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삼전 또 올랐어"…지수는 사상 최고인데 왜 내 계좌만 파랄까
2026.06.03 06:08
[파이낸셜뉴스] 코스피가 8900선을 돌파한 날, 직장인 김모씨(43)의 단체 채팅방에 또 인증샷이 떴다. "삼전 36만원"
김씨 계좌엔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없다. '코스피 사상 최고치' 속보를 보며 김씨는 생각한다. '다들 버는데 나만 못 벌었네.'
그런데 이 말, 절반만 맞다. 2일 코스피는 사상 첫 8900선을 돌파했지만 반도체, AI 관련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약세였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지난 1일 대만 GTC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4를 탑재한다고 직접 언급한 것이 방아쇠였다. 한국 메모리 업체가 차세대 공급망을 선점했다는 신호에 삼성전자는 지난 1일 10.41% 오른 35만원에 마감했고, 시총은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지수를 끌어올린 건 '시장 전체'가 아니라 덩치 큰 몇 종목뿐이었다. 김씨 동료가 번 돈과 김씨가 못 번 돈은, 사실 같은 시장 얘기가 아니다.
■8800은 누가 만들었나…'반에서 두 명만 100점'
지난달 29일 코스피가 3.55% 폭등하던 날, 오른 종목은 206개, 떨어진 종목은 688개였다. 셋 중 둘이 빠졌는데 지수는 신고가였다. 반 평균은 올랐는데 알고 보니 두세 명이 100점 맞고 나머지는 낙제한 시험과 같다. 평균만 보면 '다 잘했네' 싶지만, 대부분의 성적표는 처참했다.
돈 흐름은 더 대놓고 그렇다. 연초 이후 이달 1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22조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 '먹튀'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리밸런싱이 이유라고 하지만, 장투를 할만큼 한국 주식이 매력이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연달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가를 올리고 있다. 주변에서는 '돈이 갈 곳은 이제 한정되어 있다'며 주식 포모(FOMO·나만 뒤처진다는 불안)를 부추긴다.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경쟁도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ETF가 대중화되며 저변은 넓어졌지만 쏠림과 변동성도 같이 커졌다"고 말했다. 분산하려고 산 ETF가 거꾸로 한 종목에 몰빵하게 만드는 역설이다. 외국인 자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산다는 건 사실상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산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거 버블인가 vs 아니다
당연히 나오는 질문이다. 지수가 8800선을 넘고 삼성전자 시총이 2000조원을 돌파하자 '버블 아니냐'는 경계론도 같이 커졌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답이 갈리는데, 갈리는 지점이 흥미롭다.
강세론자들은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지금 코스피가 역사상 가장 강했던 1986~1989년 3저 호황보다 더 빠르고 강한데, 그 중심에 AI 투자에서 비롯된 실적 추정치 상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주가만 오른 게 아니라 '벌어들일 돈' 전망치가 더 빨리 올라 오히려 밸류에이션 부담은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연말 타깃을 9750p 상향 조정한다"면서 "비반도체 업종도 머니 무브에 강세를 나타내는 등 강세장(Bull)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1만2000포인트가 상단이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번 반도체 랠리를 2000년 IT버블과 비교하는 시각도 나온다. 흥미로운 건 단순 비교가 아니라, "오히려 아직 끝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이제 끝물"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게 시장의 고민이다. KB증권은 버블이 오히려 주도주의 생명 연장을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역사에 남는 '아웃라이어(극단적 상승)'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의 주가 상승률은 역사상 한번도 가보지 못한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버블은 주도주의 생명연장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여기에 AI 투자 확대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와 개인 수급까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은 랠리를 더 길게 끌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대편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 애널리스트가 "반도체 빼면 실제론 지수 4100"이라는 기고문을 내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금의 8800은 반도체 두세 종목이 만든 착시이고, 걷어내면 시장의 민낯은 절반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본 '셋 중 둘은 떨어진 장'과 정확히 같은 얘기다.
이에 투자자들은 "그럼 뉴욕증시도 엔비디아·애플·메타 다 빼야 하느냐", "잡채밥에서 잡채 빼라는 얘기냐"며 받아쳤다. 핵심 종목이 시장을 끌고 가는 건 미국도 같은데 왜 한국만 문제 삼느냐는 반박이다.
■이 장세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제 시장은 버블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에 주목하고 있다. 버블은 단지 크게 올랐다고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다. 풍선은 크게 불었다고 저절로 터지지 않는다. 누군가 바늘로 찌르거나, 바람 넣던 사람이 손을 떼야 터진다.
그래서 시장이 진짜 봐야 하는 건 숫자보다 신호다. 경기 둔화, 금리의 되돌릴 수 없는 상승, AI 기업들의 자금조달 실패 같은 전조들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더 오르나"보다 "버블을 떠받치는 힘이 유지되느냐"에 가깝다.
다만 지금부터 시장이 달라진다는 경고도 나온다. 상승 초반은 "사지 못한 사람이 후회하는 장"이었다면, 중후반부는 "들고 있어도 불안한 장"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이 바뀌며 투자자들을 흔들고 있다. 상승 추세 속에서도 큰 조정이 반복되며, 지금이 고점인지 추가 상승의 시작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구간이 수차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히려 지나친 단기 매매가 수익률을 깎아먹는 역설도 나타난다. 오르는 날엔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는 조바심을, 빠지는 날엔 "조금만 더 기다렸다 바닥에서 사야지"라는 욕심을 동시에 자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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