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10만원 더 보내라는데"…부모님 용돈 계산하는 형제들 [그래도 가족]
2026.05.31 10:49
형제끼리 나눠도 금액·횟수 두고 갈등 반복
[파이낸셜뉴스] "이번 달은 병원비까지 있어서 10만원만 더 보내줘."
40대 직장인 A씨는 이 같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뒤 한숨부터 나왔다. 매달 부모님께 보내는 용돈은 정해져 있었지만, 병원비와 약값, 명절·생신 비용은 그때마다 따로 붙었다. A씨는 "월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부모님께 들어가는 돈은 조금씩 늘고 있다"며 "돈을 보내기 싫은 게 아니라 우리 집 생활비도 빠듯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부모 부양은 더 이상 한 자녀가 전적으로 떠안는 방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형제·자매가 함께 나누고, 정부와 사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은 커졌다. 그러나 인식이 달라졌다고 해서 부모님 용돈과 병원비를 둘러싼 현실의 부담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30~40대 직장인에게 부모님 생활비와 의료비, 형제 간 분담 문제는 효도와 생계가 동시에 걸린 가족 갈등으로 남아 있다.
정해진 용돈 밖에서 늘어나는 지출
A씨 형제는 부모님 생활비를 매달 나눠 보낸다. 처음에는 각자 20만원씩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정에 없던 지출이 하나둘 늘었다. 병원 검사비와 약값, 냉장고 교체 비용, 명절 선물, 부모님 지인 경조사비까지 형제 단체방에서 논의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A씨는 "매달 정해진 돈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30만원, 5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부담이 확 온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는 티를 낼 수 없어도 형제끼리는 '이번엔 누가 더 내느냐'를 두고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말했다.
형제들의 사정도 모두 같지는 않다. 한쪽은 미혼이고, 다른 한쪽은 자녀를 키운다. 부모님 집 가까이에 사는 자녀가 병원 동행을 맡고, 멀리 사는 자녀가 돈을 더 보태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기도 한다.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분담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는 몸으로 했다"는 말과 "나는 돈으로 했다"는 말이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30대 직장인 B씨는 "부모님을 직접 모시는 일은 다른 형제가 더 많이 하지만, 돈은 제가 더 내는 편"이라며 "서로 고생하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서운함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지만, 형제끼리는 계산이 남는다"고 했다.
부양은 함께라지만 부담은 집마다 달라
부모 부양을 가족만의 책임으로 보는 인식은 줄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2024년 11월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님의 노후를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는 응답은 60.3%였다. 반면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응답은 18.2%,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16.4%에 그쳤다. 부모 부양을 특정 자녀나 가족 내부의 문제로만 보던 인식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식 변화가 곧바로 현실의 부담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부모님 생활비나 병원비가 당장 필요해지는 순간에는 정부 지원이나 복지제도를 알아보기보다 자녀가 먼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녀 세대의 가계 여력은 넉넉하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2025년 12월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부채는 9534만원으로 전년보다 4.4% 늘었다. 2024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6032만원이었다. 빚 부담은 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부모님 용돈과 의료비가 추가 지출로 얹히는 것이다.
부모님께 보내는 20만~30만원은 금액만 놓고 보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이자, 카드값, 자녀 교육비, 보험료와 함께 놓이면 체감 부담은 달라진다.
특히 30~40대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시기와 부모의 노후 지출이 늘어나는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라도 양가 부모를 함께 챙겨야 한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부모 부양이 더 이상 '한 자녀의 몫'은 아니라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돈은 여전히 각 가정의 생활비 계획 안에서 계산되고 있는 셈이다.
형제 단톡방에서 갈리는 금액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님 용돈 문제는 부부 갈등으로도 번진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도 챙겨야 한다"고 하고, 아내는 "이번 달 카드값부터 봐야 한다"고 말한다. 양가 부모의 경제 사정이 다르면 더 예민해진다. 한쪽 부모는 생활비 지원이 필요하고, 다른 쪽 부모는 기념일 용돈 정도만 받는 경우 부부 사이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
여기에 형제끼리 부모님 용돈을 나눌 때도 기준은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내야 하는지, 자녀 수와 대출 부담까지 감안해야 하는지, 부모님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돈을 덜 내도 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직장인 B씨는 "형제끼리 똑같이 내자고 하면 소득이 적은 쪽이 힘들고, 소득대로 내자고 하면 많이 버는 쪽이 계속 부담한다"며 "결국 매번 대충 넘어가는데 그게 쌓인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자녀 형편을 모두 알기 어렵다. 자녀도 부모님 앞에서 생활비 부담을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돈 얘기는 자주 늦게 나온다. 병원비 청구서가 나온 뒤, 카드값이 빠져나간 뒤, 형제 단체방에서 누군가 먼저 "이번엔 어떻게 할까"라고 묻고 나서야 갈등이 시작된다.
효도와 생계 사이에 남은 계산
부모님께 드리는 돈은 단순한 지출로만 보기 어렵다. 자녀에게는 미안함과 책임감이 함께 따른다. 그래서 줄이자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신 부부끼리 다른 소비를 줄이거나, 형제끼리 속으로 서운함을 삼키는 방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A씨는 최근 형제들과 부모님 지출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매달 드리는 용돈과 병원비, 명절·생신 비용을 따로 보자는 데까지는 의견이 모였다. 다만 누가 얼마를 더 낼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께 돈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죄송하다"며 "그래도 형제끼리 계속 눈치만 보면 결국 더 크게 싸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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