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회칙, 파트와, 신자 누구나
2026.05.30 00:38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즉위 후 처음으로 인공지능(AI)과 관련된 회칙을 발표했다. 회칙은 가톨릭 최고 권위의 사목 교서라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신자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기준을 제공한다. 교황은 회칙에서 “AI가 인간을 지배할 수 없도록 무장해제가 필요하다”며 “AI는 이미 우리가 몰입해 있는 환경인 동시에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힘”이라고 밝혔다.
회칙에는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고민과 대응이 담겼다. AI가 바꿀 세계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교회와 신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셈이다. 이 문헌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같은 고민을 가진 인류를 향해 화두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 회칙은 교서나 권고, 담화, 연설, 강론 등 교황 문헌 가운데 가장 구속력이 크다. 추기경이나 신학자들만 참여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발표엔 크리스토퍼 올라 앤트로픽 공동 창업자도 참석했다.
총 82페이지 4만자 분량의 회칙에는 세부적인 지침도 담겼다. 살상무기 사용 결정을 불투명하거나 자동화된 절차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로봇과 AI가 사람을 대신하게 됨에 따라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도 경계했다. 디지털 경제가 보이지 않는 노동 착취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현대판 노예제라고도 비판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에 비유했다.
가톨릭의 회칙과 유사한 제도는 이슬람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파트와(Fatwa)’로 불리는 답변 또는 해석이다. 파트와는 무슬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다양한 의문에 대해 자격을 갖춘 이슬람 법학자(무프티)가 내리는 공식적 판정을 뜻한다. 강제력이나 구속력은 없으며 같은 사안에도 학자나 학파마다 답변이 다를 수 있다. 해당 판정 수용은 개인이 결정한다. 이슬람 국가는 공인된 파트와 기관을 운영한다. ‘다르 알 이프타(Dar al-ifta)’로 불리는 이 기관은 정교하고 권위 있는 입장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르 알 이프타 소속 무프티들은 코란과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 샤리아법을 근거로 파트와를 발표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파트와는 이렇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1년 포켓몬스터 게임 열풍이 불자 포켓몬 진화 개념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고, 카드 게임이 도박과 유사하며, 캐릭터 문양 중엔 타 종교의 상징물과 비슷한 게 있어 금지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2007년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슬림 우주비행사가 우주여행을 할 동안 메카를 향한 기도는 방향과 상관없이 기도할 수 있다는 파트와를 내놨다. 우주에서는 방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6일 ‘아랍 위클리’는 이집트 다르 알 이프타가 이슬람 성직자보다 AI를 통해 종교 상담이나 안내를 받는 무슬림이 많아지는 현상에 대해 AI를 금지해야 한다는 파트와를 천명했다고 보도했다. 학자들은 “그러한 결정을 기계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회칙이나 이슬람의 파트와 같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신교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이를 생활에 적용한다. ‘오직 성경’과 ‘만인 제사장설’이라는 개신교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에 공동체 전체가 참여할 수 있으며 토론의 장도 다양하다. 하나의 절대 문헌보다 교단이나 신학교, 목회 현장과 신자들의 담론이 상호작용하며 지향점을 만들어 간다. 개신교 역사 속에서는 시대마다 뛰어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출현했고 이들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주석과 설교, 저작물을 내놓았다.
한국교회가 AI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것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보면서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디지털 활용에 눈을 떴고 챗GPT 문화충격 이후엔 AI의 실용적 활용과 신학적 성찰이라는 두 축 위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교단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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