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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 삼겹살, 무침회… 야구장이 품은 도시의 맛

2026.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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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프로야구의 계절이 한창이다. 올해 KBO 리그가 개막한 지 어느새 두 달, 평일 저녁이면 경기장과 가까운 지하철역마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진다. 봄부터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지는 긴 야구 시즌은 도시인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에 충분한 명분이 된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엔 입장권, 다른 손엔 갖가지 먹을거리를 담은 비닐봉투를 들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도시락이나 김밥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이 어느 구장에서나 자연스럽다. 스포츠 관람은 언제나 '먹을거리'가 중요하다.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집어먹거나, 경기 후 한잔으로 여운을 나누거나.

1990년대 마산구장에선 외야석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펴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점에서 정식 판매한 것이 아니라 일부 상인이 외야에서 대패삼겹살을 팔고 불판까지 빌려주는 식이었다. 2009년 SK 와이번스가 문학구장 외야에 정식으로 바비큐존을 설치하면서 그 장면은 비로소 합법적인 풍경이 됐다. 지금은 배달 앱으로 족발, 떡볶이, 다코야키, 육회까지 자리에서 받아볼 수 있다. 경기 중반쯤이면 외야 입구로 들어오는 배달원의 손에 들린 봉지가 바삐 제 주인을 찾아간다.

여기엔 세 시간 이상 이어지는 야구경기 특성이 한몫했다. 간식 한두 가지로는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거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야외 나들이음식 문화가 합쳐졌다. 봄꽃놀이든 계곡 물놀이든 삼겹살이 빠질 수 없고, 한강 피크닉과 '치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한국식 고기불판은 해외 캠퍼들도 따라하는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부상했을 정도다. 게다가 어디서든 자리까지 음식이 도착하는 배달 인프라. 이 세 가지가 만나 한국 야구장만의 독특한 광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로 향하는 사람들의 손엔 '성심당' 종이봉투가 자주 들려 있다. 성심당은 대전역 앞 노점으로 시작해 지금은 대전의 상징이라고까지 할 만한 유명 빵집이다. 한화생명 볼파크 신축 당시 야구장 안 입점이 검토되다 제빵 공간 부족으로 무산되면서, 외지에서 한화 이글스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 본점에 들러 빵을 사 들고 그 길로 야구장으로 향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화 이글스 선수의 안타를 잡은 상대 팀 선수가 소셜미디어(SNS)에서 '성심당 출입금지' 댓글 공격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대구 라이온즈파크에는 대구식 무침회로 유명한 식당이 입점에 성공했다. 내륙 도시인 대구에선 1980년대 이전까지 싱싱한 활어회를 맛보기 어려워 그 대신 오징어, 소라, 논고둥 따위를 삶아 무채와 미나리, 그리고 매콤한 양념을 더해 무쳐 먹는 방식이 발전했다. 그 무침회를 얇고 바삭한 대구 납작만두에 싸 먹는 형식은 다른 도시에선 찾기 어려운 대구만의 명물이다. 1960년대 초부터는 무침회를 파는 노포들이 모여 '반고개 무침회 골목'을 이루었고, 그 노포 중 하나가 2025년부터 라이온즈파크 5층에 자리를 낸 것이다.

세계 각국 야구장의 명물 '먹거리'

이처럼 지역 고유의 역사와 스토리를 품은 음식이 홈구장의 대표 먹거리가 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신시내티 레즈의 홈구장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선 '스카이라인 칠리' 매장이 여러 부스에 자리하고 있다. 1949년 그리스 카스토리아 출신 이민자가 신시내티에 정착해 연 가게다. 시나몬·코코아·정향과 올스파이스 같은 발칸 향신료를 넣은 변형 칠리를 팔았는데, 신시내티 외 다른 도시에선 거의 만나기 어려운 특이한 조합이었다. 스파게티 면 위에 이 칠리를 한 국자 부은 뒤 잘게 간 체다 치즈를 산처럼 쌓은 '스리 웨이(3-way)'는 약 80년 세월이 흐르면서 신시내티의 시그니처 음식으로 각인됐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에선 히로시마의 마쓰다 스타디움이 유명하다. 구장 내 30여곳의 음식 부스 중에서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곳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란 1945년 8월 원폭이 도시를 무너뜨린 직후의 식량난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미군 원조 밀가루로 얇은 크레이프를 부치고, 양배추와 돼지고기, 면을 그 위에 층층이 쌓아 굽는 방식으로, 반죽에 모든 재료를 섞어 굽는 오사카식과는 명확히 다르다.

지역과의 관계는 그리 밀접하지 않지만 '스포츠와 음식'이라는 주제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상징성을 자랑하는 것은 단연 7월의 윔블던과 딸기크림이다. 흰 옷을 입은 선수들이 코트를 가로지르는 동안 관중석엔 작은 그릇에 담긴 딸기와 크림이 분주히 오간다. 1877년 첫 대회 이후 약 150년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짝꿍이다. 매년 약 28t의 딸기와 7000L에 달하는 크림이 코트 위에서 소비된다. 사실 영국에서 딸기와 크림의 결합 자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16세기 헨리 8세의 추기경 토머스 울지가 햄튼 코트 궁전의 한 연회에서 그 조합을 처음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잉글랜드의 짧은 여름과 그 끝의 딸기 수확기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울지는 이후 햄튼 코트에서 리얼 테니스 경기를 주최할 때마다 같은 디저트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당시 영국엔 오후 티 문화가 절정이었는데, 이것이 '테니스 관람'과 만나면서 그 중심에 딸기크림이 자리하게 됐다. 그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7월 윔블던과 딸기크림은 생각보다 많은 서사를 담고 있는 풍경이다.

그보다 좀 더 지역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사례로는 세계 최고 경마대회로 꼽히는 켄터키 더비와 민트 줄렙 칵테일이 있다. 켄터키 버번을 붓고 신선한 민트와 설탕, 으깬 얼음을 더한 이 단순한 칵테일은 매년 5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켄터키 더비의 시그니처 음료다. 이것은 본래 18세기 후반 미국 남부에서 럼이나 브랜디에 꿀과 민트를 더해 아침에 마시던 강장제였다. 19세기를 지나면서 남부 부유층의 일상 음료로 자리 잡았는데, 은이나 백랍으로 빚은 손바닥만 한 줄렙 컵에 따라 마시는 게 전통이었다. 19세기 켄터키에선 줄렙이 이미 일상 음료였고, 켄터키 농장주들은 경주마와 위스키 증류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말과 버번은 같은 사람들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1875년 켄터키 더비 첫 대회를 만든 메리웨더 루이스 클라크 주니어가 클럽하우스 뒤편에 직접 민트를 길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처음부터 경마대회에서 민트 줄렙을 마시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1920년대 금주법 시기엔 더비에서 줄렙을 못 마시게 됐다고 남부 언론이 한탄할 정도였다. 이후 민트 줄렙은 약 90년간 더비 위크에만 매년 12만잔 가까이 소비된다. 켄터키의 봄, 큰 모자를 쓴 관중석, 흙먼지를 일으키며 트랙을 도는 경주마, 손마다 들린 은색 잔. 이 시즌 켄터키라는 도시는 민트 줄렙과 한 장면 속에 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시합 한 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도시의 노포가 일군 맛과 그 계절에만 나오는 풍미, 이와 함께 숙성돼간 도시의 시간을 함께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5월의 켄터키와 민트 줄렙, 7월 영국 테니스 코트와 어우러진 딸기크림의 향연, 봄에서 가을까지 야구장 좌석에 놓이는 갖가지 지역명물들. 한 장의 입장권이 단 몇 시간의 관람을 넘어 그 도시와 계절,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는 하루로 이어진다. 다음번 경기장으로 향할 때 그 도시의 서사 한 자락을 함께 떠올려본다면,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한층 깊고 풍성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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