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지고 생사 넘나드는 투우의 세계…영화 '고독의 오후'
2026.06.03 08:31
[필름다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스페인의 전통문화 투우는 세계적인 유명세만큼이나 논쟁적이다. 성난 황소를 마주한 데서 비롯되는 스릴감은 관객의 열광을 자아내지만, 황소를 성나게 하기 위해 칼로 찌르고 종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인함은 동물 학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큐멘터리 영화 '고독의 오후'는 여러 얼굴을 지닌 투우의 세계를 닮았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전시되는 가운데 보는 이들을 매혹하는 순간들이 있다.
영화는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를 좇으며 관객을 투우의 세계로 초대한다. 로카 레이가 혼자 입기 힘든 투우사 옷을 조수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착용하는 모습부터 투우장으로 이동하는 그의 긴장한 얼굴, 경기 전 팬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등이 나온다. 영화는 로카 레이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무선 핀마이크를 달아 그들의 말과 숨소리까지 세심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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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 레이의 투우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서 매혹적인 순간들을 선사한다. 잔뜩 흥분한 황소가 투우장 모랫바닥이 울릴 정도로 묵직하게 돌아다니고 투우사들은 망토를 들고 황소를 대적한다. 로카 레이가 망토로 황소를 유인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은 그 어떤 영화보다 긴장감 있다. 황소의 뿔에 부딪힐 위험을 감수하는 투우사와 종국엔 죽음을 맞이할 황소가 생사를 걸고 빚어내는 순간들이다. 영화는 황소와 투우사를 화면에 타이트하게 잡는 촬영으로 투우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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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러면서도 투우에 수반되는 폭력을 놓치지 않는다. 황소를 흥분시키기 위해 투우사들이 연이어 칼로 찌르는 장면, 그에 따라 끓는 듯한 붉은 피가 황소의 몸을 타고 흐르는 장면, 투우 마지막에 이르러 일격을 당한 황소의 표정까지 폭력의 순간들이 전시된다. 이는 관객이 투우에 끌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를 바라보게 한다. 피가 묻은 로카 레이의 모습은 매혹적인 이미지이지만, 그 안에 내재한 폭력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투우장에 들어서기 전 소의 큰 눈망울은 보는 이의 머릿속에 잔영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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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사에게 경배를'(2006), '내 죽음의 이야기'(2013) 등을 만든 스페인의 알베르 세라 감독이 연출했다. 세라 감독은 2년에 걸쳐 로카 레이를 따라다니며 촬영한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는 2024년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최고상인 '황금조개상'을 받았고, 프랑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2025년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세라 감독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며 "투우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 폭력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거나 영적인 측면,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 유머와 아이러니, 나아가 우스꽝스러움까지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3일 개봉. 126분.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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