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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취임 6개월 만에 사임을 생각했던 이유 [김종성의 '히, 스토리']

2026.06.01 14:06

[김종성의 히,스토리] '한일협정 반대시위' 6.3 운동이 가졌던 힘박정희의 권력욕은 유명하다. 이승만보다 6년 더 집권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스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처럼 집권욕이 강했던 박정희마저 사임을 생각하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 있다.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일어난 1964년 6·3운동은 47세 된 그가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잠시나마 잃는 원인이 됐다.

당시 40세의 재선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은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격렬했던 그때 상황을 회고하면서 "6월 3일 정오에 학생과 시민 5만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연좌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을 무차별 쏘았고, 최루가스에 가려 대낮에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라고 <김대중 자서전> 제1권에 썼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시위가 격화되자 박 대통령이 한때 사임까지 고려했는데, 이를 알아챈 미국이 강력하게 제지했다고 한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자 주한유엔군사령관이 헬기로 청와대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 뜰에서 박 대통령에게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사임 운운은 상투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상황을 전해 듣고 당장에 달려갔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한일협정 체결을 발판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결성해야 했던 미국은 박정희가 그대로 물러서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새뮤얼 버거 주한미국대사와 해밀턴 하우즈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를 만류하기 위해 청와대로 날아갔던 것이다.

그때 청와대에서 나눈 대화 내용은 새뮤얼 버거 대사가 그날 밤 10시 30분에 발송한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국무부로 보내는 전보'에 수록돼 있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1964년 상반기 시위는 1960년 4·19혁명 이후의 최대 규모로 전개됐다. 1964년 3월 24일에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에는 약 8만 명이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반대운동이 격화되는 속에서 박정희는 정권 붕괴 가능성까지 의식했다. 이것이 위 전보에도 나타난다. 박정희는 버거 대사에게 "현재 학생들의 목표는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미국대사를 움츠러들게 만든 6.3 운동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항쟁의 모습.
ⓒ 한국정책방송원

학생들의 최대 목표는 한일협정 무산이었지만, 박정희는 정권 전복을 우려했다. 당시의 사태 전개는 그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서 그가 생각한 것이 '만약의 경우에는 사임할 수 있다'라는 판단이다.

박정희는 반대시위를 진압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사임할 것이라고 버거 대사에게 밝혔다. "만약 통제할 수 없는 대중들의 반대에 직면한다면 사임할 것"이라는 그의 말이 전보에 적혀 있다. 6·3운동이 박정희를 얼마나 겁먹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 대사와 사령관의 청와대 방문은 응원 방문, 격려 방문이었다. 박정희가 한국인들의 요구에 굴해 한일협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미국 대사가 박정희를 만나러 가는 방식은 어떻게 보면 박정희에게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지금의 경복궁 앞이 아닌 서울광장 주변에 있었다. 반도호텔 내에 위치한 이곳은 청와대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는 미국 대사가 청와대로 갈 때 이용한 교통수단은 김대중의 회고에도 나타나듯이 헬기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7권은 "오후 4시를 지나서 새뮤얼 버거 주한미국대사, 해밀턴 하우스 유엔군사령관이 헬리콥터를 타고 청와대로 이동했다"라며 4시 4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대화가 있었다고 알려준다.

자신을 응원하고자 미국 정부 대리인들이 헬기'까지' 타고 오는 모습은 박정희에게 고무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자동차를 타고 와도 되고 걸어와도 될 만한 곳을 헬기'씩이나' 타고 오는 모습은 미국인들 역시 겁을 먹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될 수 있었다.

5만여 명이 그날 정오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당시의 시위대가 미국도 비판했기 때문에, 미국대사 등이 자동차를 타고 청와대로 가려면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다. 헬기가 동원된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을 정도로 6·3운동이 위력적이었음을 방증한다.

이날의 청와대 회동에서는 계엄령 발포가 최대 현안이었다. 박정희는 2개 사단을 시위 진압에 투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군을 동원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내용을 버거는 이렇게 정리했다.

"하우즈 장군은 두 개 사단을 동원해 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을 언급했고, 자신은 저의 동의가 있으면 그렇게 할 준비를 갖추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동의했습니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군대 동원을 승인하면서 주의 사항을 고지했다. 군대 동원의 책임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음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었다. 버거 대사가 박정희에게 "계엄령 발동은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군대 동원에 동의하였다"라고 각인시키는 모습이 전보에서 확인된다.

정권 2인자가 한국을 떠나게 만들다

 지난 1963년 1월 7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 연합뉴스

그 자리에서 미국 측은 한일협정을 주도한 김종필을 희생양으로 만들라는 제안도 내놓았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중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 발표를 고려하기를 원했다"라며 "이와 관련하여 김종필이 계엄령과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나에게 밝힌 의견이다"라고 버거는 전보에 썼다.

미국이 박정희에게 김종필 숙청을 권유한 직후에 김종필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김종필 증언록> 제1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를 기해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게 6·3사태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결심을 했다. 청와대에 올라가 박 대통령에게 '제가 짐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참 침묵하던 박 대통령이 '그래 한번 더 나갔다 와'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간 것이 소위 2차 외유다. 6월 18일 아내와 함께 출국해 6개월 동안 세상을 구름처럼 돌아다녔다."

6·3운동은 권력욕의 화신인 박정희가 미국대사 앞에서 사임을 운운하게 만들었다. 정권 2인자인 김종필은 이 운동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외유를 또다시 떠나야 했다. 미국 대사와 미군 사령관은 한국인들이 두려워 헬기를 타고 서울 시내를 이동했고, 박정희가 시위 진압을 위해 2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승인해 줬다. 6·3운동이 한미 양국을 얼마나 위축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들이다.

6·3운동의 에너지는 식민지배 문제를 굴욕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였다. 이 분노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와 같은 상징적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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