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좋아졌다는데, 왜 청년은 더 힘들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2026.05.31 16:00
반등한 성장률·증시…신규 고용시장만 거꾸로 후퇴
AI가 신입 일자리 대체 시작…구조적 취업난 현실화
1분기 한국 경제가 강하게 반등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로는 3.6% 증가했다. 회복의 중심에는 수출과 투자가 있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이 살아났고, 설비 투자 역시 기계류와 운송장비 투자를 중심으로 반등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정작 청년들의 현실은 정반대다. 1분기 청년 실업률은 7.4%로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이미 전체 실업률의 두 배 가까운 수준에서 고착화되고 있다. 아마도 실제 확장 실업률은 20%에 가까울 것이다. 현재 그냥 쉬고 있거나 실업 상태인 20대와 30대의 미취업자는 무려 171만 명에 달한다. 실업자 4명 중 1명이 청년이라고 한다.
전체 고용 상황이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청년의 사정만 다르다. 지난 1분기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3.5%로, 코로나19 충격이 한창이던 2020년(42.2%) 이후 가장 낮았다. 청년 고용률은 2024년 5월 이후 올해 4월까지 무려 24개월 연속 하락했다.
급한 대로 정부도 정책을 쏟아내고는 있다. 정부는 4월29일 '청년 뉴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재정을 투입해 2만3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공공기관 청년 인턴 규모도 3000명 확대하기로 했다. 민간기업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인 'K-뉴딜 아카데미'를 통해 1만 명에게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금융·콘텐츠 등 청년층 선호 분야의 직무훈련을 시킨다는 내용도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문턱을 낮춰 청년 3만 명을 추가 지원하고, 최대 6개월 동안 월 6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도 정작 기업이 제대로 채용의 문을 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AI가 먼저 대체한 건 신입사원 업무
높은 청년 실업률의 기본적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우선 우리 경제의 고용 창출 능력 자체가 크게 약화됐다. 고용 흡수 능력이 큰 제조업이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로 가면서 국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탓도 있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약 200만 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고학력자 수는 증가했지만, 경제가 그에 합당한 일자리를 충분히 늘리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취업은 했지만 학력이나 능력, 희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에서 일하는 이른바 '불완전고용(underemployment)'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우리 사회에서 모든 대졸자에게 원하는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최근 그 충격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새로운 문제가 있다. 바로 AI의 확산이다. AI의 본격적인 보급과 활용은 청년 고용 문제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이후 3년 동안 줄어든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 가운데 98.6%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이었다. 과거에 경력이 짧은 신입사원이 맡던 코딩이나 자료조사, 기초 분석을 AI가 대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AI 확산의 1차 충격이 신입사원 수준의 업무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한국은행은 '연공 편향형 기술 변화'라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피터 하윗 브라운대 명예교수도 AI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려는 이들의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미국의 대졸 실업률 상승과 AI 확산이 맞물리며 기업들의 신입 채용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의 22~27세 대졸 실업률은 2022년 4.1%에서 올해 2월 5.6%로 상승했다. 최근 18개월 동안 미국 내 신입 채용 공고는 35% 줄어들었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AI였다. 미국 채용시장에서는 최근 '졸업생 유령 만들기(Ghosting the Grads)'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올려놓지만 실제 채용은 하지 않는 유령 공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AI의 충격이 기존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와 정규직 해고가 웬만해선 불가능한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효율성을 고려해 신입사원 대신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거나 AI 활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민간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채용 공고 중 경력직 채용만을 원하는 기업이 전체의 82%였고, 순수 신입만 채용하는 기업은 2.6%에 그쳤다.
올 1분기 기준 청년층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4만 명 이상 감소했다. 인구 감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상황은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10명 중 8명은 업무 경험과 경력 개발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고 한다. 경험이 없어 취업하지 못하고, 취업하지 못해 경험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다.
AI의 출현으로 양질의 신입 일자리부터 사라지는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청년의 첫 직장은 단순한 출발선이 아니다. 이후 경력과 임금 수준, 직업 안정성까지 평생을 좌우하는 일종의 인생 경로의 역할을 한다. 처음에 제대로 기반을 다지지 못한 청년은 이후에도 저임금과 불완전고용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상처가 깊으면 다 나은 뒤에도 흉터가 남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른바 '흉터 효과(Scarring Effect)'로 불리는 현상이다.
AI 시대, 중요한 건 '첫 일자리'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해법을 찾는 관건은 사람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부터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덴마크식 고용 복지 모델인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다. 기업에는 고용과 해고의 자율성을 부여해 '유연성(flexibility)'을 높이는 대신, 근로자에게는 충분한 실업급여 등 경제적 지원과 적극적인 직업훈련을 제공해 '안전성(security)'을 보장하는 제도다. 유연한 노동시장과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교육과 재취업에 중점을 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결합으로 일자리 자체보다 고용 가능성(employability)을 지키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 훈련을 통한 끊임없는 재취업 지원이다. AI로 직장을 잃은 사람을 도와주고, 경력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취업 청년 한 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6000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장기화되면 1인당 평생 10억원 이상의 부담을 사회 전체에 남긴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AI 전환으로 한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AI 전환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지금 그 비용을 가장 먼저 감당하고 있는 것은 청년들이다. 원래도 넓지 않았던 취업 문이 AI의 등장으로 더 좁아지고 있다. AI 산업 전환에 따른 일자리 대책도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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