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사원보다 호텔… 방콕에서 ‘잘 쉬는 여행’이 뜬다
2026.06.01 19:01
오후 늦게 찾은 송왓 로드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오래된 창고 건물 사이로 카페와 바, 편집숍이 들어서 있었고 여행객들은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다시 다음 골목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류 창고와 화교 상권 이미지가 강했던 거리지만 지금은 방콕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네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오래된 철문과 간판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콜드브루를 내리고 로컬 브랜드 옷을 판다. 허물지 않고 덧대는 방콕 특유의 재생 감각이 이 골목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송왓 로드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야오와랏 차이나타운이 이어진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숯불 향과 볶음면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노점 앞에는 긴 줄이 생긴다. 오래된 약재상과 금은방, 수십 년 된 식당 사이로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오간다. 대형 관광버스보다 혼자 또는 둘이 걷는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많다. 서울의 익선동이나 을지로와 닮은 흐름이다. 오래된 것을 허물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얹는 것, 그걸 보러 사람들이 온다.
방콕 여행자 3000만 명 시대, 무엇이 달라졌나
방콕은 연간 외국인 방문객 3000만 명 안팎을 기록하는 세계 최상위권 관광도시다. 팬데믹 이후 태국 관광청(TAT)이 집계한 수치를 보면 단순 관광 목적 방문자 비율은 줄고, 체류 일수는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하다. 짧게 여러 나라를 도는 패키지 여행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여행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태국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 수는 2024년 기준 180만 명을 넘었으며, 평균 체류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씀씀이도 달라졌다. 관광지 입장료나 기념품보다 숙박과 식음, 웰니스에 지출을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에 따르면 태국 관광 산업에서 숙박과 F&B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확대됐다. 특히 4성급 이상 호텔의 객실 가동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방콕 도심 프리미엄 호텔 시장은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따라가는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호텔업계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연박 할인과 레이트 체크아웃, 객실 체류형 패키지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방콕처럼 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들고 스콜이 일상인 도시에서는 오전에 가볍게 나갔다가 오후엔 호텔에서 쉬는 패턴이 자리를 잡았다. 잘 짜인 일정도 스콜 한 번에 무너지는 게 방콕이다. 이동 자체가 체력 소모인 도시에서 호텔의 역할은 단순히 숙박을 넘어 여행의 베이스캠프에 가까워지고 있다.
50년 호텔 역사를 품던 건물, 조용히 IHG로 귀환
수라웡 로드에 자리한 보코 방콕 수라웡(voco Bangkok Surawong)은 그 변화를 읽고 올해 1월 문을 열었다. IHG 호텔스 & 리조트가 태국에서 처음 선보인 보코(voco) 브랜드 호텔이다. 보코는 2018년 론칭 이후 전 세계 117개 호텔을 운영 중인 IHG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방콕이 아시아 세 번째 거점이다.
건물의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원래 방콕 최초의 쉐라톤 호텔로 운영됐고 이후 타와나 호텔(Tawana Hotel)로 이름을 바꿔 영업했다. ‘수라웡’이라는 도로명 자체도 이 건물을 오래 지켜온 태국 가문의 조상 이름에서 유래했다. IHG는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구조를 살렸다. 환기와 공조, 전기, 배관 등 주요 설비는 전면 교체했지만 외관의 기하학적 구조와 구리 톤 파사드는 그대로 유지했다. 송왓 로드의 재생 감각과 닮아 있다.
외관 리노베이션은 태국 건축사무소 A49가, 인테리어는 P49 Deesign이 담당했다. 컨셉은 미드센추리 모더니즘. 원형 펜던트 조명과 원목 소재, 브랜드 컬러인 그린·블루·옐로가 공간 전체에 배치돼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 복고적인데 낡지 않고, 현대적인데 차갑지 않은 균형이 먼저 느껴진다. 총 244개 객실과 24시간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홀4개를 갖췄다.
위치도 영리하다. 실롬 상업지구와 사톤 비즈니스 벨트, 씨암 쇼핑 허브가 모두 도보권이다. BTS 충나시역까지 걸어서 닿고, 짜오프라야 강변 선착장도 멀지 않다. 차이나타운과 송왓 로드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방콕 도심의 주요 동선 위에 정확하게 얹혀 있는 입지다.
객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피였다. 방콕 시내 호텔 상당수가 인스턴트 커피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일반 객실에도 드립 커피가 비치돼 있었다. 원두는 태국 북부 고원지에서 재배한 현지 브랜드를 쓴다. 그랜드룸 이상에는 커피 머신이 추가된다. 아메니티는 뉴질랜드 유기농 브랜드 안티포드스(Antipodes)다. 창가에는 독서용 소파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현지 예술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매트리스 헤드 역시 재활용 소재로 제작됐고 호텔 전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지속가능성을 내세우기보다 일상 안에 녹여놓은 것이다.
미식의 도시 방콕에서 가장 미식을 즐길 수 있는 호텔 F&B
방콕은 원래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하는 도시다. 골목 한 켜만 들어가도 노점이 즐비하고, 현지인들이 줄 서는 식당이 어디든 있다. 그런데 이 호텔 안에서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됐다.
올데이 다이닝 덱클스모크하우스(Deckles Smokehouse)는 태국 내에서 두 대뿐인 미국산 요더(Yoder) 스모커를 보유하고 있다. 훈연 설비로는 미국 텍사스 바비큐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장비다. 훈연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재료 맛을 살리는 쪽에 가깝다. 시그니처인 스모크드 치킨 콥 샐러드가 대표적으로, 무겁지 않으면서도 기본기가 안정적이다.
아침에는 같은 공간이 조식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분위기가 저녁과는 전혀 다르다. 정갈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기본은 뷔페 형식이지만 에그 베네딕트처럼 따뜻한 메뉴는 즉시 조리해 내온다. 홀란다이즈 소스가 식지 않고 나온다는 것, 그리고 달걀 노른자가 제대로 흘렀다는 것. 작은 것들이 맞아떨어질 때 조식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커피는 태국 북부 고원지 원두를 쓰는 현지 브랜드에서 들여온다. 한 잔을 마시고 한 잔을 더 시켰다. 조식을 레스토랑 대신 객실로 올려달라고 할 수도 있다. 방콕의 아침을 침대에서 시작하는 것, 이 호텔에서는 그게 자연스럽다.
저녁에는 바 팀의 칵테일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시그니처 ‘파이브스파이스 포테이토(Five Spice Potato)’는 시나몬·스타 아니스·정향 등 태국 향신료에 리치·라임·레드 와인 리덕션을 블렌딩했다. 베이스는 태국 현지 스피리츠다. 수입산을 쓰지 않겠다는 선택이기도 하다. 알코올 버전과 목테일 버전 모두 향신료 레이어가 살아 있다. 목테일을 보면 바가 진지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 기준에서도 합격이다.
스페인식 바 레스토랑 타스카 사비오(Tasca Sabio)는 덱클스모크하우스와 결이 다르다. 타파스 스타일 스몰 플레이트와 산그리아가 중심이고, 여럿이 모여 접시를 나누는 자리에 최적화돼 있다. 가벼워 보이는 메뉴들인데 먹다 보면 멈추기가 어렵다. 올리브 오일을 아끼지 않고, 빵은 겉이 바삭하고 속이 살아 있다. 두 레스토랑이 같은 호텔 안에 있으면서도 각자 자기 자리가 있다. 방콕에서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를 하나씩 거둬가는 공간들이다.
쉬어가는 여행을 위한 패키지
보코 방콕 수라웡은 5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방콕 이지 이스케이프(Bangkok Easy Escape)’ 패키지를 한정 운영한다. 2박 3일, 디럭스 룸 숙박에 2인 조식과 오후 2시 레이트 체크아웃이 포함된다. 조식은 레스토랑 또는 객실 중 선택할 수 있다. 웰컴 칵테일, 안티포드스 어메니티 세트, 배스로브, 필로우 미스트, 마스코트 플러시 인형, 컬러링 카드 등으로 구성된 ‘보코 익스피리언스 키트’도 함께 제공된다. 전액 선결제에 최소 7일 전 예약이 조건이며, IHG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다.
오전엔 왓 포나 차이나타운을 가볍게 돌고, 더위가 오르기 전에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에 뛰어드는 하루. 저녁엔 덱클스모크하우스에서 맥주 한 잔, 자정 가까이 타스카 사비오에서 산그리아로 마무리. 방콕을 더 많이 보는 여행 대신, 방콕에서 잘 쉬는 여행. 최근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는 것이고 보코 방콕 수라웡이 올해 1월 이 자리에 문을 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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