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카펫은 원래 파란색이었다…아무나 못 밟는 레드 카펫의 비밀
2026.05.30 07:00
당신이 잘 몰랐던 칸영화제<3>
한국 영화 ‘화란’이 2023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었다. 김창훈 감독, 배우 송중기, 홍사빈, 김형서(비비)가 그해 5월 24일 오후 ‘화란’의 공식 상영을 앞두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제작자인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가 함께 했다.
칸영화제 공식 상영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복장 규정에 따라야 한다. 남자는 검은색 턱시도 또는 정장을 입어야 하고, 보타이를 매야 한다. 여자는 이브닝드레스를 착용해야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녀 모두 구두(또는 하이힐)를 신어야 한다. 상영될 영화의 관계자도, 관객도 예외가 없다. ‘복장불량’은 입장 불가다. 이날 한 대표는 특별한 옷을 입고 레드 카펫 위에 올랐다. 배우 전도연이 선물해준 정장이었다.
당시 전도연은 한 대표가 제작하던 영화 ‘리볼버’(2024)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전도연은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자배우상을 받았다.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대장을 받았고, 2015년에는 한 대표가 제작한 ‘무뢰한’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전도연은 칸영화제 레드 카펫의 의미와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대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정장을 선물한 거다.
칸영화제하면 많은 이들이 레드 카펫을 떠올린다. 그런데 레드 카펫은 칸영화제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여러 행사에서 곧잘 쓰인다. 특히 영화 행사와 안성맞춤으로 여겨진다. 베를린국제영화제나 베니스국제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 행사 뿐만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한국 영화제들도, 청룡영화상 등 여러 영화상 시상식도 레드 카펫을 행사에 활용한다. 하지만 유독 칸영화제 레드 카펫이 주목 받는다.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인식과 더불어 숱한 스타들이 붉은 융단 위에 올라 환히 미소짓는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서다.
칸영화제 초청장을 받는다고 모두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초청 부문에 따라 레드 카펫을 밟을 수도 못 밟을 수도 있다. 공식 부문이 아닌 비평가주간과 감독주간에 초청된 영화들은 행사장이 다르기에 우리가 익히 아는 레드 카펫과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칸영화제를 상징하는 레드 카펫은 언제부터 행사장에 깔린 걸까. 어느 영화의 감독과 배우 등이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는 걸까. 레드 카펫에서 금지된 행동은 무엇일까.
칸 레드 카펫 원조는 아카데미상
제1회 칸영화제는 당초 1939년 9월 1일 개막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큰 전쟁으로 번질 것이라 예상 못 했다. 주최 측은 일단 개막을 10일 뒤로 연기했으나 전쟁의 포화는 더 거세졌고, 영화제는 결국 열리지 못 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났다. 칸영화제는 1946년 9월 20일 처음 열렸다. 당시 카펫은 푸른색이었다. 프랑스 남부 도시 칸 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짙푸른 빛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블루 카펫은 1949년까지 공식 사용됐다. 이후 칸영화제는 카펫 색깔을 규정하지 않았다. 블루 카펫과 레드 카펫이 섞여 쓰였다. 붉은색 융단이 영화제를 상징하지는 않았다.
1983년 영화제의 새 중심건물 팔레 드 페스티발이 완공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칸영화제 측은 상영작 관계자들이 극장에 입장할 때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고 싶었다. 프랑스 언론인 이브 무루시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무루시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팔레 드 페스티발 인접 도로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길에 레드 카펫을 까는 것이었다. 무루시는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착안했다. 할리우드에서는 1922년 영화 ‘로빈 후드’ 첫 상영회 행사 당시 로스앤젤레스 이집트 극장 입구 쪽에 레드 카펫을 깐 후 붉은색 융단 사용이 보편화됐다. 아카데미상 시상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붉은 색 융단은 고대부터 귀인 접대를 위해 사용돼 왔다.
칸영화제는 1984년 레드 카펫 행사를 공식화했고, 시간이 지나며 지금 행사 유형으로 굳어졌다. 어떤 영화의 공식 상영회가 열리면 해당 영화의 감독과 배우 등이 차에서 내린 후 약 60m 길이의 레드 카펫을 걷는다. 이후 레드 카펫이 이어진 계단 24개를 올라간 후 뤼미에르대극장(팔레 드 페스티발 건물 안에 있다)으로 들어간다. 24는 영화를 상징한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 때 영화는 1초당 24프레임으로 구성됐다.
모든 영화가 레드 카펫 행사 하진 않아
모든 영화가 공식 상영회와 레드 카펫 행사를 치르는 게 아니다. 경쟁 부문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 비경쟁 부문 초청 영화는 공식 상영회와 더불어 레드 카펫 행사가 열린다. 올해 한국 영화 ‘호프’는 경쟁 부문에, ‘군체’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 명단에 올랐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은 대중적 성격이 강한 장르 영화를 심야에 상영한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은 2010년까지만 해도 레드 카펫이 아닌 블루 카펫 행사를 했다. 해당 부문에 초청된 영화의 감독과 배우 등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공식 상영회 때 블루 카펫을 밟고 드뷔시극장(팔레 드 페스티발 안에 있다)으로 난 별도 출입구로 입장했다. 그러다 2011년부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도 레드 카펫 행사에 포함됐다. 2011년 이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 영화 관계자들은 공식 상영회 때 뤼미에르대극장으로 난 레드 카펫을 밟고 팔레 드 페스티발로 들어간 후 건물 안 통로를 통해 드뷔시극장으로 이동한다.
칸프리미어 부문과 특별 상영 부문에 초청된 영화의 경우 일부만 레드 카펫 행사를 경험할 수 있다. 영화제 측에서 거장 감독이나 유명 배우의 영화라고 판단했을 때만 ‘간택’ 받을 수 있다. 뤼미에르대극장 공식 상영 영화가 아니면 관객 복장 규정도 까다롭지 않다.
비평가주간(1962년 시작)은 프랑스영화평론가협회가, 감독주간(1969년 시작)은 프랑스영화감독협회가 별도로 주최한다. 행사장은 팔레 드 페스티발 밖 일반 극장이다. 레드 카펫 행사는 따로 열지 않는다. 올해 감독주간에 초청된 한국 영화 ‘도라’의 정주리 감독과 일본 배우 안도 사쿠라, 한국 배우 김도연 등이 레드 카펫을 밟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없는 이유다. "'도라'의 감독과 배우가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는 언론 보도는 ‘칸영화제에서 공식 상영회를 했다’는 것의 수사적 표현이다.
칸 가고도 레드 카펫 못 밟은 기생충의 ‘근세’
레드 카펫 행사에 해당하는 영화라 해도 주요 관계자 모두가 참여할 수는 없다. 감독과 배우가 우선이며 보통 제작자가 함께 한다. 드물게 투자배급사 대표가 레드 카펫에 함께 서기도 한다. 공동 제작자가 많을 때 누가 레드 카펫에 오를지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레드 카펫 행사 참여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배우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지하실에 사는 남자 근세 역할을 맡은 배우 박명훈이 대표적이다. 박명훈은 2019년 칸영화제 때 ‘기생충’으로 칸에 가고서도 레드 카펫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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