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중동' 등 복합 변수에 쉴 새 없었다…'실용외교' 위기관리 1년
2026.05.31 06:00
한중관계 뚜렷한 복원 기조…한일은 셔틀외교 안착으로 '공동 이익' 추구
(서울=뉴스1) 노민호 김예슬 유민주 기자 = 이재명 정부는 비상계엄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복잡해진 외교·안보 환경 속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 출범 후에도 미국의 '거래적 압박 외교'로 만만치 않은 고비를 넘겨야 했지만, 한중·한일관계 개선으로 동북아에서 한국의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고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31일 받는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폭탄을 상대해야 했다. 당시 한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정상외교의 공백이 장기화한 상태였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상화 관세를 무기로 내세운 미국과 통상·무역 협상이라는 어려운 게임을 치러야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전화통화를 갖고, 두 정상 모두 경험한 '암살 위협'을 화제로 삼으며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형성했다.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트럼프 맞춤형' 전략을 가동하며 협상에 속도를 냈고, 8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큰 틀의 관세 합의에 도달했다.
이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관세 협상의 세부적인 내용을 확정하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 핵심이다.
정부의 '트럼프 맞춤형' 전략은 그의 '환심'을 사 고비를 넘기는 것 못지않게 국익 챙기기에도 적절하게 활용됐다. 특히 이 대통령은 경주 정상회담 '신리 금관' 모형을 선물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은 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을 승인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파격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같은 양국 정상 간 합의 내용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명문화됐다. 이는 한미 간 외교·안보 현안 논의에 중심축이 됐다. 팩트시트에 명시된 한국형 핵잠 건조를 위한 양국의 협력 추진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또는 조정을 위한 협력'은 안보 분야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적 압박 외교'는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한국을 상대로 한 상호 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여기에 쿠팡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미국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한미 간 핵잠 및 원자력 협력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의 역시 수개월간 지연됐다.
안보 분야에서도 한미 간 협의는 쉽지 않았다.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등 국방비 인상을 요구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대중 견제에는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대북 안보는 좀 더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구상을 전개해 한반도 안보 지형에 급격한 변화를 줬다.
지난 2월 주한미군이 우리 군과 구체적인 계획을 공유하지 않은 채 서해 상공에서 훈련을 진행하다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이란을 침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이른바 '구성 핵시설 발언'으로 인한 미국의 대북 정보 공유 제한 조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한 한미 간 이견 등 안보 분야에서의 한미 간 소통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의 전략적 구상에서의 우선순위는 결국 대중 견제"라며 "대중 견제 참여 요구에 대한 대응과 다른 현안을 분리해 관리하면서도 한미 간 전략적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이재명 정부 외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한미는 관세 문제 등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기브 앤드 테이크' 합의를 만들어냈지만, 당장 눈앞에 다가온 핵잠 협상과 관련해 한국이 구상하는 핵잠 사업과 미국이 생각하는 방식엔 여전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라며 여전히 정부에게 '어려운 협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한중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였다. 정부가 정상 간 소통을 재개하고 외교·경제 채널을 복원하는 데 집중하면서, 경색됐던 양국 관계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갔다.
미중 전략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한쪽에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는 입장을 유지하며 외교적 공간 확보에 성공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1년 만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그리고 올해 1월 대통령의 첫 해외 일정으로 이뤄진 국빈 방중을 통해 한중관계를 크게 복원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 이같은 평가를 뒷받침한다.
중국과의 협력 채널을 확대하며 경제·공급망·문화 교류 복원에도 속도를 내고 있고,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완화 분위기와 인적 교류 회복도 양국 관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나 북미, 남북 대화 재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이 정치외교적 관계를 더 두텁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력 어젠다 세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김현욱 소장은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 분야에서 그간 경쟁자였던 중국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 분야에서 한중 간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요인 발굴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과거사로 인한 갈등을 앞세우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외교 압박과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에너지 협력 강화 필요성 등 한일 각자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모두 걸린 사안과 관련한 협력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정세가 펼쳐진 것도 한일관계 개선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노동자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오래된 과거사 문제로 인한 구조적 갈등 요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외교가에서는 지난 1년간 양국이 갈등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향후 한일관계의 관건은 경제·공급망 협력을 넘어 안보 분야 협력을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느냐에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앞으로는 안보 분야에서 한일이 어떤 협력을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최근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차관급으로 격상돼 정례화되는 등 제도적 진전은 있었지만, 안보 협력의 범위와 속도를 놓고는 여전히 양국 간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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