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에서 시작된 이야기…한·일 군사협력 가능성 따져보니
2026.05.30 07:00
지난 5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흐름은 지난 4월 21일 일본 정부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을 개정해 살상무기 수출 제한을 사실상 해제한 것과 맞물리며, 그간 금기로 여겨졌던 한·일 군사협력 논의로까지 이어질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8일 연합뉴스에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산업적·지정학적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에너지협력이 결국 군수·보급망 협력의 전 단계라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이른바 '한·일 에너지 스와프'는 중동 정세 불안 등에 대응해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 등의 상호공급 및 수급 협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모두 에너지를 중동과 해상교통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주요국 원유 수입 중 호르무즈해협 의존도가 한국은 약 62%, 일본은 약 69% 수준이다. 양국 간 에너지 협력은 한 국가에서 수급 불안이 발생하면 상대국이 비축 물량이나 조달망을 활용해 보완해주는 방식이 거론된다. 국방부가 언급한 ACSA는 유사시 양국 군이 식량·연료·탄약·수송·정비 등 군수 물자와 서비스를 상호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이번 에너지 스와프와 ACSA는 위기 시 상호지원 체계를 갖춰 서로 돕는다는 점에서 기본 발상은 일부 유사하다"면서도 "두 논의가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분야도 아예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자협력, 군수지원 논의로 이어지나
그럼에도 ACSA가 거론되는 것은 일본의 방산 개방과 맞물려 다자 체계 속 한·일 간 군수·정비·보급 협력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중·러 연대 심화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3자 협력 체계가 장기적으로 ACSA와 같은 군사협정 논의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국 정상은 2023년 8월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후 3국은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하고, 향후 다년간의 3자 훈련계획을 수립하는 등 실무 협력을 제도화한 상태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4월 29일 일본 '재팬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일본·필리핀의 군사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킬웹' 구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원곤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은 "킬웹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가동한 통합공중미사일방어체계(IAMD)보다도 넓은 개념"이라며 "이는 과거보다 더 넓은 동맹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에너지 협력 역시 다자 협력으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일본은 지난 4월 15일 '에너지 회복력에 관한 아시아 제로에미션(탄소중립) 공동체(AZEC) 플러스 정상회의'에서 '아시아 에너지·자원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POWERR Asia)' 출범을 발표했다. 이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동남아 국가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자원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 양국이 공급망 위기를 겪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자원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고, 이 대통령도 이에 동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 에너지 수입국이고, 중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 양국 간 협력만으로는 위기 시 실효성이 발휘되기 어렵다"며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한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산유국이나 동남아 국가들과의 추가 협력을 통해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안보와 에너지 협력이 모두 다자 체계로 확장되는 흐름은 한·일 군사협력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다자협력 체계로 갈수록 ACSA와 같은 군사협정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사일 정보 교환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는 서로 지원을 주고받을 영역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방산 수준에서 군사협정이 논의된다면 무기 완제품 거래보다는 부품·정비·탄약·소재 등 후방지원 영역에서 협력이 먼저 이뤄질 전망이다. 양찬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책임연구원은 "전반적인 무기체계나 조선업에서는 아직 한국이 우위에 있다"면서도 "일본은 순수기술과 소재 분야에 강점이 있어 한국도 후방에서는 얻어갈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자 협정은 난항, 장기적 여지는 남아
다만 한·일 양자 차원의 군사협정은 현재로서는 추진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함께 ACSA 체결도 검토됐지만, GSOMIA가 반대 여론 속에 무산되면서 ACSA 논의도 보류된 바 있다. 이기태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은 "한·일 간 군사협정을 추진할 논리는 충분하지만, 북한·중국 리스크와 국민 여론으로 인해 아직은 걸림돌이 크다"며 "현 정부도 최대한 움직이고 있지만, 현재 논의 중인 '2+2' 이상으로 양자 협의가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7일 차관급으로 격상된 한·일 간 2+2는 양국 외교·국방 당국이 참여하는 안보정책협의회로, 군사적 실행 체계보다는 외교·안보 현안을 조율하는 협의체에 가깝다. 국방부 관계자 또한 주간조선에 "ACSA 등 한·일 간 군사협정은 검토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산업통상부 관계자 역시 주간조선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온 에너지 협력은 방향성 차원의 논의"라며 "협력 범위 확대 등 구체적인 실무 협업 제안이 들어온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한·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과의 군사협정 체결이 지금 당장 국방정책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이제는 한반도 안보만 놓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다양한 군사협력 상대를 확보하고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은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일 국방당국은 지난
1월 30일 장관급 회담에서 해군 수색·구조 훈련(SAREX)을 2017년 이후 9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한·미·일 연합훈련도 2024년부터 해상·공중·사이버 등 다영역에서 진행되는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를 실시하고 있다. 조은일 선임연구원은 "SAREX와 한·미·일 연합훈련 등은 장기적으로 한·일 군사협정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실제 협력으로 이어지려면 국민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과 명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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