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국가경쟁력 창출하는 혁신주체 돼야"
2026.05.31 14:00
오늘날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소멸, 산업구조 재편, 인구감소, 청년 유출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여기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등 행정통합 이슈까지 부상하면서 지역이 안고 있던 고질적 문제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1988년 창립돼 지방행정 분야의 학문적 토대를 다져온 한국지방자치학회는 주간조선과 공동으로 '대한민국 지역 대전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지역사회의 위기를 집중 진단했다. 지난 5월 26일 서울 종로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중과 부산 원도심 공동화(空洞化), 대구 제조업 쇠락 등을 짚으며 "지역이 겪는 위기는 '쇠퇴의 신호'가 아닌 새로운 균형발전 전략과 지역 혁신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집중·부산 원도심 공동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구교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수도권 집중화가 연쇄적인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울의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25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청년이 독립 후 내 집 마련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7.9년에 이른다"며 "높은 주거비 부담은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지고, 이는 저출산과 계층 간 경제력 대물림 심화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현행 부동산 정책이 서민 주거 안정보다는 '강남 3구(서초구·강남구·송파구)및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 집값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KB부동산 시세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매매가격 상승률은 강남 3구와 마·용·성 지역에서 큰 폭으로 오른 반면, 서민 주거지역으로 꼽히는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등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구 교수는 해외 주요 도시에 비해 국내의 전월세 수요도 높지 않다는 점을 들며 "지나치게 극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혼란을 겪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구 교수는 "6·27 대책과 10·15 대책 등 최근 부동산 정책에는 '빚내서 집 사지 마라' '다주택을 보유하지 마라' '갭투자를 하지 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강도 높은 규제가 서민 주거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 교수가 강북·성북·노원·도봉구 일대 대단지 아파트를 조사한 결과, 일부 단지는 월세 매물이 1~2개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면서 "부동산 정책은 시장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음 발제에 나선 김준현 국립부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부산 원도심 공동화 문제를 짚었다. 중구·동구·서구·영도구 등 부산 원도심 지역은 1990년대 해운대·센텀시티 개발 이전까지 부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맞물리며 쇠퇴를 겪고 있다. 김 교수는 부산 중구·동구 행정통합 논의를 사례로 들며 "2017년 중구·동구 통합 가능성이 사실상 커지는 상황에서, 정작 통합 대상인 중구에서 반대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구 구청장과 시·구의원, 구민들은 2017년 5월 '원도심 통합반대추진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약 1만명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또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이 통합건의서 제출에 앞서 원도심 4개 구청장과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에서도 김은숙 당시 중구청장은 면담 자체를 회피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김 교수는 "중구가 통합을 반대한 이유는 이미 원도심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고, 지역 쇠퇴를 해결할 다른 정책적 대안이 존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원도심 재생이나 상권 활성화라는 통합의 명분이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교수는 "자치구 행정통합 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를 보다 명확히 마련하고, 행정적 차원에서 일정 기준을 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지방행정체제 개편 과정에서는 주민투표 실시를 의무화해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경쟁력은 '산업'에서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승철 대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대구를 중심으로 지역 산업구조에 대한 진단을 이어갔다. 그는 "과거 대구 지역 경제를 떠받쳤던 섬유·기계 등 전통 제조업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며 "2025년 대구 순매출 기업 1위가 'IM뱅크(대구은행)'인 반면, 자동차 부품 업체의 매출이 내려가는 걸 봤을 때 제조업 성장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대구시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5대 신산업인 모빌리티·로봇·헬스케어·반도체·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전략에 대해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구에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경북대 과학기술대학원 등 관련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만큼 로봇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로봇 산업이 활성화된 중국 항저우를 벤치마킹 사례로 언급하며 "대학 연구실에서 창업으로, 다시 정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며 "시장이 바뀔 때마다 투자 대상 산업이 달라지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김병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이윤진 건국대 건강고령사회연구원 교수,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등이 참여해 발표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김병조 교수는 부산 중구·동구 행정통합 논의와 관련해 "시·군 통합의 경우 읍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2~3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자치구 통합은 이와 결이 다르다고 느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다주택자들이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지방 주택과 토지를 먼저 처분하면서 지방 자산 가치 하락과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구 교수는 "남성이 명품 시계를 하나만 산다면 '롤렉스'를, 여성이 명품 가방을 하나만 산다면 '샤넬'을 떠올리는 것처럼 주택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수요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해당 지역 아파트 가격만 더 오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윤진 교수는 "행정학자들이 아무리 기술적인 제도 개편을 논의하더라도 결국 핵심은 산업"이라며 "산업이라는 핵심 주제가 빠지면 비슷한 논의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 교수 역시 "대구의 경우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를 더 경쟁력 있게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우주복·방화복 같은 특수 소재 분야나 디자인 산업과 연계해 섬유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향수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지역은 중앙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국가 경쟁력을 창출하는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오는 7월 1일 광주·전남 통합 이슈도 통합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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