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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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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구절이 누군가의 '증언'이나 '외침' 될 때 [리터러시+]

2026.05.31 08:47

더스쿠프 리터러시
북한을 떠나 온 사람들
코리안드림문학 포럼 및 특강
1990년대말 탈북 수기부터
2013년 망명 작가 문예지 창간
탈북민들의 목소리가
문학으로 다시 피어날 때
#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로 온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터놓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문학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탈북 시인들이 쓰는 시를 읽다 보면 누군가의 삶의 증언과 외침을 들을 수 있다.

# 이승하 시인(중앙대 명예교수)은 이들의 작품을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억압받는 이들의 증언이자 자유를 향한 외침"이라고 말했다. 문학적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그 절실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위해 방남했던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의 긴장된 얼굴들. [사진 | 뉴시스]
"괜찮다는 거짓말/잊었다는 거짓말." 필명 '봉순이'로 활동하는 한 탈북 시인은 자신의 시 '탈북민의 거짓말'을 이렇게 연다. 1987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2003년 북을 떠난 그에게는, 괜찮다는 말도 잊었다는 말도 거짓이다.

통일부 집계를 보면,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2025년 말 기준 누적 3만4500여명이다. 여기에 중국과 동남아 등 제3국에 신분을 감춘 채 머무는 이들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공식 통계조차 없다. 수만명에서 수십만명까지 추정치가 엇갈린다. 이 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가.

이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가 지난 5월 15일 국회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2026 상반기 코리안드림문학 포럼 및 특강'. 코리안드림문학회와 김준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서 이승하 시인(중앙대 명예교수)은 '탈북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통일된 조국인가'라는 제목으로 첫 발제에 나섰다.

이승하 시인은 그 답을 시에서 찾았다. 탈북 시인들의 시를 직접 읽어주는 방식으로, 그는 '증언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했다. 이 시인이 먼저 꺼낸 것은 이명애 시인의 시다. 1965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2005년 탈북한 그는 2017년 등단해 세권의 시집을 냈다.

시 '연장전'은 아시안게임 남북 축구 결승전을 그린다. 남한 선수의 공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고, 패한 북한 선수들은 "털썩털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다." 그러나 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금메달은 중요치 않다/남한과 맞대결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저들은 사상투쟁의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패배한 선수를 기다리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냉동 체제의 엄한 추궁이다.
포럼에 참석한 이승하 시인. [사진 | 더스쿠프, 뉴스페이퍼]
또 다른 시 '외래어'는 남한에 온 뒤의 낯섦을 담았다. 엘리베이터와 아르바이트, 터미널과 터널이 뒤섞인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홈에버 달라고 말했다가/온몸에 쏟아지는 눈길에 당황한다." 외워지지도 않고 물어볼 용기도 없는 외래어는 그에게 "두렵기만 한" 말이다.

봉순이 시인의 '첫사랑'은 탈북이 곧 이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널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부둣가의 어느 작은 전봇대 아래." 곧 북을 떠난다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한 화자는 "한숨만 연거푸 내쉬"고, 차라리 떠나는 대신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들 앞에서 이 시인은 분명히 못 박았다. 이들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억압받는 이들의 증언이자 자유를 향한 외침"이라는 것이다. 문학적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그 절실함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인의 발제는 탈북문학이 걸어온 길을 함께 짚었다. 탈북민이 책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탈출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한 수기가 먼저 나왔고, 황장엽의 회고록 같은 기록이 이어졌다. 2011년 국제PEN 망명북한작가센터가 국제PEN 한국본부 산하단체로 거듭났으며, 2013년 망명 작가들의 문예지가 창간됐다.

이 시인은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나 그들의 꿈을 사실 잘 모른다고 했다. 유튜브 영상 몇개로 북한을 다 안다고 여기는 태도를 경계한 것이다. 그는 관련 책을 읽고 탈북민과 연구자들을 만나며 그 목소리를 모아 왔다고 말했다.

이 시인에게 분단은 개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외조부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다른 국회의원들과 함께 미아리고개에서 "철삿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간" 인물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남편(이 시인의 외조부)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55년이 흐른 뒤인 2005년 7월 27일, 평양시 재북 인사들이 동아일보에 묘비 사진을 게재해 1954년 2월 4일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45세 젊은 나이에 작고한 것이다. '월북'이라는 누명이 벗겨진 건 2017년이었다.
[사진 | 뉴시스]
분단은 그에게 교과서 속 단어가 아니라 집안의 빈자리였다. 그는 2023년부터 3년간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의 남측 편찬위원으로도 일했다. 남북 대화 채널이 끊긴 뒤 사전 편찬은 남측만의 작업으로 남았다. 그는 발제문에서 그 더딘 걸음을 지켜보며 "통일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발제문 제목 '탈북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통일된 조국인가'에는 이 시인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기력이 쇠해 통일의 당위성을 외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 통일을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이는 탈북민이 아닐까. 이 시인의 물음은 거기서 출발했다.

탈북 시인들의 시는 답 대신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괜찮다는 말이 거짓이 되는 삶, 모국어가 두려운 외래어로 바뀌는 삶.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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