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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장가를 안 가서..." 50대 미혼 대표가 만든 '육아 천국' 회사

2026.05.31 14:10

노동부 주관 '고용평등 강조기간 기념식'
대통령표창 탄 ㈜연안항만엔지니어링
주 34.5시간제, 학부모 참관 유급휴가
롯데물산은 남성 직원 육아휴직 100%
육휴 대상 자녀 기준 8세→12세 확대
고성훈 연안항만엔지니어링 대표가 28일 서울 용산구 피스앤파크에서 열린 제26회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될까요? 사실 저는 결혼을 안 했습니다. 20년 넘게 월급쟁이로 일만 하며 살았죠. 그땐 그게 최선의 가치라고 생각했거든요."

멋쩍은 웃음을 지은 이 남성. 남녀고용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고성훈(57) ㈜연안항만엔지니어링 대표다. 겸손 섞인 말과 달리 '50대 미혼 대표님'은 2019년 회사를 차린 이듬해부터 정부 인증 가족친화·일생활균형 우수기업 지정 등 매년 새로운 수식어를 쌓고 있다.

고 대표가 20여 년 몸담은 건설 엔지니어링 업계는 본래 '워라밸'(일·생활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각종 타당성조사, 도시·항만 개발을 위한 계획·설계, 영향평가, 건설사업관리가 주된 일거리인 만큼 주말도 휴일도 없이 과로하는 일도 많다. "일부 엔지니어링 회사들엔 불공평하거나 불합리한 게 참 많았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우리' 그리고 '함께' 인데, 꿈 한번 펼쳐보자고 창업하면서 기업 가치를 '사람 중심의 함께하는 기업'이라고 정했죠." 이런 모토로 세운 연안항만엔지니어링은 직원 163명이 다니는 중소기업이지만 여느 기업보다 업무 환경이 선진적이다.

창업 첫해부터 파격이었다. 주 34.5시간제를 도입했다. 이곳 직원들은 월요일엔 오전 10시 출근하고 매일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이며 금요일엔 오후 4시 퇴근한다. 거창한 계기는 없었다. "가족들과 주말에 어딘가 놀러 가려면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고, 한 주의 첫날 출근시간 대중교통을 더 편히 타는 게 좋으니깐요."

고 대표는 직원들에겐 직급 없이 이름을 부르며 '식구'로 대했다. 자취하는 젊은 직원들 배 곪을까 회사에서 삼시 세끼를 챙겨준다. 대표님 진심을 알아본 직원들도 아이디어를 마구 던졌다. "제가 장가를 안 가서 잘 모르잖아요. 하루는 직원이 아이 초등학교에 학부모 참관 수업 가야 한다고 연차 쓴다길래 '개인 연차를 왜 쓰냐'며 학교 부모 참여 프로그램 유급 휴가를 만들었어요."

토목공학 전공자가 많은 업계 특성이 만든 '남초' 성비도 과제였다. "여러 회사에서 경리 여성 직원 빼곤 다 남성이었죠." 그래서 여성채용목표제(최소 25% 이상)를 도입하고 신입사원 성비를 최대한 5대 5로 맞추고 있다. 여성 직원을 위한 각종 임신·출산 지원책도 세웠다. △태아검진 지원(매 검진 시 1일 휴가) △난임치료휴가 운영(최대 10일·유급 2일) 및 치료비(최대 100만 원) 지원 등이다.

영향력은 회사 문밖으로도 퍼졌다. "업계 전반에 영향을 상당히 미쳤죠. 격주로 금요일 오후 4시 퇴근을 하는 회사들이 한두 곳 생겨났고, 직원 휴게실에 대형 음료 냉장고를 두고 간식코너를 들여왔더니 다른 업체에서도 따라 하는데, 자랑스럽더라고요."

경기 안양 소재 연안항만엔지니어링 사옥 휴게실에 대형 음료 냉장고와 간식 진열대가 설치돼 있다. 연안항만엔지니어링 제공


고 대표는 이제 '주 4일제'를 꿈꾼다. "아예 수요일 하루를 놀게 하고 싶어요. 저는 이틀 일하면 하루 쉬어야 해요. 주 4일 근무가 노동생산성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있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사람의 머리는 한계가 있잖아요. 월화를 열심히 일하면 하루를 쉬고 또 목금을 일하고 주말은 가족들과 쉬면 생산성이 더 올라갈 겁니다." 다만 이 제도만큼은 정책보다 한 발짝 먼저 시작하는 게 어렵다. 관을 상대로 일해서다. "정부가 주 4일제 해주면 저희는 당장이라도 따를 겁니다."

'아빠 육휴 으뜸기업' 롯데물산

장재훈(왼쪽 두 번째) 롯데물산 대표가 28일 서울 용산구 피스앤파크에서 열린 제26회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뒤 김민재(첫 번째) HR팀장을 비롯한 임직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고 대표가 말한 경영 신조를 일찌감치 알아본 대기업이 있다. 롯데그룹 계열 부동산전문기업인 롯데물산은 4년 연속 '남성 직원 육아휴직 100% 사용'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이곳 역시 부동산개발업 특성상 직원 259명 중 남성(169명)이 여성(90명)보다 두 배 많지만 각종 모성보호제도가 자리 잡았다. 그 비결에는 장재훈(57) 대표의 인사 철학이 녹아있다. 사람이 자산일 수밖에 없으니 사람에 돈 아끼지 말자는 것. 주니어(대리 이하)는 여성 직원이 절반 정도인 만큼 혼인·출산 뒤에도 경력을 쌓을 토대를 만들어야 인재를 잡을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아빠 육아 지원'에도 진심이다. 김민재 HR팀장은 "남성 육아휴직은 한 달은 의무화했고 총 석 달은 쓰길 권장하고 있다"며 "첫 한 달은 정부 지원금 외에 회사가 임금을 더 얹어줘 원래 받던 수준의 월급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으로 정부가 강조하는 '맞돌봄' 문화를 정착시켰다. 롯데물산에서 육아휴직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일상이 됐다. 다음 단계의 고민은 '기간'이다.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기간을 점차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롯데물산은 제도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계속 고민 중이다. 우선 육아휴직 대상 자녀 연령 기준을 법정 기준인 8세에서 12세로 확대했다. 초등학생 6년은 보장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7월부턴 남은 동료들의 부담을 줄일 '육아휴직자 업무 대행' 수당도 도입했다. 20만 원씩 6개월 지급(팀당 최대 2명)하고 있는데 호응이 좋다. "육아휴직자가 발생하면 팀에 선택지를 줘요. 대체인력 채용과 업무 대행 수당 중 대부분은 후자를 원해요. 부동산 개발을 하는 전문 인력이다 보니 대체 인력 채용이 마땅치 않죠."

생애주기에 따라 모성보호제도를 체계화하기도 했다. 임신준비기엔 난임시술비(최대 500만 원)와 난임휴가(연 6일, 유급 3일)를 지원하고, 임신기엔 '예비맘 휴직'(최대 90일)과 배우자 검진 동행휴가(최대 3일 유급)가 가능하다. 육아기에 접어들면 복직 이후 삶을 세심하게 살핀다. 복직자의 직장 적응을 돕는 직원 간 멘토링도 운영 중이며, 선택형근로시간제도 100% 적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지난해 여성 관리자 비율은 2023년(9%) 대비 2배(18%)가 됐고 임원 셋 중 한 명이 여성이다.

지난해 롯데물산의 임직원 가족 초청 행사 'SHOW ME THE OFFICE' 행사에 직원의 일가족이 참석해 있다. 롯데물산 제공


롯데물산은 이제 '제도를 넘어 문화를 만들자'는 포부가 있다. "제도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 제도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문화로 자리 잡는 건 또 다른 과제입니다. 앞으로도 남녀 모두 가정에 함께 기여하고 공정하게 평가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일터, 문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들 회사는 2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피스앤파크에서 열린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25~31일)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의 영예를 안았다. 이 행사는 고용노동부 주관, 한국일보 후원으로 올해 26회를 맞았다. '내 일이 존중받고 일·가정이 조화로운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행복한 일터'를 주제로 내세운 올해 행사에서는 일·가정양립 및 남녀고용평등 실천 유공자 10명과 우수기업 26곳이 정부포상을 받았다. 수상기업들은 법정 기준을 넘어선 출산·육아 지원제도 운영과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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