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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나기도 전 덮친 폭염… 기후·에너지 ‘복합 위기’ 왔다[페트로-일렉트로]

2026.06.02 18:01

최근 인도 카슈미르에서 한 소년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분수대로 뛰어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해협이 통제된 지 벌써 100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봄의 초입에 시작한 전쟁이 초여름까지 이어진 형국인데요.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나쁜 시나리오에 속하지만, 기후변화 영향으로 앞당겨진 폭염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중동발 에너지 공급 불안으로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급등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 연료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폭염 대응 여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6월인데 벌써 열대야

6월로 접어든 지금, 벌써 많이 덥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지난달 30일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 날인 31일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발생했는데요. 2019년(5월 24일), 2014년(5월 29일) 이후 역대 세 번째로 이른 열대야라고 하네요. 전남 완도(일최고기온 32.6도)와 충남 홍성(31.6도)에서는 지난달 31일 관측 이래 5월 최고기온 신기록이 세워졌고요. 서울 역시 예년보다 4도 이상 기온이 높은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옆 나라 일본은 지난달 중순부터 규슈에서 간토 지방까지 낮 기온이 30도를 넘었고요. 유럽과 북미 역시 이미 한여름 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심각한 폭염이 덮친 곳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이 있는 남아시아입니다. 이곳 일부 지역은 지난달 이미 섭씨 45도를 넘었다고 하는데요. 남아시아는 적도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상식적으로 상승하는 엘니뇨 현상과 맞물려 말 그대로 살인적인 폭염과 싸우고 있습니다.

6월 초 때이른 폭염이 덮친 나라들. 출처: 비영리 기후과학 단체 ‘기후 중심(Climate Central)’
“전력 수요, 경제가 아니라 ‘냉방’이 결정”

문제는 중동발 에너지 공급 불안이 각국의 전력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국가는 실제 연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다른 국가들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 부담을 떠안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폭염이 찾아왔을 때 충분한 냉방을 위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죠.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위기 대응 조치를 도입한 국가는 5월 말 현재 109개국이라고 합니다. 차량 운행 또는 이동 제한, 에너지 소비 절감 같은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것인데요. 차량 2부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죠. 에너지 긴급 대응 조치는 이전보다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폭염이 가장 심한 것으로 평가되는 남아시아를 한 번 살펴볼까요? 수입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은 호르무즈해협 통제 이후 에너지 조달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국제 LNG 가격 상승과 공급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연료 확보 비용이 급등했고, 일부 국가는 실제 물량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재택근무, 공무원의 해외 이동 금지 등 비상 조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냉방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추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에서 폭염이 겹치자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는데요. 전력 생산 구조에서 LNG와 석유 비중이 높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중동발 공급 불안과 국제 LNG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전력 조달 부담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경우 석탄 발전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아 기저 전력 공급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지만, 수요 정점(피크)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유연성 전원의 제약이 문제입니다. 인도 매체 아웃룩비즈니스에 따르면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정점을 찍는 수가 늘어나면서 인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노후한 송배전 인프라까지 겹치면서 전력 공급 능력이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웃룩비즈니스는 “경제 성장 전망보다 냉방 수요가 인도의 전력 수요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 에너지 ‘비상 조치’ 나선 나라들 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2026년 에너지 위기 정책 대응 현황’

韓, 정전 위험보다 ‘가격 충격’

신흥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전력 부족 사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데요. 일본의 경우 LNG 발전 의존도가 대략 30%로 높은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 통제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 상황을 악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올 여름 안정적인 전력 예비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가격, 즉 전기요금에서는 이미 중동 에너지 위기 여파가 현실화했는데요. 일본의 10대 대형 전력회사 가운데 9곳이 6월부터 가정용 전기요금을 최대 91엔까지 인상하기로 했고요. 4대 대형 도시가스 회사들도 20~24엔가량 가스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일본 정부는 냉방 수요가 집중되는 7~9월 전기·요금 보조금을 다시 지급해 소비자 부담을 일부 완화한다는 계획입니다.

다음으로 궁금하실 부분은 아마 ‘그럼 우리나라는 괜찮은 거야?’ 일 것 같은데요. 한국도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과 LNG 및 원유 스왑(상호 대여 제도) 협력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죠. 한국 역시 LNG를 유연성 전원으로 삼아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는 만큼 LNG 물량을 확보해 대처에 나선 겁니다. 또 한국이 일본과 가장 큰 차이점은 30%에 달하는 원전 비중이죠. 원전이 전력 안정성의 버팀목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격 위기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국내 발전용 가스요금도 미·이란 전쟁 기간인 지난 3개월 사이 약 20% 가까이 인상됐습니다. LNG 발전이 전력도매가격(SMP)을 결정하는 기준 발전원 역할을 하는 만큼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공요금을 올 상반기 동결한 상황이죠. 전기요금에 비싸진 연료비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 하에서 한전의 재무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입니다. 국내 전기요금 문제는 첨예한 이슈인만큼 차후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유통가가 예년보다 빠르게 ‘여름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시내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 여름냉방용 제품 모습. 연합뉴스
‘냉방이 곧 에너지 안보’

정리해보면 이번 사태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이 더 이상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염은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고, 에너지 공급 불안은 냉방 여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죠.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충격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시대가 본격화했음을 시사합니다. 올 여름 각국은 이 같은 복합 위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냉방은 폭염이라는, 당장의 기후적 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응급 조치에 해당하죠. 그런데 동시에 냉방을 위한 전력 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이야기를 할 때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의 큰 축인 감축과 적응 간 구조적 딜레마가 바로 냉방에서 드러나는 것이죠. 그렇다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냉방을 포기해야 할까요? 다음 기사에서는 기후변화 적응과 감축에 대해 좀 더 고민하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자 구독, 또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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