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고종이 프랑스 대통령에 선물한 ‘보석 꽃’···140년 만에 다시 피다
2026.06.02 16:20
황금빛 줄기가 허공으로 휘어 오른다. 기묘하게 뻗은 가지에는 진주 박힌 솔방울이 촘촘히 매달렸고, 붉은 산호로 만든 열매와 꽃잎도 사이사이 맺혀 있다. 그 아래에는 수정 꽃잎을 겹겹이 펼친 모란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꽃잎 모양의 금속 화반 위에 소나무와 측백나무, 모란, 난초 등을 보석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이 공예품의 이름은 ‘반화’(盤花)다.
조선과 프랑스는 140년 전 1886년 6월4일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서명하면서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고종은 프랑스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사디 카르노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냈다. 장수를 축원하는 소나무, 부귀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모란 등 상대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 동시에 열강의 압력 속에서 외교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조선의 절박함 또한 투영되어 있었다.
한국·프랑스의 140년 교류사를 ‘선물’로 들여다보는 전시가 국립고궁박물관과 덕수궁 돈덕전에서 함께 열린다. 그중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반화: 상서로운 마음’은 전시 공간을 반화로만 채웠다. 조선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반화가 외교 선물로 채택된 배경과 반화의 요소들에 담긴 의미, 제작 방식을 함께 살핀다.
명·청 시대 중국에선 자연의 경관을 축소해 그릇 안에 재현한 ‘분경’이 크게 유행했는데, 여기에 조선 왕실의 미감과 길상 문화를 더한 것이 ‘반화’다. 1953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의 후손에 의해 “코리아의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기록과 함께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 기증되었고, 이후 국가유산청 실태조사를 통해 양국 수교 이후 전해진 외교 선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문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화 오마주’를 선물한 바 있다.
당초 원본을 공개하려 했으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운송 과정에서 파손이 우려됐다. 전문가 자문과 현지 실측 등을 거쳐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김영희 옥장(玉匠)이 두 쌍 네 점의 반화를 선물 당시의 찬란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반화는 연옥·청옥·홍수정 등 각종 보석류와 비취모(물총새 깃털)·대모(거북이 등껍질) 등 희귀 재료가 사용된 종합 예술품이다. 그릇 부분의 연판문(연꽃무늬) 등으로 중국 유물과 구분되는 조선 특유의 미감을 드러냈다. 제작 기록이 전해지는 것이 이 반화 하나일 정도로 특수한 사례다. 청대 공예분경이 외교 선물로 사용되던 맥락을 조선식으로 변용해 프랑스에 격조 높은 선물을 보내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영희 옥장은 “작은 작품 하나에 옥석 공예, 금속 공예, 목공예 등 여러 기술이 집약되어 조선 후기 왕실 공예의 정수가 응축되어 있었다”며 “19세기 말 어려운 시기에 이런 정교한 작품을 외교 선물로 보낸 데에는 당시 조선의 문화적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깊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에선 조불수호통상조약 관련 문서들의 원본, 고종과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이 주고받은 선물과 관련 기록, 대한민국과 프랑스 역대 대통령이 주고받은 선물과 서신을 전시한다. 천주교 포교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두 나라의 교류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는 6월3일~8월2일, 덕수궁 돈덕전 전시는 6월3일~8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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