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살해 10주기, 성교육은 얼마나 달라졌나 [.txt]
2026.05.30 10:02
성교육 강사 향한 남학생들 반감 급증
선거에서 사라진 ‘성평등 교육 확대’ 공약
여성혐오 범죄 여전…교육이 달라져야
지난 17일은 강남역 여성 살해 10주기였다. 직전에 광주에서 발생한 참혹한 10대 여성 살해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10주기 추모 행사의 구호다. 초여름의 뙤약볕이 쏟아지는 아스팔트 위에 앉아 강남역 여성 살해는 ‘묻지 마 범죄’가 아니라 ‘여성 살해’고, ‘성폭력’이고, ‘성차별’이라고 목 놓아 외치는 발언을 들으며 우리는 왜 십년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지 새삼 화가 치밀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결코 적지 않은 제도적·문화적 변화를 일구어냈다. 그러나 왜 이토록 사회적 학습은 더딘가. 성폭력과 성차별을 예방해야 할 우리의 성교육은 지난 십년간 얼마나 달라졌나. 성교육이라는 공통 주제를 다루면서도 쓰인 시점과 방점이 조금씩 다른 세권의 책을 찾아 읽은 이유다.
첫번째 책은 2020년 4월에 출간된 조아라 공감엔(N)소통 성교육연구소 소장의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 집, 학교, 교도소, 상담실에서 해온 성교육 수업’이다. 2009년부터 활동해온 전문 성교육 강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법정 성폭력예방교육에 아무 관심이 없는 청소년들과 소위 ‘성교육 과외’를 통해 정답 찾기에 골몰하는 학부모들 사이의 괴리를 주목한다. 성교육은 오로지 ‘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할 객관식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고민하며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한 섹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런 관점 아래 저자는 집, 학교, 교도소, 상담실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고민, 지식과 통찰을 사려 깊게 풀어놓는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최근 1~2년 새 성폭력예방교육 시간에 감지되는 뚜렷한 변화’에 관한 묘사다. 성교육 강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노골적 반감에 관한 지적이다. “마치 내가 ‘꼴페미’인지 아닌지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듯 말투엔 이미 공격과 조롱이 묻어 있다.” “불과 몇년 전엔 성희롱이 ‘유행’이었다. “쌤, 몇살이에요?” “그거 해봤어요?” ‘성’을 말하러 온 여성 강사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 ‘뚜렷한 변화’에 대한 적나라한 르포가 두번째 책 ‘젠더 수업 리포트’다. 이 책은 전북 남원의 책방 ‘살롱드마고’의 공동 운영자이자 페미니스트 젠더 교육 강사인 이유진 작가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젠더 교육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전국적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젠더 교육 현장에서는 미투에 공감하기보다 백래시가 거세지는 분위기였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의무교육 현장은 강사가 맨몸으로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쿵쾅쿵쾅’이 왜 성차별적 언어인지 설명하면 강의를 의뢰한 교사가 자신들이 요청한 것은 성폭력예방교육이지 성인지교육이 아니라며 나머지 수업을 취소해버린다. 교사 대상 성희롱 예방 교육에서는 교장이 나서서 “이렇게 교육을 한다고 사람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나가버린다. 강의 현장에서 10대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실시간 백래시에 강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여가부랑 메갈이 문제라고요!” “샘은 왜 여자 편만 들어요?” “남자도 성폭력 피해 당하는데요?” “샘 페미니스트예요?” “그럼 메갈은요?” 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도한 문제 행동을 학교에 항의하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 것이다. “외부 강사에게 주어진 성교육 시간은 1년에 45~50분이고, 많게는 수백명을 대상으로 한차례 강의를 하는데, 이런 자리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결국 우리 일상을 바꿔내지 않으면 10대 남성들의 ‘다른’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 작가는 페미니즘을 안은 대화의 교육이 지금 당장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책이 이임주 동백작은학교 교장의 ‘국어, 수학, 페미니즘!: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필수 교과로 가르쳐보았다’다. 2002년부터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며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을 기점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시수를 채우는 간헐적 성교육이 아닌 필수 교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21년 제주에 페미니즘 필수교육을 전면에 내건 동백작은학교를 열었다. “모두가 작은 촛불 하나라도 들어야 했던 그때 내가 밝힌 불씨는 페미니즘 교육운동이었다.” 이 책은 동백작은학교를 함께 만들어온 학생, 교사, 양육자가 겪은 변화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제가 입학했을 때 페미니즘을 되게 싫어했잖아요. 뭔가 밖에서는 좀 남자다워야 하는데 여자애들이랑 말하거나 친해지면 뭔가 여성스러운 것같이 무시하듯 보는 시선들이 싫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냥 여자 사람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18살 남학생 하준이의 말이다. “친구들도 페미니즘에 거부감 없고 배우고 싶어 하거든요. 근데 이야기 나누는 주제부터가 다르더라고요. 얼평, 몸평은 기본이고 누가 사귀면 쟤네 어디까지 갔나, 섹스는 했나, 이런 걸 뒤에서 거리낌없이 말해요. 우리 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 샘. 진짜 모든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해야 해요. 제 친구들 만나면 정말 장난 아니에요.” 제도권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17살 여학생 우주의 탄식이다. 그러나 ‘2022 개정 교육과정’(2024년부터 적용)에는 ‘성평등’과 ‘성소수자’가 삭제되어 있다.
책을 덮고 이번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교육감 후보들의 정책 공약을 찾아보았다. 전국의 교육감 후보 58명 전원의 공약에 ‘인성교육’ ‘감성교육’ ‘인재양성교육’은 있는데 ‘성교육’은 없다. ‘성평등’이 포함된 것은 두 사람이다.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성평등 교육환경조성 기본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며 ‘퀴어 동성애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송영기 경남교육감 후보만이 ‘성평등·노동·인권·평화·차별금지’ 등 현대 시민역량 교육을 체계화하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22대 총선에서 현재의 원내 정당 어느 곳도 ‘성평등 교육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
광주 10대 여성 살해범인 2002년생 장윤기는 10년 전엔 만 13살의 중학생이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성교육이 달랐다면, 그의 현재는 어떻게 달랐을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는가. 대한민국 성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장혜영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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