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 아들 “어진화사였던 부친, 김홍도 화첩으로 후학 가르쳐”
2026.06.01 15:56
“어진화사들이 대물림했을 가능성
6·25 때 고모가 피난 안가고 지켜”
이당에 대한 왜곡 바로 잡을 것
조선 불세출의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미공개 산수화 초본 10점을 세상에 알린 김성원(81)씨의 말이다. 마지막 어진화사(화가)였던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외아들인 그는 지난달 단원 김홍도 전문가인 진준현 박사(전 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를 통해 해당 초본이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1788년) 일부임을 확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32점과 같은 시리즈로 김홍도가 금강산과 관동팔경 일대를 유람하고 그린 대작 ‘금강산도권’(원본 소실)의 초본이다. 김씨는 “내가 살아 있을 때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걸 정리하고 바로잡겠다는 생각으로 유품 창고를 조사하다가 찾았다”고 했다.
Q : 어떻게 보관됐기에 이제야 찾은 건가.
A : “경기도 광주의 큰 창고에 아버지 유품을 모아뒀는데 헤집어볼 엄두가 안 났다. 2016년에 한번 털어서 세조·원종 어진 초본 등을 발견했고 2023년엔 창덕궁 대조전 벽화 ‘백학도’의 초본도 찾았다. 이젠 없으려니 했는데, 안 열어 본 반닫이가 있었다. 6·25 때 고모(김은호의 누나)가 피난도 가지 않고 서울 집을 지켰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간직한 보물들이 여기서 나온 거다.”
Q : 이당이 김홍도 화첩을 갖고 있던 배경이 있을까.
A : “도화서 화원 출신으로 어진화사였던 김홍도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고종·순종을 친견하고 어진을 그린 분이다. 어진화사들이 대물림해서 화첩을 보관했거나 눈 밝은 아버지가 수집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1936년 후소회를 창설해서 운보 김기창(1913~2001)을 비롯해 숱한 제자를 길렀는데, 김홍도 화첩을 모사시키는 것도 수련법 중 하나였다. 화첩에서 최고작만 골라서 ‘단원선생득의작’이라 쓰고 따로 모아둔 것 같다.”
Q : 김홍도 그림 외에 또 어떤 게 나왔나.
A : “아버지가 그린 ‘게’ ‘잉어’ ‘괴석’ 그림들이 있다. 모두 미공개작이다. ‘게 그림’은 김홍도 작품과도 비슷해 화풍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남극수성도’는 오원 장승업(1843~1897) 작품으로, 행서체 간찰(편지)은 허목(1596~1682)의 글씨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또 『중국화론』 『조선풍속화』 등 고서적과 자료들이 수십권 나왔는데, 분류·연구가 필요하다.”
앞서 유품 창고에서 발견된 ‘백학도’ 초본은 국립고궁박물관이 매입, 지난해 특별전에서 완성본과 나란히 전시된 바 있다. 20대 초반이던 이당이 원숙하고 생동감 넘치게 그린 ‘백학도’는 그가 장승업에서 소림 조석진(1853~1920), 심전 안중식(1897~1972)으로 이어진 ‘도화서 화원의 화풍’ 계승자임을 드러냈다.
이 밖에도 창고에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 초본, 이순신 영정 초본 등이 나왔다. 김씨는 “여왕 초상화는 1952년 즉위식을 맞아 우리나라 정부가 외교 선물로 건넨 것이라 원본은 버킹엄궁에 있을 것”이라면서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여왕 초상화를 그리던 걸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Q : 이번에 발굴한 ‘해동명산도첩’ 10점 등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A : “내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이걸로 무슨 사익을 취하겠나. 바람이 있다면 ‘이당 김은호 기념관’을 조성해 그곳에서 전시·연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고 사업하느라 아버지 별세 뒤에 벌어진 ‘친일 행적 논란’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은퇴 후 2015년 귀국해서 보니 사실관계 왜곡이 심각했다. 아버지는 3·1 운동 참여로 1년간 옥고를 치르셨고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들과 물밑 교류하며 자금 조달에 힘쓰신 분이다. 관련 사료를 모두 찾았고, 2024년부터 국가보훈부에 ‘공적 재평가 및 독립유공자 선정 요청’을 시도하는 중이다. 늦기 전에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키고 한국 근현대화단에서 지워진 아버지 자리를 찾아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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