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용기'인데 통장 잔고도 지켜줍니다
2026.06.03 06:51
"5분만 기다리세요."
"저... 용기를 가져왔는데... 담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만두를 포장하면서 싱크대 안에 잠든 밀폐 용기 두 개를 내밀었다. 혹시라도 유난스러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장님은 흔쾌히 내 용기를 받아주셨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5분 벨이 울리자 사장님은 두 겹의 두툼한 장갑을 끼고 김이 펄펄 나는 만두 3인분을 두 개의 용기에 나눠 담으셨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솥뚜껑을 여시더니 뽀얀 찐빵 두 개도 함께 넣어주셨다. 용기를 가져왔으니, 찐빵은 서비스라고 하셨다.
'어머나~' 찐빵 두 개에 기분이 날아갔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께 별 다섯 개 짜리 칭찬 도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게 다 나의 랜선 글 친구, '용기 여사' 덕분이었다. 용기 여사, 그녀는 누구인가.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만난 에세이 작가이자 <오마이뉴스>에서 활약 중인 김효숙 시기자다. '용기 여사'는 김효숙 작가의 책 속 닉네임이다.
커피숍 텀블러는 기본, 장례식장 갈 때도
| ▲ 용기 있는 생활 따끈따끈한 신간이 나왔어요 |
| ⓒ 이인자 |
5월 24일, 그녀의 첫 책 <용기 있는 생활>이 내 손에 도착했다. 막 가마솥에서 쪄낸 만두처럼 뜨끈뜨끈한 신간이다. 처음 읽는 글은 아니었다. 한때 이 책은 '용기 내 볼까요'라는 김효숙 작가의 브런치 연재 글이었다. 매주 한 편씩 글이 올라올 때마다 본방사수하듯 빠짐없이 읽었다. 그런데도 책으로 만나니, 반가웠다.
'용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용기가 물건을 담는 용기(容器)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갱년기 중년 여성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삶의 용기(勇氣)인 줄로만 알았다. 용기가 그 용기였다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참 신선했다. 도대체 용기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그 한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끝도 없는 용기가 그녀의 글에서 쏟아졌다.
커피숍 텀블러는 기본이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서는 남은 음식을 담아 오기 위해 용기를 필수로 지참했다. 심지어 장례식장에 갈 때도 개인 수저통을 챙겨가는 그녀가 조금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글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 곳에서나 용기를 들이미는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 바뀌지 않는다'라는 삐딱한 마음이 내 안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 속에 담긴 용기에 대한 진심 덕분에 삐딱한 내 마음이 수평을 맞추기 시작했다.
가을마저 여름처럼 푹푹 찌던 어느 날, 그녀는 기후 위기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코앞까지 닥쳐왔음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러다 2023년 8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환경 전문가 윤순진 교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거창한 구호 대신 '우리 각자가 생활 속에서 당장 할 수 있는 환경 실천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건 장바구니 속 일회용품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와 식탁 위에 펼쳐 놓으니, 자신이 산 것이 먹을 찬거리인지 아니면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쓰레기 무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싱크대 깊숙이 잠들어 있던 밀폐 용기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아파트 알뜰장에도, 동네 정육점에도, 단골 음식점에도 가져간다.
처음에는 위생상 곤란하다며 손사래를 치던 시장 상인들도, 지치지 않는 그녀의 '용기'에 결국 감동하고 만다. 장날마다 뜨끈한 선짓국을 팔던 상인은 매번 플라스틱 용기를 챙겨 오는 용기 여사에게 다음엔 아예 냄비를 가져오라며 제안을 건네기도 한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비닐봉지값을 아꼈다며 과일을 한두 개씩 더 얹어주기도 한다.
용기 여사가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한 것은 비단 용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버려지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고 결심하고, 다 쓴 치약 튜브 끝을 가위로 싹둑 잘라 남은 한 톨까지 긁어 썼다. 도수가 맞지 않게 된 안경도 렌즈만 갈아 끼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선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낡은 옷을 수선해 입었다. 그런 그녀가 자린고비와 다른 점은 절약의 목적이 자신의 통장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
| ▲ 만두와 찐빵 용기를 가져갔더니, 찐빵을 선물로 받았다 |
| ⓒ 이인자 |
다가오는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다.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해 국제 사회가 함께 노력하자는 뜻으로 만든 뜻깊은 날이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각종 환경 캠페인이 시작되고, 관련 대회도 줄줄이 열린다. 한 조각 남은 빙하 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극곰을 보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만 막상 내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일회용품만이 주는 절대적인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읽고 나면 맹숭맹숭했던 마음을 오색찬란하게 물들이는 책, 마음에 고여 있던 눈물 풍선을 '펑' 하고 터트려주는 책. 그리고 머뭇거리던 마음을 움직여 한 발자국 이라도 나아가게 하는 책. <용기 있는 생활>은 맨 후자의 책이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만둣집에 용기를 가져갈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조만간 있을 회식 자리에도 용기 하나를 챙겨갈 생각이다. 남은 치킨 한두 조각이 있다면 집으로 가져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에어프라이어를 통해 갓 튀긴 치킨으로 거듭나는 소소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무엇보다 함부로 버리지 않는 착한 습관을 가져보고 싶다.
용기 여사는 말한다. 용기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꺼내는 것이라고. 혹시라도 어떤 마음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용기 있는 생활>을 펼쳐, 용기 여사를 따라 해보자. 뜨거워진 지구의 온도는 낮아지고, 지구를 향한 마음은 갓 쪄낸 만두처럼 뜨끈뜨끈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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