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천회 유방암 수술한 의사…수술대 환자 손 잡고 "최선" [건강한겨레]
2026.05.30 05:05
최명숙 광주현대병원 외과 원장은 국내 최고 유방암 명의다. 그의 진료를 받으려면 1년씩 기다려야 한다. 물론 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예외다.
1989년 외과 전문의가 된 뒤 최 원장이 집도한 유방암 수술만 1만6천 회가 넘는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20~30차례 메스를 들었다. 지금도 매주 10여 건의 수술을 한다.
수술이 끝이 아니다. 최 원장은 수술, 항암, 방사선 등 현대의학적 치료의 후유증을 줄여주고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통합의학적 치료법도 다양하게 사용한다.
유방암은 재발 우려가 큰 질환으로 꼽힌다. 환자 대부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안고 그의 진료실을 찾는다. 최 원장은 “죽을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유방암은 대부분 더 이상 죽고 사는 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재발이나 전이를 막고 완치되려면 삶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특히 마음을 다르게 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최 원장은 매주 하루 수술 환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한다. ‘암 걸리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젊었을 때”는 거의 매일 밤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상담했다.
그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선물받은 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에게 최 원장은 암을 도려낸 것을 넘어 마음의 고통을 덜어준 의사로 기억된다.
최 원장에게는 의사로서 평생 놓지 않은 ‘화두’가 있다. ‘아픈 사람을 어떻게 도울까’다. ‘수술실 원칙’도 거기서 나왔다. 외과의사 초년병 때였다.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환자는 이미 마취 상태였다. 그는 크게 화를 냈다.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지도 않고 수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 원장은 수술에 앞서 수술대에서 마취를 기다리는 환자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말한다. 많은 환자가 그 순간 눈물을 흘린다. 이어 메스를 들기 전 반드시 성호를 긋는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술을 찾기 위한 노력도 그 ‘화두’에서 비롯됐다. 1994년 일본 도쿄 고마고메병원에서 유방 성형 분야를, 일본 쓰쿠바대학에서는 유방 초음파와 방사선 분야를 공부했다. 2002년에는 싱가포르 국립암센터에서 맘모톰 시술을 배워 광주·전남 최초로 맘모톰을 도입했다. 유방에 작은 구멍만 내 흉터를 최소화하는 수술 장비다.
유방암 전문의 길에 들어선 것도 그렇다. 그는 호남 최초 여성 외과의사다. 하루하루 밤낮없이 온갖 환자를 수술했다. 그러다 남자 의사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고 여성 외과의사로서 역할이 있다고 여겨 그 길을 선택했다.
유방암 치료를 하면서 최 원장은 현대의학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선배 여의사가 암 재발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였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암이 왜 재발하는지에 관심을 두게 됐다.
현대의학 바깥쪽까지 눈을 돌린 것도 그때였다. 2003년 독일 하벨회에 병원, 멕시코 오아시스 병원 등에서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익혔다. 국내에서는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을 졸업했고, 상담심리학 대학원까지 다녔다. 2005년 광주현대병원 안에 자연치유연구소를 열었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상담심리학 대학원도 다녔다 . 국내외 각지를 다니면서 가톨릭 영성 수련 , 국선도 , 티베트 명상 , 오쇼 명상 ,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등 마음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도 체험했다 . 그 경험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얼어붙은 환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
사람은 자신이 그린 무늬대로 산다고 최 원장은 믿는다. 암으로 죽는다는 상상을 떨쳐내지 못하면 그런 불행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당연히 의사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는 키르케고르의 말도 자주 인용한다. 해마다 환자들에게 보내는 연하장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외과 과장을 맡은 첫해 125명으로 시작한 ‘희망편지’는 한때 1만2천여 명에게 보낼 정도로 늘었다.
암 환자의 전인치유를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 2007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암 전문 요양병원 ‘라이프클리닉’. 독일과 멕시코, 일본 등에서 배운 통합의학 개념을 집약한 병원이었다. 음식과 수면, 운동, 인간관계, 마음 상태까지 다뤘다. 명상과 호흡 수련, 집단 상담이 일상처럼 이뤄졌다. 하지만 2014년 의료법 개정으로 라이프클리닉을 계속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의사가 이렇게 환자를 돌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라이프클리닉에서 손을 뗀 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의문이 들었다. “하느님께서 왜 그 병원을 접게 하셨을까.” 이후 전국 곳곳에 생겨난 암 요양병원과 그중 상당수가 돈벌이 중심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험지’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올해 3월 최 원장은 공익재단 ‘최명숙 생명숲 재단’을 만들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내놓기 위해서다. 의대 동기와 후배 6명이 함께 만든 광주현대병원의 지분도 정리했다. 그와 다른 ‘오너 의사’들 모두 후배들에게 병원을 넘기기로 뜻을 모았다.
그럼에도 재단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을 오래 망설였다. 자칫 자신을 드러내는 일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제 이름을 보고 믿음이 생겨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 일은 제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었습니다.”
최 원장은 그동안에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나 이웃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해마다 억대 규모의 돈을 나눔에 썼다. 형편이 어려운 의대생의 생활비로 해마다 6천만원을 지원한다.
그는 요즘 자신을 “만원 거지”라고 부른다. 한 달에 1만원씩 내는 후원자를 직접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아쉬운 소리’라 얼굴은 물론 손끝까지 빨개진다고 했다.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권복기 건강한겨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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