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혼자가 아닙니다"
2026.06.02 11:21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국교사대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집회나 대규모 행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굳이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지난해 집회를 다녀온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분들의 응원과 후원을 포함한 그 자리의 감동을 전해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나도 가 보기로 했다.
경상도에서 서울까지.
5월 30일 전국교사대회로 향했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
광통교 집회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어린이학교 등록처였다. 전국 단위 교사 행사에는 거의 예외 없이 어린이학교가 운영된다고 한다. 좋은 뜻으로 모이는 행사라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늘 현실적인 질문이 따라다닌다.
'내가 가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공부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마다, 내 아이 돌봄 앞에 종종 망설였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서야 하나?"
결국 포기한 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어린이학교가 있었으므로, 나는 아이 걱정은 접어두고 서울까지 가는 용기만 내면 되었다.
어린이학교는 아이를 맡기는 것을 넘어 연극 관람과 문화체험 등 즐겁고 유익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때마다 만나는 아이들은 어린이학교에서 함께 자란다고도 했다.
아이를 위한 더 나은 교육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작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참여하지 못한다면 어딘가 모순이다. 어린이 학교를 통해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고, 누군가는 집회에 참여하고, 다시 역할을 나누며 함께 움직인다. 함께 키운다는 말이 구호가 아닌 실제로 구현되고 있었다.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
어린이학교 등록처에 아이를 맡기고 집회장소로 향했다. 입구에는 최근 세상을 떠난 경기 이천의 한 사립고 교사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함께 간 선생님들과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국화 한 송이를 올렸다.
요즘 교직 사회에서는 너무 자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처음에는 뉴스가 되고, 추모가 이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힌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집회장 곳곳에는 다양한 안내문과 서명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교육 현안, 현장의 여러 문제들, 차별과 혐오를 줄이기 위한 노력,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 각각의 생각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혼자 남겨 두지 말자는 마음, 누군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적어도 외면하지는 말자는 마음이었다.
문득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자신을, 그 삶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교육활동의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이제 낯설지 않다. 분향소 앞에 선 사람들, 홀로 집회 장소에 나선 많은 선생님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사연은 무거웠지만, 그것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비를 맞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무겁게 올라왔던 가슴과 발걸음이 조금,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
교사대회는 추모와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 ▲ 이천 사립고 교사 묵상 5.30. 전국교사대회 전 이천 사립고 교사 묵상 |
| ⓒ 권순구 |
이어 합창과 연극, 현장 발언이 이어졌다.
| ▲ 연극 <보이지 않는 선>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교사직이 위협받는 현실을 반영한 짧은 극, 전교조 경기지부 청년모임 |
| ⓒ 윤송미 |
| ▲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들 416연대, 이영주 해고조합원 복직 촉구 서명 |
| ⓒ 윤송미 |
나는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상상을 넘어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정당한 생활지도를 하고도 반복적인 아동학대 고소를 당한 선생님들.
민원에 시달리며 교단을 떠날 고민을 했던 선생님들.
교실에서 벌어진 일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선생님들이 끝내 용기를 더 내어 주셨다.
우리는 들었다.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큰 고통을 겪은 선생님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한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나서자, 객석에서 피켓을 들고 일제히 일어서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어 피켓의 내용을 읽을 수 없었지만 알 것 같았다.
"선생님, 혼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아마 그런 말들이 적혀 있었을 것이다. 무대 위 선생님들이 그 피켓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함께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 ▲ 선생님 힘내세요 용기내어 나선 선생님과 함께 선 선생님들 |
| ⓒ 윤송미 |
| ▲ 선생님 힘내세요 용기내어 나선 선생님과 함께 선 선생님들 |
| ⓒ 권순구 |
흔들리는 깃발과 함께 "우리, 함께"의 파도가 일렁였다.
우리는 흔히 문제를 제도와 정책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날, 말할 수 있는 자리와 들어주는 사람들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걷는다는 것
집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청계천 광통교를 출발해 안국동과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앞까지 함께 걸었다.
손팻말을 들고 여러 구호를 외쳤다. 요구는 다양했다.
아동복지법 개정.
교사 보호 대책 마련.
과도한 행정업무 개선.
체험학습 안전 대책 마련.
정치기본권 보장.
교육의 공공성 회복.
행렬 옆으로 시민들이 보였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의아한 눈으로 가만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
| ▲ 함께 걷는다는 것 시민 여러분, 저희는 오늘 아침 전국에서 올라 온 유,초,중,고 교사입니다. |
| ⓒ 권순구 |
| ▲ 함께걷는다는 것 교사교육권쟁취, 교사에게 교육권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 |
| ⓒ 권순구 |
| ▲ 함께 걷는다는 것 교사를 지켜야 교육이 산다, 우리는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
| ⓒ 권순구 |
| ▲ 청와대 앞으로 대통령에게 바라는 우리의 요구, 비행기에 실어 날리다. |
| ⓒ 윤송미 |
교사들은 늘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교사 자신의 생존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생존의 위기 앞에서 교사가 거리로 나왔다.
"교사를 살려야 교육이 산다."
"교육은 우리가 할 테니, 교육부는 교사를 지켜라."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외치는 구호 뒤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함께 버틴다는 것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집단·특이 민원 대응 역량 강화 연수를 이수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학교 현장에 대한 민원 대응 역량 강화 요구가 그보다 먼저 도착했다.
전교조 합창단과 놀이교사모임의 공연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다 함께 일어나 율동을 배운 <소문의 낙원>의 한 구절이 귓가를 맴돈다.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외톨이 나그네여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 악동뮤지션, <소문의 낙원>
이 노래가 마치 지친 교사들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렸다.
| ▲ 지치고 힘든 나그네여 전교조 합창단 <여러모로>, 놀이교사모임 <가위바위보>와 함께 소문의 낙원 |
| ⓒ 권순구 |
| ▲ 지치고 힘든 나그네여 전교조 합창단 <여러모로>, 놀이교사모임 <가위바위보>와 함께 소문의 낙원 |
| ⓒ 권순구 |
잠깐 쉬어도 된다고.
혼자 버티지 말라고.
여기 앉아 함께 쉬었다 다시 가자고.
생각해 보면 이날 교사대회에서 내가 본 것은 정치 구호도 정책 제안도 아니었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
교사대회는 무엇을 요구하는 자리이기 전에, 서로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학교에 가장 필요한 것도 그런 확인인지 모른다.
함께 걸었던 긴 행렬속에서 내가 확인한 것도 다름 아니었다.
그날 내가 얻은 가장 큰 위로,
"선생님, 혼자가 아닙니다."
그 말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 ▲ 5.30. 전국교사대회 교사를 지켜야 교육이 산다. |
| ⓒ 권순구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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