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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인사이드] 주인 없는 남극·우주서 범죄 나면 누가 처벌하나

2026.05.31 06:01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동료 대원들을 해치려 한 혐의를 받는 50대 월동대원이 지난 28일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 대원에게 살인예비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대원은 기지 안에서 길이 47㎝짜리 도검을 직접 만든 혐의를 받는다.

사건 자체는 살인예비와 불법 도검 제작 혐의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일반 형사사건과 다른 질문이 따라붙는다. 범행이 벌어진 곳이 남극이기 때문이다. 장보고과학기지는 한반도에서 1만㎞ 넘게 떨어져 있다. 겨울이 시작되면 항공기 운항도 쉽지 않다. 경찰서도, 검찰청도, 법원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서 형사사건이 벌어지면 어느 나라 법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처벌할까.

남극 장보고기지 전경. /조선DB

남극은 특정 국가가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일반 영토가 아니다. 우주나 공해처럼 ‘주인 없는 공간’에 가깝다. 그렇다고 법의 공백지대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국가의 공권력이 곧바로 미치기 어려운 공간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형사사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극은 법 밖의 땅 아니다… 한국인 범죄는 국내법 적용 가능

남극조약 체제는 남극의 영유권 문제를 동결한 채 평화적 이용과 과학활동을 중심으로 남극을 관리한다. 어느 한 나라가 남극 전체를 자기 영토처럼 지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장보고과학기지도 한국이 운영하는 과학기지일 뿐, 남극 땅 자체가 한국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남극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국내 형법이 적용될 수 있다. 출발점은 형법상 내국인의 국외범 규정이다. 사건의 핵심은 “장보고기지가 한국 영토인가”가 아니라 “한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를 한국 형사사법이 처리할 수 있느냐”다.

형사법을 전공한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땅이 아닌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속인주의가 작동한다”며 “한국인이 관련된 사건이라면 국내 형사사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살인은 어디서든 범죄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국내 형법 적용 자체를 어렵게 볼 필요는 없다”며 “피의자를 국내로 데려와 수사와 재판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따라서 남극이라는 장소는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만, 처벌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법 적용의 기준은 남극이 한국 영토인지 여부가 아니라, 피의자의 국적과 범죄의 성격이다.

◇경찰 없는 기지에선 먼저 위험 차단… 귀국 뒤 수사·재판

문제는 절차다. 남극기지에는 경찰관도 검사도 없다. 수사기관이 현장에 곧바로 출동할 수도 없다. 겨울철에는 기지가 사실상 고립되기 때문에 피의자를 즉시 국내로 이송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때 가장 먼저 이뤄지는 조치는 본격적인 사법처리보다 현장 위험 통제다. 기지 책임자와 대원들은 흉기 등 위험 물품을 확보하고, 피의자를 다른 대원들과 분리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 기지 책임자가 경찰이나 검사는 아니지만, 대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긴급 조치는 가능하다. 정부도 남극기지에서 범죄가 발생할 경우 현지 격리, 증거 확보, 수사 협조 등에 관한 비상 매뉴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이 아니더라도 범행 현장에서는 현행범 체포가 가능하다”며 “현장에서는 우선 위험을 제거하고, 이후 국내 수사기관에 넘기는 구조로 보면 된다”고 했다. 실제 수사와 기소, 재판은 피의자가 국내로 이송된 뒤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남극기지에서 형사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에서는 대원 사이 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피의자로 지목된 러시아인은 본국으로 송환돼 형사절차를 밟았다. 2025년 남아공 SANAE IV 기지에서도 한 대원이 동료를 폭행·위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겨울철 고립으로 즉각적인 철수가 어려웠다. 남아공 당국은 심리 지원과 원격 조사 대응을 병행했다.

이 사례들은 남극기지 범죄의 공통된 처리 방식을 보여준다. 현장에서는 먼저 위험을 차단하고, 본국이 나중에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한다. 남극에서는 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법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국제우주정거장 /조선DB

◇우주선·선박·항공기도 마찬가지… 영토보다 ‘국적·등록’이 기준

이런 문제는 남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공해, 항공기 안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생긴다. 모두 특정 국가의 영토라고 보기 어려운 공간이지만, 범죄가 벌어졌을 때 관할권을 정하는 기준은 있다.

우주에서는 ‘어느 나라 땅인가’보다 ‘어느 나라가 등록한 우주 물체인가’가 중요하다. 우주조약은 우주 물체를 등록한 국가가 그 물체와 탑승 인원에 대해 관할과 통제를 유지한다고 정한다. 국제우주정거장처럼 여러 나라가 참여한 시설에서는 등록국, 국적국, 피해자 국적, 참여국 간 협정이 함께 고려된다.

공해상 선박 범죄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영해도 아닌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우선 그 배가 어느 나라 국기를 달고 운항하는지 따진다. 이른바 기국주의다. 해적행위나 선박 납치, 해상 테러처럼 국제적 위험이 큰 사건은 별도의 국제협약과 국내 특별법이 적용되기도 한다.

항공기도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해외 공항에서 출발했거나 공해 상공을 지나고 있더라도, 항공기 안에서 벌어진 범죄와 안전 위해 행위는 항공기 등록국의 관할이 출발점이 된다. 다만 착륙국, 피해 발생국, 항공 안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의 관할도 겹칠 수 있다.

몇 년 전 ‘땅콩 회항’ 사건도 해외 공항에서 출발한 국적 항공기 안 행위가 국내 재판으로 이어진 사례다. 당시 대법원의 핵심 판단은 국내 법원이 사건을 다룰 수 있는지가 아니라, 지상 이동 단계의 회항이 항공보안법상 ‘항로 변경’에 해당하는지였다.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한국에 관할권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처벌은 각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한 변호사는 “남극은 한국 영토는 아니지만 법이 미치지 않는 공간도 아니다”라며 “한국인이 저지른 중대 범죄라면 속인주의에 따라 국내 형사절차가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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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훈 기자 itsyou@chosunbiz.com 이유경 기자 ly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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