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반자르가 일으킨 발리 택시전쟁 [박시진의 글로벌 픽]
2026.06.0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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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의 호주 관광객 케이티 윌리엄스는 최근 부모님을 모시고 발리 짱구지역을 방문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이라 그랩을 호출했는데, 기사가 배차를 수락한 직후 “그쪽으로 갈 수 없다. 너무 위험하다. 당신이 나를 찾아라”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윌리엄스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더위에 멀리 걷기 어렵다고 호소했지만, 3차례 연속 취소를 당한 끝에 결국 현지 택시기사에게 앱 요금의 2배를 내고 이동했습니다. 그가 묵은 호텔이 차량호출앱 기사들의 비공식 ‘진입 금지 구역(no-go zone)’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때 아닌 ‘택시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랩·고젝 등 차량호출앱과 현지 택시기사 갈등이 관광객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1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택시 승차 거부나 바가지 요금 피해를 입는 관광객들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갈등의 뿌리는 발리 특유의 마을공동체 ‘반자르’니다.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발리의 모든 마을은 여러 반자르로 세분화돼 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이 공동체는 도로 건설부터 종교 의식, 분쟁 조정까지 담당합니다. 자체 영역 내 택시 요금까지 직접 책정합니다.
문제는 반자르 요금이 항상 차량호출앱보다 비싸고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통상 왕복 기준으로 매겨집니다. 한 현지 기사는 “수입의 70%를 내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반자르에 낸다”며 “앱 기사들은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요금 차이는 상당합니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 발리 북부 제2도시 싱아라자까지 95㎞ 구간의 경우 현지 기사들은 80만~100만 루피아(약 6만 8000~8만 5000원)를 받습니다. 같은 거리를 차량호출앱으로 이용하면 55만~60만 루피아(약 4만 6000~5만 원)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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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폭력 사태로 번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매체 데틱에 따르면 현지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식당 앞에서 손님을 태운 앱 기사를 폭행했습니다. 인기 관광지 짱구에서는 한 현지 기사가 앱 차량으로 이동 중인 관광객을 세워 15만 루피아(약 1만 3000원)를 갈취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발리 택시 마피아’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 관광객 그룹에 따르면 술에 취한 현지 기사들로부터 “자신들을 이용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미·이란 전쟁 여파로 발리 관광객이 줄자 현지 기사들의 생활고는 더 심해졌습니다. 관광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하루 약 800명의 관광객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지 기사들은 그랩 요금 대비 적게는 10배, 많게는 20배까지 가격을 부릅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입니다.
도로 통제도 문제입니다. 발리 도로의 절반 이상을 반자르가 통제합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투숙객 유치를 위해 지역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투숙객에게 비싼 요금을 부르는 현지 기사에게 항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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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랩·고젝 기사들도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발리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이들은 최대 20%에 달하는 플랫폼 수수료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수수료 상한 10%를 요구했습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지난달 플랫폼 수수료 상한을 8%로 제한하고 기사 상해·건강 보험 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현지 기사들은 차량에 그랩·고젝 로고를 부착하고 공항 도착장으로 향합니다. 앱 요금을 제시한 뒤 전액을 자기 몫으로 챙기는 ‘편법’입니다. 그러나 이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모빌리티, T맵 택시 등 차량호출앱 등장 이후 콜택시가 사라졌습니다. 우버는 프리미엄밴 서비스뿐 아니라 카카오모빌리티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과거 배달의민족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된 것과 비슷한 흐름입니다. 국내에서는 ‘시장 자율’ 원칙이 적용됩니다. 대기업들이 경쟁하는 택시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결국 가격 경쟁력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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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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