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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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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에서 1박, 섬 한복판에서 만난 하얀 정원

2026.06.01 10:36

백제 고분, 독립운동가 가문, 샤스타데이지 꽃밭이 공존하는 섬지난 5월 23~24일 1박 2일의 여정으로 장산도의 이곳저곳을 취재했습니다. <기자말>

 장산저수지 인근에 핀 샤스타데이지 꽃
ⓒ 양진형

1597년 9월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전함을 이끌고 신안 당사도와 어의도, 법성포, 위도를 거쳐 고군산도(선유도)에 이른다. 이곳에서 승첩 장계를 작성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길을 되돌아 10월 11일 장산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셋째 아들 면(葂)의 전사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이야.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잘못된 일이 어디 있느냐."

가족의 소중함과 애국심을 치솟게 하는 대목으로, 충무공의 인간적 고뇌가 담긴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에는 다이아몬드 제도라는 곳이 있다. 자은·암태·안좌·팔금·장산·신의·하의·도초·비금도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면 다이아몬드 모양이 그려진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 아홉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이 장산도다. 다소 무거운 마음을 장산도를 탐방하기 위해 승용차로 안좌도 복호항으로 향한다.

 대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신안 서북쪽의 섬들
ⓒ 양진형

연륙교를 징검다리 삼아

오후 6시 30분, 복호항에서 승객들을 실은 차도선은 자라도를 좌측에 두고 흰 물거품을 힘차게 일으키며 나아가더니, 20여 분 후 장산도 북강선착장에 도착한다. 목포항에서 출발했다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오니 금세 도착한 것이다.

 장산도 북강항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도로변 풍경
ⓒ 양진형

장산도(長山島)는 북쪽 오음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아미산을 거쳐 남쪽 대성산까지 이어지고, 다시 비둘기산·부학산 등을 통해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선착장에서 면 소재지인 도창리로 향하는 2차선 도로 양쪽에는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정성스럽게 심겨 있어, 차를 타고 달리는 길 전체가 거대한 꽃의 행진곡 같다.

 장산도 도창리와 대리 전경
ⓒ 양진형

도창리까지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산과 벌판들만 펼쳐진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농경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섬, 그 역설이 장산도의 매력이다.

백제의 숨결이 머문 땅

이튿날 아침, 섬의 유일한 농협하나로마트가 문을 여는 오전 8시에 맞춰 다시 도창리로 향한다. 우유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장산중학교 뒤편 아미산 기슭의 도창리 백제석실고분(전라남도 기념물 제107호)으로 향한다.

 백제시대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되는 도창리 석실고분
ⓒ 양진형

1966년 마을 청년들이 독서회관을 짓다 발견한 이 고분은, 길이 18m·너비 20m·높이 2m로 내부에서는 인골편·철편·백제토기가 출토됐다. 고고학자들은 이 석실분이 인근에서 발견된 지석묘들과 함께 삼국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했다.

 대성산성 가는 길
ⓒ 양진형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7.8km 떨어진 장산도는 영산강 유역에서 서해와 남해로 뻗어 나가는 해상 교통로의 핵심 요충지였다. 삼국시대 이곳이 인근 섬들을 아우르던 행정 중심지 거지산현(居知山縣)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산도 북쪽 오음산 아래 조성된 대형 간척지
ⓒ 양진형

실제로 남쪽 대성산(189m)에서 북쪽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마을과 드넓은 뜰이 산들로 둘러싸여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해상 세력이 세력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형국임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들의 부고를 받은 이순신 장군

장산도의 지리적 중요성은 임진왜란의 역사가 다시 한번 증명한다. 신안군 향토사료집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장산>에 따르면,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10월 11일 자에 등장하는 발음도가 바로 이곳이다. 충무공은 이렇게 적었다.

"정오에 발음도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고 날씨가 온화하다. 배에서 내려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오르니 전선을 숨겨둘 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동쪽으로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었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 월출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비금도까지 명확히 눈앞에 시원하다."

그 16일의 체류 중 아들 면의 부고를 받은 이순신은 통곡했다고 전한다. 대성산 정상에는 지금도 산성 터와 봉화 터, 조선시대 장산목장의 유적이 남아 있다. 대성산성은 둘레 230m 규모의 산성으로, 기와류의 문양이나 제작 기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 이후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성산성 터에서 바라본 진도 쪽 전경.
ⓒ 양진형

이 산성은 주변 해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충지로, 진도의 울돌목과 해남 화원반도를 지나는 해로를 조망할 수 있음은 물론, 신안 하의도와 비금도, 안좌도 그리고 그에 속한 수많은 부속 섬들과 마주할 수 있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있는 섬 주민
ⓒ 양진형

독립운동가 가문의 탄생

장산도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호남의 명문가 인동 장씨 가문을 배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장병준 선생의 생가와 역사문화관을 찾았다.

 독립운동가 장병준 선생 생가
ⓒ 양진형

조부와 큰아버지 대에 간척사업을 주도하며 대지주로 성장한 장씨 가문은 부에 안주하지 않았다. 장병준(1893~1972)은 목포와 서울, 일본 니혼대학 유학을 거쳐 법학을 닦았고, 1919년 3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정원 재무부 차장으로 활약했다.

 장병준 선생 기념비
ⓒ 양진형

이듬해 국내로 잠입해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이끌다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암태도와 하의도 농민들의 소작쟁의를 아낌없이 후원하며 저항의 연대를 다졌다. 막냇동생 장홍염 역시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한 집안에서 독립운동가를 여럿 배출한 셈이다.

 장산도 역사문화관
ⓒ 양진형

가문의 교육에 대한 집념은 대를 이어 이어진다. 장병준 선생의 동생 장병상씨는 자식 교육을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목포로 이주했고, 그의 네 아들은 모두 서울대를 졸업해 정계·관계·학계에 발자국을 남겼다. 그중 3선 국회의원과 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장재식이 대표적이다. 그 손자 세대에서는 장관을 역임한 장하성·장하진,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하준·장하석 등이 나왔다. 장하준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장산도의 살아있는 문화

역사 탐방을 마치고 자연과 문화가 숨 쉬는 길로 들어선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장산들노래 전수관과 도창리 노거수림은 이 섬이 가진 문화의 결을 한층 깊게 만든다.

 장산들노래 전수관. 지금은 보수 중에 있다
ⓒ 양진형

장산들노래는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는 대목이 구성지게 살아 있고, 경쾌하면서도 이 섬만이 지난 외로운 애수가 깔려 있다. 1981년 남도문화재 최고상, 1982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 노래는, 현재 전수관 개보수 중으로 직접 관람은 어렵다.

 아름드리 도창리노거수림
ⓒ 양진형

들노래 전수관 지척의 노거수림은 약 300년 전 방풍과 해적 방어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당시 1km에 달하던 수림은 지금 352m만 남았지만, 팽나무·곰솔·주엽나무·가죽나무 등 101그루가 이루는 아름드리 초록 터널(지방기념물 제100호)은 여전히 북서풍을 묵묵히 막아내고 있다.

 올해 5월 15~17일 '2026 섬 샤스타데이지 축제'가 열린 현장
ⓒ 양진형

이곳에서 차를 몰아 섬 동쪽 공수리로 이동하자, 푸른 초록 속에서 눈이 내린 듯한 산기슭의 정원이 나타났다. 불과 열흘 전 성황리에 마무리된 '2026 섬 샤스타데이지 축제' 현장이다. 공식 일정은 끝났지만 꽃들은 여전히 순백으로 만개해 있다. '하얀 파도가 꽃으로 피어나는 섬'이라는 주제 그대로, 정원 전체가 눈꽃처럼 환했다.

 장산도 미술관 '화이트뮤지엄' 작품 전시
ⓒ 양진형

300여m 떨어진 장산도 미술관 화이트뮤지엄도 샤스타데이지에 둘러싸여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한다. 섬이 쇠락해 가는 시대, 장산도는 하얀 꽃섬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장산도 여행 정보]

 장산도 관광 안내도
ⓒ 양진형

o 면적 25.23제곱킬로미터, 해안선 35.2km, 인구 약 1644명(2026년 4월 기준, 장산면사무소).
o 주요 볼거리 : 도창리 백제석실고분(전남 기념물 107호) / 대성산 산성 터 /장병준 생가 및 기념관/
장산들노래전수관(전남 무형문화재 21호) / 도창리 노거수림
o 샤스타데이지 축제 : 매년 5월 중순, 공수리 화이트정원 일원.
o 특산물 : 가을철 흰다리 새우와 전복
o 가는 방법 : 목포에서 쾌속선 2회, 차도선 6회 등 하루 8회 운항. 차량 반입 시 안좌도 복호항까지
육로 이용하면 시간·비용 절감.

 흰다리 새우 양식장 전경
ⓒ 양진형

 장산도 북강선착장의 차도선
ⓒ 양진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섬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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