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래커칠 150만원” “댓글 30만원” 메뉴판까지 만들어 보복 대행
2026.05.30 00:48
지난 2월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20대 남성 두 명이 집 현관문 도어락에 공업용 접착제를 발라 고장냈다. 벽에는 빨간색 래커로 대변 모양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들은 그러고선 “이 집에 사는 사람은 강간범이다”는 허위 사실을 적은 A4 용지를 현관문에 붙이고 복도 바닥에도 뿌려놨다.
이들은 보복 대행 업체에서 “1주일간 보복 대행 4건을 해주면 4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두 사람은 ‘특공대’라 불리며 충남 아산, 경기 부천, 인천 부평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인천지법 형사10단독 황윤철 판사는 지난 22일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최근 전국에서 보복 대행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텔레그램 등을 통해 ‘보복 의뢰’를 받고, 행동대원들을 모집해 피해자 집 인근에 래커칠을 하거나 허위 사실을 담은 문건을 유포하는 식이다. 최근 서울 양천구, 구로구, 강북구 등에서 이런 범행이 잇따라 일어났다. 전국적으로도 인천·대전·부산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보복 대행 범죄는 지난해 8월 대구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지난 14일까지 전국에서 보복 대행 범죄는 69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중 60건과 관련해 보복 대행 조직 운영자, 행동대원 등 50명을 검거하고 이 중 14명을 구속했다.
보복 대행 조직은 텔레그램 등에서 “층간 소음, 불륜, 사기꾼, 계좌 팔이, 협박범, 빚쟁이 등에 대한 원한을 대신 해결해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원한을 사적 제재로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한 보복 대행 조직은 ‘보복 대행 메뉴판’도 홍보한다. 상대방 신상 조회는 100만원 이하, 래커칠과 오물 투척 등 주거지 테러는 150만원 이상, 소셜미디어 댓글 도배는 20만원 이상, 문자 발송은 건당 3000원, 장난 전화는 건당 5만원 등이다.
경찰은 보복 대행 업체가 보이스피싱이나 사설 도박장 조직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복 대행 범죄는 보이스피싱이나 도박과 연관된 범죄 조직이 서로를 공격하는 테러 행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인을 겨냥한 보복 대행 범죄도 늘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29)씨는 지난달 30일 간장·래커 테러를 당했다. 누군가 집 현관 주변에 간장을 뿌려 놓고 붉은색 래커로 욕설을 칠해 놓았다. 이씨는 “전 여자친구가 성폭력을 일삼은 직장 대표를 고소한 일을 도운 적이 있는데 그와 관련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지난 2월 서울 금천구의 한 빌라에는 누군가 현관문 주변에 인분과 함께 고양이 사체를 놓아둔 일도 있었다. 같은 달 전남 화순의 한 아파트에서도 보복 테러 대행 조직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래커칠·오물 테러가 있었다.
보복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소된 한 보복 대행 조직원들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보복 테러 25건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 중 11건은 보복 테러를 의뢰한 사람이 지목한 보복 대상자가 아닌 다른 사람 집에서 이뤄졌다. 최근엔 사적 보복 외에 대부업체의 불법 추심, 보이스피싱 조직의 피해자 협박 등에도 보복 대행 조직이 동원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적 보복 대행은 부탁받는 사람도, 부탁하는 사람도 모두 중대 범죄”라며 “사소하다 생각되는 일로 인생을 그르쳐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경고에도 보복 대행 업체들은 텔레그램 등에서 “새로운 처리반(행동대원)이 입사했다”며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보복 대행 업체를 운영하는 윗선과 의뢰인 등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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