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 헌재가 요청한 ‘재판소원 1호’ 의견서 안 내기로
2026.06.03 05:01
“재판의 중립성 침해 우려" 분석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첫 재판소원 심판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2일 알려졌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대법원 판결 이유를 헌재에 해명하면 재판의 중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지난 4월 28일 녹십자가 청구한 ‘백신 담합 과징금’ 재판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재판소원 도입 후 전원재판부에 올린 첫 사건이었다. 헌재는 그 이튿날 대법원장에게 이런 내용의 심판통지서를 보내며 ‘답변할 사항이 있으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답변서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헌재의 통지서는 지난달 4일 대법원에 도착했다. 대법원은 이달 4일까지 답변서를 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제출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녹십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되자 이에 불복해 낸 재판소원이다. 녹십자는 대법원이 담합 혐의(공정거래법 위반 등) 관련 형사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확정했으면서, 과징금 행정소송에서는 본안 심사도 없이 패소를 확정(심리 불속행 기각)해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법원에선 대법원이 재판소원과 관련한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할 경우 재판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한다. 법원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 사건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이 원고(녹십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답변서를 헌재에 낼 경우, 자칫 행정소송의 상대방이었던 피고(공정거래위원회) 편에 서서 변호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가 만일 녹십자가 낸 재판소원을 인용할 경우 대법원이 제출한 답변서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법원 내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녹십자 주장을 받아들여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면, 대법원은 헌재 결정의 취지를 반영해 다시 재판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이 재판소원 심리 과정에서 기존 판결이 정당하다는 내용을 담은 답변서를 헌재에 낼 경우, 다시 재판할 때 중립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심리 불속행으로 기각하는 사건을 결코 대충 심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최소한의 답변은 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답변서 제출 여부가 대법원과 헌재의 기싸움을 보여준다는 관측도 나왔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답변서를 내면 대법원장이 헌재의 심판을 받는 일방 당사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녹십자 사건을 포함해 이날까지 재판소원 6건을 정식 심판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나머지 5건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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