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노동 장관의 ‘위험한 불장난’
2026.05.31 23:22
변형해도 ‘상한 탱자’ 이상 되기 어려워
정부 할 일은 ‘이익 재분배’ 아닌
소부장 육성해 국산화율 높이는 것
김 장관이 말한 ‘사회연대임금’은 1950년대 스웨덴에서 처음 시행된 아이디어다. 근로자가 소속된 산업 또는 기업의 임금지불 능력이나 수익성과 무관하게 동일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을 지급하자는 취지였다. 쉽게 말하면 돈을 잘 버는 대기업 근로자들의 몫은 줄이고, 돈을 못 버는 영세기업 근로자의 몫을 늘려서 ‘임금 키 높이’를 맞추는 정책이었다.
사회연대임금은 산업적 측면에서 두 가지 효과를 냈다. 먼저 ‘좀비기업’ 퇴출 효과다. 생산성이 낮은 사양업종 분야의 기업들은 높은 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반면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들은 근로자들의 임금으로 나갈 돈을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로 돌려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다. 발렌베리 가문 산하의 에릭손, 사브, ABB 등이 초고속 성장을 한 배경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사회연대임금은 노동계층의 분화 및 노동운동의 과격화,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 해체의 길을 걸었다. 이미 반세기 전에 사실상 ‘유효기한’이 끝난 모델이다.
그리고 사회연대임금 도입 당시 스웨덴과 지금의 한국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먼저 한국의 노동인구가 7∼8배 이상 많다. 한국의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노조 조직률의 경우 당시 스웨덴은 70%대가 넘었지만 한국은 13%에 불과하다. 한국은 노조 대표성이 훨씬 떨어진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당시 스웨덴을 대표하던 스웨덴노동조합연맹(LO)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확실한 인식과 실천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민노총이나 한국노총,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가 자기 몫을 떼어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나눠주려고 할까. 오히려 기업에만 더 큰 짐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영훈 장관도 이런 점을 잘 알기에 사회연대임금에 굳이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겠지만, 어떤 변형을 시도한다 한들 ‘상한 귤’로 ‘상한 탱자’ 이상을 만들기는 어렵다.
더구나 김 장관은 사회연대임금에 더해 초과이익 재분배까지 함께 거론하고 있다. 반도체 초과이익을 협력업체들까지 공유해서 상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진쎄미켐, 대덕전자, 리노공업… 모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협력업체들이다. 동진쎄미켐은 올해 1분기에만 3281억 원 매출에 666억 원 영업이익을 남겼다. 대덕전자는 3463억 원 매출에 영업이익 513억 원을 남겼다. 리노공업은 1분기 영업이익률 47%다. 김 장관이 오지랖 넓게 나서서 재분배를 위한 ‘바람잡이’ 역할을 하지 않아도 기술력이 있는 협력업체에는 ‘과실’이 알아서 돌아가는 것이 지금의 ‘반도체 경기’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가장 시급한 숙제는 초과이익 배분이 아니다. 30%대에 불과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전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국내 소부장 기업들을 육성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최대한 국내에서 순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의 성공은 노사의 헌신적인 노력에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원이 더해진 결과”라는 점을 초과이익 재분배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한데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원 없이 성장하는 기업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래서 기업은 돈을 벌어 법인세·법인지방소득세·재산세·자동차세·면허세·취득세를 내고 고용을 창출해 국가와 지역사회에 갚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 빅테크와 반도체 업계는 ‘인공지능(AI) 혁명’ 길목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생존을 건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과 같은 기업은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해 170조 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100년 만기 회사채까지 발행해 투자 자금을 조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백조 원대에 이르는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AI 혁명은 이제 갓 막이 오른 단계다. 반도체 분야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칫 과도한 분배 요구에 발목이 잡혀 투자에 실기하면 한순간에 영원한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성장도, 환율도, 재정도, 주가도 재앙에 가까운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 지금 한국 경제의 객관적인 상황이다. 김 장관은 ‘위험한 불장난’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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