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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럴 거면 왜 맞벌이 해?"…월 800 벌어도 마이너스, '가짜 소득' 잔혹사 [얼마면 돼]

2026.05.31 09:02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외벌이 가구보다 약 100만 원가량 높다. 버는 만큼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구조적 함정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아니, 당신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 달에 800만 원을 버는데, 왜 이번 달도 카드값이 빵꾸가 나는 거야?"

금요일 밤 11시. 거실 식탁에 마주 앉은 40대 직장인 K씨 부부의 앞에는 이번 달 신용카드 명세서와 텅 빈 통장 잔고가 놓여 있다.


외벌이 김 부장 네보다 월수입은 훌쩍 높으니 남들보다 빨리 대출을 갚고 은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뼈 빠지게 일해 벌어들인 돈은, 월급날이 지나기 무섭게 정체불명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대체 누굴 위해 이렇게 악착같이 맞벌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 '황혼 육아 수당'과 출퇴근 차량 2대…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
/게티이미지뱅크

맞벌이 부부의 첫 번째 블랙홀은 단연코 '시간의 외주화' 비용이다. 퇴근이 늦은 K씨 부부를 대신해 올해 5살인 딸의 유치원 하원과 저녁 식사, 주말 미술 학원 픽업까지 전담해 주는 친정어머니께 드리는 수고비는 매월 150만 원. 부모님 용돈이라는 명목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결코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고정 지출'이다.

출퇴근 동선이 다른 부부의 특성상 차량 2대 유지도 필수다. 자동차 할부금 두 대 분량에 양쪽 자동차 보험료, 주유비, 그리고 정기적인 소모품 교체 비용까지 더하면 매달 100만 원이 우습게 깨진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까지 합치면, 이미 숨만 쉬고 살아도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 전체가 증발해 버리는 기적의 계산식이 완성된다.

◇ "밥 해 먹을 힘이 어딨어"… 체력을 돈으로 사는 배달 앱 VIP
연합뉴스

더욱 뼈아픈 것은 '체력 방어 비용'이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파김치가 되어 저녁 7시 30분에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 문을 열고 찌개를 끓일 에너지가 1%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 소파에 기대어 배달 앱을 켜고 최소 4만 원짜리 저녁 식사를 습관적으로 결제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식료품·외식 소비지출이 외벌이 가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푼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밖에서는 식후 아메리카노마저 끊고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 아빠지만, 정작 퇴근 후에는 방전된 체력을 보상받기 위해 비싼 배달비와 외식비를 망설임 없이 결제하는 모순이 매일 밤 반복된다. 주말이라고 다를까. 평일에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해 키즈카페와 복합쇼핑몰을 전전하며 또다시 지갑을 연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치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진단한다. "맞벌이 부부의 높은 배달 및 외식비 지출은 단순히 소비 성향이 커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과 '체력'이라는 자원을 '비용'을 지불해 사들이는 전형적인 '생존형 편의 소비'"라며 "타임 푸어 상태인 3040 맞벌이 가구에게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 불가결한 지출 구조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는 쳇바퀴… '가짜 소득'의 굴레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맞벌이 부부의 영수증은 이러한 진실을 말해준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월 800만 원은 온전한 내 소득이 아니다.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아이를 맡기고(시터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방전된 체력을 보충하고(배달비), 일터로 향하기 위해(차량 유지비) 지불해야 하는 '생산 유지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완벽한 '가짜 소득'이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은 일찍이 자신의 저서 『맞벌이의 함정』을 통해 이 현상을 꼬집은 바 있다. 그는 "맞벌이 부부는 소득이 늘어난 만큼 주택 대출, 보육비, 차량 유지비 등 깎을 수 없는 '고정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외벌이 가구보다 경제적 충격(질병, 실직 등)에 훨씬 더 취약하고 파산할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남들보다 안전해지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살얼음판 위를 걷게 된다는 뜻이다.

"도대체 우린 누굴 위해서 이렇게 뼈를 갈아 넣고 있는 걸까?"

신용카드 명세서를 덮으며 K씨의 아내가 내뱉은 한숨은,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40 맞벌이 부부 모두의 실존적 현타를 대변한다.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맞벌이'라는 풀악셀을 밟고 있지만, 정작 우리 가족의 통장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잔혹한 쳇바퀴 속을 걷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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