사인 델은 대표적인 AI 서버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고,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인 램리서치와 KLA도 몸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반도체 종목들이 AI 투자 열풍 덕에 닷컴버블 시대 이래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의 경우는 닷컴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9년 이후 최고의 연간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헤지펀드 밸류웍스의 찰스 레모니데스 설립자는 FT 인터뷰에서 “하이퍼스케일러의 칩 수요는 확실히 정착한 상태이고 반도체 기업들은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다”며 “이런 호황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로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갑자기 투자 규모를 줄일 경우다. 이 경우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꺾이면서 장기 호황이 반영된 관련주 주가들도 조정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주 투자 열풍이 멈출 줄을 모르자 월가와 주요 외신에서도 과열된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블룸버그통신은 마이크론의 주가가 이례적인 강세 흐름을 지속하면서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AI 거품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거품 논란은 이전과 달리 메모리반도체 수요 폭증이 AI 혁명에 따른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게 맞는지 여부를 두고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부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불과 3년 전인 2023년만 해도 나란히 적자를 기록해 위기론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미국 투자회사 리버웰스 어드바이저의 에드 오고먼 CEO는 “반도체 업종의 변동성이 얼마나 심한지, 훌륭해 보였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얼마나 급변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며 “자본지출의 절대 규모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정체기를 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밝혔다.
“닷컴버블 때처럼 20개 종목만 최고가 경신...연준 긴축하면 탐욕의 거품 붕괴할 수도”
미국 투자은행(IB) 오펜하이머의 아리 왈드 애널리스트도 지난달 23일 보고서에서 “4월 초 급등 이후 증시 내부 지표들이 후행하고 있다”고 짚었다. 투자조사 업체 BCA리서치도 같은 날 보고서에서 “미국과 신흥국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상승세는 극히 소수 종목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며 “이처럼 좁은 시장 폭은 종종 기저에 있는 주식 시장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31일 블룸버그통신 역시 마이크론의 12개월 선행 주가이익비율(PER)이 10배 언저리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평균 주가이익비율(27배)보다 매우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가가 싸다는 평가를 내리려면 현 호황이 지속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스파크라인캐피털의 카이 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AI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달렸다”며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뉴욕경제클럽 강연에서 현 금융시장 투자 환경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공포보다 탐욕이 더 많은 상황에 놓여 있다”며 “시장 분위기가 공포로 매우 빠르게 돌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솔로몬 CEO는 그러면서도 “세계가 낙관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 금융 시스템 내에 유동성은 충분하다”며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 등 기술기업들의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솔로몬 CEO는 알파벳이 전날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800억 달러(약 120조원)의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이날 주가 하락 폭이 3.86%에 그친 점을 거론하면서 “시장이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할 의지가 있음을 가리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손정의 “약간의 조정은 최고의 투자 기회”...랠리 이어질수록 갑론을박 거세질 듯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달 26일 스위스계 IB UBS도 마이크론의 목표주가를 기존 535달러에서 1625달러로 높이면서 “AI가 메모리반도체 산업 전반에 가져온 구조적 변화의 내용이 구체화될수록 마이크론에 대한 ‘재평가(re-rate)’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 폴라캐피털의 조리 노데카에르 글로벌 신흥·아시아시장 부문 대표도 “나는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하는 진영에 속하지는 않지만, ‘더 오래 높게’ 진영에는 확고히 속한다”며 “HBM으로의 진화로 공급 측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고, 수요도 견고하게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AI 투자 낙관론자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 또한 1일 CNBC 인터뷰에서 “AI 혁명은 닷컴버블보다 10배 이상, 어쩌면 50배는 더 클 것”이라며 “닷컴버블도 고통스러운 일시적 타격이었을 뿐 더 큰 장기 성장을 앞둔 작은 장애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닷컴버블 시기에 전 세계 1위 부자 자리까지 올랐다가 거품 붕괴 이후 전 재산의 99%를 날린 인물이다. 손 회장은 이후 통신·인터넷 기업 투자로 다시 일어서서 중국 알리바바, 미국계 한국 기업 쿠팡의 성공 신화를 측면 지원했다.
손 회장은 지금도 오픈AI에 투자자금를 몰아주면서 5년간 5000억 달러(약 750조 원)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프랑스에 750억 유로(약 132조 원)를 투입해 5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손 회장은 “약간의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곧 최고의 투자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며 “오픈AI가 투자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낙관했다.
AI 관련 반도체주의 랠리가 더 이어질수록 월가 내 거품론 논쟁은 더 뜨겁게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는 업황 주기의 도래를 피할 수 없는 업종인 만큼 불황에 대비하는 월가의 눈치 싸움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AI 시대에 HBM의 독보적인 수요가 얼마나 지탱이 될지, 장기 공급계약의 효과가 불황 사이클을 얼마나 희석할지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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