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년 전 조선인과 막걸리 마신 프랑스 영사…선물받은 옹기술병 첫 전시
2026.06.02 10:24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조선 철종 때인 1851년 4월2일 프랑스 사람이 조선 땅에 처음 들어왔다.
전라도 신안 비금도 해변에서 프랑스 고래잡이배 나르발호가 난파했다. 본국 르아브르항을 떠나 황해까지 항해하다 풍랑으로 표류하던 중 섬까지 밀려온 것이다. 허겁지겁 하선한 선원 20여명은 곧장 발견돼 나주목사의 책임 아래 뭍으로 이송됐다. 조선 관헌들은 음식과 구호품을 주면서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중국에 표착한 다른 선원들로부터 난파 소식을 들은 상하이 프랑스영사관의 샤를 드 몽티니 영사는 조선 현지로 갔다. 몽티니는 손짓과 몸짓을 하며 관리들과 송환 교섭을 벌인 끝에 선원들을 데리고 마카오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관리와 프랑스 선원들은 막걸리와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교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런 교유의 결실로 몽티니가 당시 조선인들한테 선물 받은 펑퍼짐한 허리의 옹기술병이 프랑스 세브르도자미술관에 소장품으로 전해진다.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인연을 떠올릴 때 흔히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해 외규장각의궤류 등을 약탈한 ‘병인양요’나 1886년 정식 국교를 맺은 ‘조불수호통상조약’을 흔히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두 나라 사람들이 이미 만나 평화로운 교류를 나눈 전례가 있었던 셈이다.
최초의 한불 교류 성과물인 이 갈색빛 옹기술병이 175년 만에 처음 돌아와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이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과 함께 3일부터 서울 경복궁 경내의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특별전이 그 자리다.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이란 제목이 붙은 이 특별전(8월2일까지)은 두 나라에 각각 전해져온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문서 원본들을 비롯해 당시 고종(1852~1919) 임금과 사디 카르노 대통령(1837~1894)이 교환한 선물, 해방 뒤 한불 역대 대통령이 주고받은 선물, 서신 등이 나와 170년 이상 이어져온 양국의 교류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5부로 꾸려진다. 몽티니가 받은 옹기술병은 1부 ‘조선과 프랑스의 만남’을 여는 출품작이다. 여기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저술한 국내 최초의 근대 외국어 사전 ‘한불자전’(Dictionnaire Coréen-Français)도 나왔다. 2부 ‘조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과 동행의 시작’은 프랑스 외교사료관과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소장된 조불수호통상조약문서 원본들을 처음 공개한다. 수교 이후 양국 공사관 관련 자료와 더불어 ‘명동성당 건축을 위한 대지 매입 일지’(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등 구한말 천주교 관련 유물들도 주목되는 사료들이다.
3부 ‘조선 국왕과 프랑스 대통령의 선물 교환’에서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사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고궁박물관 소장)과 고종의 답례품인 청자 대접 2점(프랑스 국립제작소-세브르도자박물관 소장)이 단연 눈길을 붙잡는다. 1795년 정조 임금의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조선왕실 기록문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와 고려 역사서 ‘휘찬여사’(프랑스 국립동양어문화대학 언어문명도서관 소장)도 나왔다. 진귀한 재료로 화분에 심은 나무와 꽃을 정교하게 재현한 한쌍의 ‘반화’(盤花) 복제품도 빠질 수 없는 눈대목이다. 원본은 현재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파손 정도가 심해 출품작 목록에서 빠졌다. 전시되는 복제품은 2024년 국가유산청과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후원 협약을 통해 국가무형유산 김영희 옥장이 제작한 반화 두쌍 중 한쌍이다.
4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프랑스의 연대’는 일제강점기 국외 한인들의 독립운동과 연관된 프랑스 관련 기록들을 조명하며, 5부 ‘이어지는 우정, 대한민국과 프랑스’는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프랑스 대통령들로부터 받은 은제 그릇, 도자기, 소반 등(대통령기록관 소장)과 노태우, 김영삼 두 전 대통령이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나전칠기함, 상감청자 등 공예품(프랑수아 미테랑 기념물 박물관 소장) 등을 내보인다. 양국 대통령이 주고받은 다양한 선물들은 물론 서한, 양국 간 교류 영상들도 상영하면서 국가간 외교의 현장을 전달한다.
휴관일인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관객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 기간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해설(도슨트) 서비스도 운영한다. 8월14일부터 9월13일까지는 충남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서 순회전시가 이어진다.
조선 조정이 프랑스 정부에 전달한 또 다른 수작 공예품인 반화의 전시는 덕수궁에서 확대되어 열린다. 덕수궁관리소(소장 이승재)가 역시 3일부터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여는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반화: 상서로운 마음’이 화제의 작품 마당이다. 이 특별전은 ‘반화’ 원형을 중심으로 장수와 복, 부귀 등을 글자, 동식물, 자연물 등을 무늬로 표현한 조선왕실의 전통 길상(吉祥) 문화와 근대 외교의 역사를 조명하고, 두 나라가 140년간 이어온 우정과 문화 교류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반화’는 조선 말기 왕실의 최고급 공예품. 연꽃잎 모양의 금속 화반 위에 소나무·측백나무·모란·난초 등 꽃과 나무를 금속과 나무, 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1886년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고종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한 대표적인 외교 선물이다.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 때도 이재명 대통령은 140년 전 수교의 첫 걸음을 뗀 ‘반화’를 재해석한 ‘반화 오마주’를 건네며 협력의 의지를 전한 바 있다.
‘반화’는 1953년 카르노 대통령 후손이 ‘한국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 기록과 함께 파리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 기증했다. 관리소 쪽은 “원본의 국내 공개를 추진했으나 국외 운송에 따른 파손이 우려돼 김영희 옥장이 전통 재료를 사용해 만든 ‘반화’ 복제품을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미디어아트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거리다. 전시실 들머리에서는 관객의 손짓에 반응해 반화가 생생한 입자(파티클)로 꿈틀거리는 양방향(인터랙티브) 영상물 ‘Awaken: 반화를 깨우다’를 틀어준다. 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인 ‘반화의 숲: 신선들의 낙원’은 1층에 있는 27m 규모의 발광 다이오드(LED) 미디어월을 수놓는다. ‘반화’의 무채색 꽃들이 색과 빛을 찾으면서 황금빛 소나무·측백나무와 사슴·학이 있는 신선들의 이상향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 복제품 제작에 활용된 전통 재료들을 소개하는 실감 영상 8종도 선보인다. 특별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입장 마감 오후 5시)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4일은 관련 행사로 임시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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