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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맥주는 술술 넘어갈까…맥주 맛 '드라이 전쟁' [日요일日문화]

2026.05.31 07:30

원래 진한 맛 라거였던 日 맥주
시장조사 통해 바뀐 일본인 입맛 반영
어디에나 어울리는 '깔끔함'으로 승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아는 일본어 표현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마비루 구다사이(생맥주 주세요)"일 것 같습니다. 평소 소주만 마시는 지인들도 일단 일본에 오면 생맥주부터 시키는 것이 참 재미있는데요. 어떤 안주와도 어울리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일본 맥주의 특징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맥주가 원래부터 이런 맛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 맥주의 상징인 '깔끔함'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데요. 일본 맥주 맛의 기준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요? 이번 주는 일본 맥주 역사에 빠질 수 없는 '드라이 전쟁'에 대해 들려드립니다.

아사히음료에서 소개하는 생맥주. 아사히음료.

원래 이 맛이 아니었다…일본 맥주의 역사

일본에 처음 들어온 맥주는 영국의 전설적인 맥주 브랜드 '바스(Bass)'였다고 해요. 타이태닉호에도 실렸다는 페일에일이죠. 개항장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오죽하면 위조품이 등장할 정도였다고 해요.

맥주 하면 또 유명한 곳이 독일이죠. 일본에서 영국 맥주가 인기라는 소식이 독일까지 전해지면서, 독일이 일본 시장 진출을 노리게 됩니다. 독일 대사관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해요. 당시 메이지 유신을 맞은 일본은 법률, 의학,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일식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독일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죠.

개항기 일본에 들어왔던 영국의 바스 맥주. 월드비어.


그러다 1885년 일본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이 양조 회사 '저팬 브루어리 컴퍼니'를 설립합니다. 양조 기술자는 독일인, 설비부터 맥아, 홉도 모두 독일에서 수입해 완벽한 독일 맥주를 만들었죠. 그렇게 1888년 출시된 것이 독일식 라거 맥주, 기린 맥주입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890년 '에비스 맥주', 1892년 '아사히맥주' 등이 줄지어 탄생하죠. 모두 설비를 독일에서 수입해 만든 독일식 라거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독일식 라거의 맛은 어땠냐. 풍미가 강하고 쓴맛이 강한, 걸쭉하고 붉은색의 맥주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진한 맥주였던 거죠. 지금의 황금색 생맥주를 생각하면 상상이 잘 안 되긴 하네요.

이후 20세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때는 원료 부족으로 맥아와 홉을 줄이고 쌀이나 이런 것을 섞어서 맥주를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진한 라거보다 담백한 스타일이 확산했고, 사람들도 담백한 맥주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슈퍼 드라이가 바꾼 판도…'드라이 전쟁' 시작

이 흐름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1987년 출시된 '아사히 슈퍼드라이'입니다. 1980년대 맥주 시장은 기린이 꽉 잡고 있었다고 해요. 아사히는 시장 점유율이 낮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아사히에서는 당시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하고 쓴맛의 맥주가 아니라, 깔끔하고 마시기 편한 시원한 맥주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확실히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쪽으로 입맛이 바뀌고 있던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맛을 내야 할까. 아사히가 참고한 것은 일본 전통주 '니혼슈'였습니다. 니혼슈는 단맛이 느껴지는 '아마구치(甘口)'와 단맛이 적고 뒷맛이 깔끔한 '카라쿠치(辛口)'로 풍미를 구분하는데요. 아사히 개발진은 이 카라쿠치 개념을 맥주에 적용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리고 몇 잔이고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목표로 내세웠다고 해요. 개발진은 일본주의 카라쿠치 개념을 맥주에 적용하기 위해 발효력이 높은 효모를 채택하고 양조 공정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묵직한 풍미가 있는 맥주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끝맛, 그리고 청량한 목 넘김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죠. 시행착오 끝에 발효력이 좋은 효모를 채택하고, 이 효모를 살리기 위해 양조 방식까지 개선하면서 기존 맥주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선보입니다. 카라쿠치는 '슈퍼 드라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지금의 은색 캔을 전면에 내세워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죠.

아사히 슈퍼드라이 캔. 아사히음료.


이 변화는 일본 맥주 역사상 보기 드문 성공을 만듭니다. 당시 '업계 1위'를 달리던 기린을 위협할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했고, 산토리와 삿포로, 기린 등 모든 경쟁사도 이 '드라이 맥주'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죠. 업계에서는 이를 '드라이 전쟁(ドライ??)'이라고 부릅니다. 이때부터 일본 맥주의 기준은 '깔끔함'과 '술술 넘어가는 느낌'이 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 맛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1980년대 후반을 '일본 맥주의 맛이 모두 드라이하게 바뀐 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일본 맥주가 특별히 더 진하거나 강해서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죠. 강렬함보다 어떤 음식에도 어울리는 깔끔함이 한국인도 '나마비루 구다사이'를 외치게 만든 것인데요.

진한 라거에서 드라이로 바뀐 일본 맥주 역사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일본 맥주도 완성형은 아닐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맛있는 맥주의 기준은 또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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