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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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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출간되었으나 지금 더 위대한 작품

2026.05.30 12:21

[김성호의 독서만세 316]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위대한 문학의 목록에 든 적은 없지만 특이한 소재로 출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계속적인 인기를 유지해 왔다. -319p, 송무, 작품 해설 '예술에 사로잡힌 영혼' 중에서

유명한 소설이다. 고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이냐 물으면 대개는 고개를 젓는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얘기다. 같은 해, 그러니까 1차대전 직후인 1919년 출간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위대한 문학의 반열에 오른 것과 대비해, <달과 6펜스>는 통속적인, 재미만 좇는, 설정이 다 한 소설쯤으로 취급돼 왔다.

세계문학전집 38번 째 권으로 이 작품을 들인 민음사 판본에서조차 영문학 교수인 역자의 해설 가운데 이 같은 언급을 박아두었을 정도다. 요컨대 '성공한 소설일 뿐 위대한 문학은 아니'란 100년 전 평자들의 평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나는 여기서 새로 이야기를 더하려 한다. <달과 6펜스>가 받아온 지난한 편견, 위대함에 이르지 못한 작품이란 한계를 반박해두고자 한다. 낫다 여겨진 것이 못함을 밝히는 건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지만, 못하다 해온 것이 나음을 확인하는 건 진실에 다가서도록 이끄는 것이다. 둘 모두가 의미 있다 하여도 뒤의 것의 효용이 더욱 크겠다.

<달과 6펜스>는 위대한 문학의 목록에 들어야 마땅하다. 문학의 위대한 성전이 고작 열 권, 아니면 백 권쯤의 작품만 들일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일 리 만무한 때문이다. 이 소설이 한 세기 넘어 오늘에 이르러서까지, 아니 오늘에 이르러 더욱 유효함을 전하는 까닭이다.

불타는 예술혼에 삶을 던진 화가의 생을 다룬 소설이란 건 너무나 잘 알려져 설명을 더할 필요가 없겠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바로 그 화가로, 그보다 열댓 살쯤은 어린 작중 화자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적는 글이 곧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스트릭랜드는 화가로 가난하게 살다 저를 아는 이 없는 타히티 섬으로 가 죽었다. 끔찍한 병을 얻어 맞이한 비참한 최후는 또 어떤가.

그러나 파리에서, 마르세유에서, 다시 타히티로 가서 스트릭랜드를 아는 이들을 만나고 그 삶의 자락을 더듬어 가며 드는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는 저를 찾았다. 적어도 그 어느 때보다 진실했고 행복했다. 비극과 비극 아닌 것의 조우를 이 소설이 품고 있다.

▲ 달과 6펜스 책 표지
ⓒ 민음사

가정을 팽개치고 화가로 살길 택한 남자

스트릭랜드는 마흔 안팎의 나이에 가정을 떠나 파리로 간다. 17년의 결혼생활,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던져버린다. 그 아내와 알고 지내며 한 차례 인사도 했던 화자는 스트릭랜드가 증권중개인으로 별 특징 없던 사내였다고만 기억하던 터다. 한순간에 가정을 등진 중년의 사내에게 무슨 연유가 있었던 걸까. 바람이 났다고 의심하는 그 처의 부탁을 받고 화자는 스트릭랜드가 산다는 파리로 떠난다.

그로부터 마주하는 광경은 이렇다. 스트릭랜드는 비좁은 여관방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며 오로지 그림을 그린다. 제대로 배운 적 없어 기술적으론 턱없이 모자란 구석이 역력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열망으로 캔버스를 메워간다. 당대 화가며 화랑 주인들은 스트릭랜드의 모자람을 먼저 보는 듯한 모양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스스로는 삼류 화가지만 눈 밝은 더크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를 알아본다.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를 알고 지낸 덕분일걸세. -100, 101p

<달과 6펜스>가 재미진 이유가 극단으로 치닫는 관계며 그를 예비한 설정 때문이라 말하는 이가 많다. 사실이다. 건실해보였던 중년 사내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다. 아내는 그가 바람이 났다고 의심한다. 만나보니 그는 예술에 미쳐 있다. 그는 사력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삶 전체를 예술에 갈아 넣은 스트릭랜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인간처럼 보인다.

아내와 자식들을 버렸을 뿐 아니라, 저를 알아준 친구의 아내조차 빼앗고 마침내 죽도록 한다.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주변인들을 칼로 찌르듯이 괴롭히며 쾌락을 얻는 듯한 태도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인륜, 도덕이며 윤리라 불리는 것들이 그에겐 반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그림, 그리고 예술뿐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69p

누구도 걸작의 반열에 이 작품을 올리지 않는다지만

이름난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이 무척 재밌지만 대단치는 않다고 평했단 걸 안다. 이름난 비평가들은 소설의 제목이 곧 주제와 통한다고 하였다. '달'은 예술가가 좇는 이상적 아름다움이며 '6펜스'는 세속적이고 천박한 가치를 상징한다고. 6펜스의 세계에 속한 이가 어찌 달을 좇는 이를 이해하리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해석들...

마침내 걸작에 이르는 스트릭랜드와 그를 추적해 얼마쯤 이해에 닿는 화자로부터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겠다. 끝내 붙들 수 없는 달을 따르는 이들이 호주머니 안에 6펜스 동전을 가득 쥔 이보다 낫다고. 두 세계가 엄연히 공존한다 믿으면서도 앞의 것은 귀하고 뒤의 것을 천하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일어날 테다.

소설 가운데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한 이의 인격마저 짓밟던 어느 성공한 이가 그랬듯이, 어느 독자는 그 반대편에 서서 인류며 문명적 관점에서 나고 죽는 게 하등의 의미가 없을 하찮은 이들의 고투를 무시할 수 있으리라. 돈을 벌고, 가족을 꾸리고, 명예와 권력을 얻는 일이 어찌 하찮기만 할까. 그러나 자꾸만 달을 바라보는 망원경으로 옆 사람을 비추는 고약한 태도를 드러내게 되는 건 스트릭랜드처럼 꿈을 가진 이들의 마음이겠다.

또 다른 이는 반대편에 있을 테다. 6펜스의 세계, 그러니까 당대 최대 도시 런던에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리하여 오늘의 세상 또한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선하고 소박하며 착실하고 순응하는 이들의 시각이다. 그깟 예술을 위해 소중한 모든 것을 짓밟는 스트릭랜드는 폭력적이며 무책임한 인간이 아닌가. 세상 어떤 예술이 제 곁의 아내며 자식보다 소중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그 자신보다도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위대함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단 점에 있다. 많은 이들의 독해가 오로지 이분법적 구도에 갇히고 마는 건 소설의 달과 6펜스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대비시킨 결과이지만, 정작 이는 그 너머를 지향하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6펜스의 세계에선 달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6펜스의 세계는 곧 유일하게 진실한 세상이라는 믿음을 아무렇지 않게 확산하고 전파한다.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충실하게 가족과 이웃과 국가와 인류의 가치에 투신하는 것을 잘 된 삶이라고 여기도록 한다.

그런데 서머싯 몸이 6펜스의 세계에서 가장 부도덕한 이의 삶을 통해 고개를 들게끔 한다. 저기 저 위에는 달의 세계가 있다고. 아름다움을 좇는 달의 세계가 결코 6펜스의 세계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는 그저 바깥의 달,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상만을 좇는 일이 아니다.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본원적 추동에 다가서는 일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도록 한다... 그러면

이쯤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두운 이들은 이 소설이 오로지 달과 6펜스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대비시킨 단순한 구도로 쓰였다고 말한다. 하늘의 달을 좇는 고결한 이와 엎드려 6펜스를 줍는 천박한 이의 대비라고까지 이야기하는 평자들도 적잖다. 그러나 두 세계가 극명히 대조될수록 드러나는 건 저 하늘, 달 곁에 뜬 수많은 별들, 곧 우주의 천체들이다. 서머싯 몸의 시대에도 존재했던 다른 세계들이 그로써 제 빛을 발한다.

저기 신부와 스님, 온갖 구도자들과 과학자, 철학자들, 또 군인과 장인의 세계가 예술가인 스트릭랜드며 증권중개인과 정관계 인사들의 세계 곁에 펼쳐져 빛을 발한다. 존재하고 있음을 알린다. 서머싯 몸은 저 하늘의 달을 가리켜 고개를 들도록 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인식토록 한다. 1개가 아니라 2개, 그로부터 99개, 999개, 9999개, 그 너머의 세상이 열린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나도 나름대로는 예술가였다고. 내게도 그 친구를 움직인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친구가 그걸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나는 인생으로 표현했을 뿐이지요. -277p

달과 6펜스를 예술과 세속에의 대립으로 읽는다면 소설은 그저 철 지나고 단순한, 그러나 그대로도 꽤 재미있는 작품일 테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 너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진실로 이해하는 순간, 그야말로 별천지가 쏟아지는 아름다움이 안겨든다. 브뤼노 선장이 화자에게 제 삶으로써 이룩했다 말하는 아름다움은 6펜스와 달의 세계 사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이룬다. 어느 한 세계에 발 딛고 서서 다른 세계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은 태양계의 중심에서 지구를 치움으로써 드넓은 우주를 얻은 16세기 초의 발견만큼 기적적이다. 저기 저 곳에 스트릭랜드의 세계가 있다. 그 곁에 브뤼노 선장의 세계와 로즈 워터퍼드의 세계가, 또 그를 조금씩 더 잘 이해해가는 나의 세계 또한 존재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아가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아주 희미하기만 한, 그런 세계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맞이하는 작업이다. <달과 6펜스>가 쓴 것이 바로 그것, 달과 6펜스 너머의 존재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 위대하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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