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15세미만 SNS 금지법', 프랑스 초강수... 한국은 왜 못하나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2026.05.30 19:21
| ▲ 지난 2025년 11월 25일,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광장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프랑스가 공개한 ‘키드 톡 숍(Kid Tok Shop)’이라는 제목의 사회운동 및 예술 설치 작품의 모습. 이 설치 작품은 인형 상자 안에 갇힌 한 젊은 여성을 보여주며, 틱톡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이 소셜 네트워크가 사용자의 데이터와 감정을 어떻게 악용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
| ⓒ EPA/연합뉴스 |
왕을 단두대에 세우며 혁명의 나라라는 또렷한 지문을 세계사 속에 새긴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각인시킨 나라다. 골목마다 CCTV 설치를 골자로 하는 소위 '포괄적 보안법'이 시민들의 격한 반대로 무산되었던 것이 불과 6년 전 일이다.
그런데 치안보다 인권을, 통제된 질서보다 무질서 속에 존중되는 자율을 상위 가치에 올려놓던 이들이, 이번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선봉에 서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포로가 된 청소년들을, 그 치밀한 알고리즘의 수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 프랑스 사회가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의회, 시민 여론, 미디어가 함께 다가오는 9월 새학기부터 15세 미만 청소년들을 SNS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지'로 아이들을 구하자
"금지를 금지하라" 외쳤던 68세대의 후손들은, 오늘날 15세 이하 청소년들에 대한 SNS 금지를 과감히 택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범람이 어린 세대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관용의 수위를 훌쩍 넘어섰다는데 동의한 것이다.
온 나라가 '금지'를 위해 대동단결하게 된 데에는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촉매제가 됐다. 지난해부터 14~15세의 소년들이 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또래 학생들이나 교직원·교사를 살해, 혹은 상해를 입히는 충격적인 일이 잇따랐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결과, SNS가 폭력의 직접적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진단이 대두됐다.
2024년 11월엔 틱톡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일곱 가족이 틱톡을 상대로 민사 소송에 나섰다. 이들은 틱톡이 자살·자해·섭식 장애를 조장하는 영상을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노출했고 그 결과, 자신의 자녀들이 자살 혹은 자해를 했거나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2025년 3월 프랑스 하원에서는 관련 사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틱톡이 미성년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조사위원회'를 발족했고, 9월에 이 조사위원회는 15세 미만 청소년의 SNS 접속 금지 및 디지털 통행금지(오후 10시~오전 8시) 도입 등 43가지 강력한 권고안을 제시했다. 특히 틱톡을 "청소년의 심리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최악의 SNS 중 하나"라로 지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 ▲ 지난 2025년 9월 11일, 틱톡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당 의원 아르튀르 들라포르트(오른쪽)와 르네상스당 의원 로르 밀러 |
| ⓒ 프랑스 국회방송 유튜브 캡처 |
해당 보고서는 슬픔, 우울, 불안과 관련된 영상을 한두 번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알고리즘이 유사한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추천하여, 청소년을 우울증, 자해, 자살 사고가 담긴 '토끼굴(rabbit hole)'로 밀어 넣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위험한 도전을 부추기는 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 역시 매우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이며, 이는 미성년자의 정신적 외상을 유발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보고서는 틱톡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명시하고 있다. 현재 파리 검찰청은 틱톡의 혐의와 관련하여 공식 수사에 착수한 상태고, 그 사이 집단 민사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16개로 늘어났다.
15세 미만 SNS 금지법, 청소년들도 찬성
이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불가역적으로 기운 여론은 정치권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 1월 27일, '15세 미만 SNS 금지법'이 하원이 130 : 21의 압도적 표차로 법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3월 말엔 상원에서도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는 세부 내용에서의 이견 조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위원회 최종 논의 단계에 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 법안에 강력한 지지를 표하며, "우리 아이들의 뇌와 감정은 판매 대상이 아니다. 미국 플랫폼이나 중국의 알고리즘에 조종되게 놔둘 수 없다"라는 말로, 사안의 심각성과 알리며 의회의 빠른 진행을 촉구했다. 마크롱은 청소년들의 뇌를 무차별로 장악해 온 외국계 빅테크들을 향해 '그들이 프랑스 법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다각도의 강력한 제제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법안에 대한 국민 여론은 압도적 찬성이다. 놀랍게도 규제 대상인 청소년들 또한 상당한 수준으로 이 법안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 '오독사(Odoxa)'가 11~17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7%가 15세 미만의 SNS 사용 금지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76%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SNS 계정은 삭제할 의향이 있다"라고 답했다. 부모 세대 또한 79%에 이르는 높은 찬성률을 보이고 있다.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청소년들도 SNS가 자신의 정신 건강(불안, 중독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필요하단 사실에 동의한다. 고통의 늪 속에서 어른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낸 이 조사 결과는, 법안의 실효성에 청신호를 보내주고 있다.
'나이 인증' 방식은 어떻게?
| ▲ 틱톡 로고 |
| ⓒ 로이터/연합뉴스 |
현재 설계된 법안에 따르면, '나이 인증'의 책임은 'SNS 플랫폼 기업'에 있다. 만약 제대로 인증하지 않고 15세 미만 청소년을 가입시켰다가 걸리면, 기업이 수백억 원대의 막대한 과징금을 물뿐 아니라 정부로부터 이중 삼중의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기술로 완벽하게,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사용자의 나이를 인증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21% 국민들의 의구심도 거기에 있다. 결코 완벽한 차단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원한다면 아이들은 우회 경로를 통해서라도 기어이 접속할 것이고, 실효성 없는 정책을 계기로 온 국민이 빅 브라더의 감시망에 놓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인증 방식에 대해서는 ▲ 유럽연합(EU)이 준비하는 디지털 신원 지갑(Digital Identity Wallet) - EU는 올해 말까지 모든 회원국에 'EU 디지털 신원 지갑'을 도입할 예정 - 과 연동해 나이를 증명하는 방식 ▲ 제3의 공인 인증 기관을 거쳐, 15세 이상이 맞다는 암호키만 발급받아 제출하게 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시민들은 기술적 정교함에 대한 확신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 딱히 없다. 하지만 이대로 아이들을 방치한다면, 미래 세대의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디지털 플랫폼에 종속될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전례 없는 '디지털 브레이크'에 위험을 무릅쓰고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달라지나
이 법이 최종 확정되면 ▲ 계정이 유지되더라도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SNS 접속이 자동으로 차단되는 '디지털 통금'이 적용되고 ▲ 알고리즘 추천 기능이 제한되며 ▲ 15세 미만은 새로 가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에 가입한 경우라도 유예기간 중 탈퇴해야 한다.
SNS뿐 아니라, 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역시 향후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유럽 의회에서는 부모 동의 없이 SNS와 AI 챗봇에 접속할 수 있는 나이를 16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상황이다. AI가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거나, 아이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할 가능성이 이미 충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번 SNS 금지 법안과 함께 '고등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 정책도 함께 추진중이다. 지난해부터 초/중학교에서 휴대폰을 등교 즉시 사물함에 따로 보관케 하고 하교 시 내주는 이른바 디지털 쉼표 정책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업 시간에 몰래 핸드폰을 보는 행동이 원천 차단되니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와 학업 성취도가 눈에 띄게 올랐고, 뛰어놀고 서로 대화하는 쉬는 시간의 모습이 되살아난 것이다. 중학교에서의 긍정적 결과를 발판으로 이 같은 방침을 고교까지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주변국들의 반응
| ▲ 다른 유럽 국가들도 청소년들의 SNS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
| ⓒ 챗GPT |
프랑스가 쏘아 올린 강력한 디지털 규제 드라이브에 주변국들은 앞다투어 동참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던 유럽 국가들은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민감한 프랑스가 먼저 총대를 메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소년 대상 디지털 규제에 시동을 걸고 있다.
특히 EU는 프랑스 모델을 유럽 표준으로 삼겠다면서 프랑스 정부의 시도를 적극 지원 중이다. EU는 프랑스가 맞닥뜨린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모든 회원국이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익명 나이 인증 기술(미니 지갑 익명 인증 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현재 덴마크(15세 미만), 그리스(15세 미만), 포르투갈(16세 미만) 등도 이미 청소년 SNS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올해 중 시행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도 14~15세를 기준으로 법안을 내놓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빅테크 기업에 아이들을 방치했던 지난 10년을 반성하며, 그들이 아이들의 뇌를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을 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뇌가 완전히 성장하기 전인 아이들이 온전히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사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확보해 주는 것이 어른 세대가 해야 할 도리라고 믿는 것이다.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 하에 온 나라가 AI 기술 발전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한국 사회, 학교 논술시험 채점까지 효율성과 공정성을 위해 AI에 맡기려는 선택은 이들과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 하겠다. 우리 아이들의 뇌는, 그들의 감정은 괜찮은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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