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좋아, 니가 웃겨서 좋아" 《와일드 씽》
2026.05.31 13:00
'원초적 유머의 순간' 확실하게 잡고 가는 코미디
무리한 설정 웃음으로 메꾸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
영화보다 곡이 먼저 화제였다. 흥겹고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Y2K' 감성을 자극하는 뮤직비디오까지 가세한 3인조 혼성 그룹 트라이앵글의 댄스곡 《Love is》가 온라인을 장악한 것은 지난 4월. 여세를 몰아 가요 프로그램에서 39주째 2위만을 기록했다는 비운의 사연을 내세운 발라드곡, "니가 좋아, 니가 웃겨서 좋아"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는 《니가 좋아》까지 반응이 터졌다.
한국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제작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에 《와일드 씽》은 주제곡을 일찍이 앞세워 관객의 마음을 공략한 드문 경우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음악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반짝 활동 후 사라졌던 혼성 그룹이 20년 만에 무대에 서기 위해 다시 뭉친다는 설정으로 달려 나가는 이 영화는 한글과 영어 제목을 동일하게 쓴다. 《Wild Sing》. 본편을 다 보고 나면 단순 직역보다는 노래하기 위해 거치는 험난한 여정을 뜻하는 쪽이 더 어울린다. 직관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라는 점도 또렷한 개성이다.
어떻게든 무대에 다시 올라야 하는 사람들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듯 낡고 열악한 지하에 자리한 용구레코드 연습실. 이곳에서 전설이 탄생했다. 헤드스핀과 윈드밀 등 브레이크 댄스 특기생으로서 스스로 '댄싱 머신'이라 이름 붙인 현우(강동원), 메인 보컬 후보로 들어온 도미(박지현), 정통 힙합 그룹 멤버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연습생으로 들어온 래퍼 상구(엄태구). 기획사 대표 박용구(신하균)의 눈에 띄어 모인 이들은 삼인조 혼성 그룹 '트라이앵글'의 멤버들로 묶인다.
데뷔 1년 만에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뿐 아니라 모든 화제성을 싹쓸이하며 가요계를 장악한 이들 앞에서 발라드 가수 성곤(오정세)은 만년 2위 신세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줄 알았던 활동의 단꿈은 예상치 못했던 사건 앞에 무너진다. 뜻하지 않게 휘말려 신문 1면을 장식한 파격적 뉴스의 주인공이 된 덕에 트라이앵글도, 성곤의 탄탄대로도 그날로 박살나 버린다.
뿔뿔이 흩어진 채로 20년이 지난 현재 각자가 처한 상황은 가지각색이다. '이 게스트는 대체 누구냐'라는 청취자들의 반응을 꿋꿋이 견뎌가며 존재감 없는 라디오 게스트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현우는 마침 유명 예능 PD가 연출하는 엑스포 유치 공연 생방송 무대에 서 달라는 반가운 제안을 받는다. 추억의 가요를 소환한다는 프로그램의 콘셉트상 가능했던 일이다. 무대를 잘 마무리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릴 것도 같다. 조건은 딱 하나. 트라이앵글 완전체로,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무대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재기의 기회 앞에 다급해진 현우의 '멤버들 찾아 삼만리'가 시작된다.
멤버들의 현재는 K팝 1세대로 이름을 날렸던 과거라곤 온데간데없는 모습이다. 도미는 굴지의 건설 회사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시집살이를 견뎌가며 재벌가 안주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상구는 무리하게 솔로 앨범 발매를 추진했다가 빚만 떠안은 채 보험판매원으로 일하며 먹고사는 중이다. 현우의 눈물겨운 설득과 각자의 의지로 트라이앵글이 다시 뭉쳐질 준비를 하던 바로 그때, 성곤은 20년 전의 사건으로 억울하게 연예계를 떠난 이후 산적 같은 외모를 하곤 야생동물 포수로 살아가고 있다. 그랬던 그 역시 마이크를 다시 잡을 기회다. 재기 준비와 기대 사이에서 모두가 분주할 무렵, 제대로 정산도 하지 않은 채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박용구 대표가 우연히 이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서 사건은 꼬이기 시작한다.
무대는 거들 뿐, 뜻밖에 이 영화의 진짜 정체는 로드무비다. 이야기의 실타래는 연습실이나 방송국에서의 상황이 아니라 길 위에서 상당 부분이 풀어헤쳐진다. 다시 뭉치는 과정까지도 험난했지만 서울에서 강원도 공연장까지 향하는 길은 더 험난하다. 가야 할 이유는 딱 하나여도 가지 못할 이유는 십수 가지는 돼 보이는 가운데 재난에 가까운 상황들을 뚫고 무대에 오르려는 집념을 불같이 발휘하는 이들의 여정은 《미스 리틀 선샤인》류의 로드무비 코미디의 결을 두른 채 웃음과 속수무책을 결합한 소동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가장 순수하게 열광했던 시절 소환
코미디는 연기하는 사람의 기세가 중요한 장르다. 일단 캐릭터의 개성이 또렷하면 그들이 서사의 구멍을 메우고 잡아끌며 영화의 동력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와일드 씽》은 무난하게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작정하고 코미디에 뛰어든 배우들 덕에 조금은 무리한 설정들이 웃음으로 눙쳐지며 무마되고 마는 효과를 발휘한다.
댄싱 머신답게 춤은 그럴싸하지만 그걸 제외하곤 어쩐지 매사 엉성해 보이는 현우를 연기한 강동원은 오랜만에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전우치》로 대변되는 능청스러운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운다. 틈만 나면 버럭대는 성질머리지만 화상 통화로 전달되는 시어머니의 닦달에는 꼼짝 못 하는 도미 역할의 박지현은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 속 감성적 얼굴을 지우고 트라이앵글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유의 선 굵은 목소리를 힙합에 영혼을 바친 순수한 상구의 열정으로 바꿔낸 엄태구가 필모그래피상 가장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며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가운데, 이 영화의 진정한 웃음 폭탄은 오정세가 책임진다. 무대에서 《니가 좋아》를 부르는 청순한 태도와 그렇지 못한 얼굴의 부조화가 그의 출연 장면마다 폭소를 부른다.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배우들에게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지 감도 안 올" 정도로 무리한 게 아니냐는 찬사를 쏟아내며 예비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이유다.
곁가지를 넓히지 않았다는 점은 《와일드 씽》의 겸손함이자 장점이다. 영화는 K팝의 세계적 전성시대를 맞이해 이 소재로 한국 음악 산업의 특수성을 이야기하거나 아이돌 그룹의 역사 혹은 명암을 다룰 의지 자체가 아예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젊은 시절 스타덤에 올랐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들이 마지막 기회를 위해 절박함에 무리를 더하며 달려가는 과정 하나로 전체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왕년의 열정을 다시 한번 끌어올려 불태우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가 굳이 댄스 그룹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겠지만, K팝 음악은 관객 각자가 무언가에 가장 열렬하게 열광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폭넓게 소환하는 장치다. 트라이앵글을 경유해 바라보는 그때의 나. 《와일드 씽》의 동력은 관객에게 이 같은 보편적 경험을 선사하려는 무해한 목표에서 빚어진다.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해치지 않아》 등을 통해 한결같이 코미디 외길을 걸어온 연출가 손재곤의 신작. 황당한 설정을 기어이 납득 가능한 감흥으로 설득해 내는 그의 장기가 여지없이 발휘된 영화다. 꼼꼼하게 설계된 코미디보다 조금은 헐렁한 구성이더라도 원초적 유머의 순간은 확실하게 잡고 가려는 코미디를 기대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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