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호르무즈 개방되면 유가 안정"…전문가들이 부정적인 이유
2026.05.29 13:0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면 국제 유가가 돌덩이처럼 추락해 안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백악관 회의에서 발언하는 트럼프 대통령./AP 연합뉴스
WTI(서부텍사스유) 가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날인 지난 2월 27일 배럴당 67달러였다. 전쟁 발발 후 110달러대로 치솟은 뒤 현재 88달러 선으로 내려온 상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쟁 이전 상태로 복귀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왜 그럴까?
다섯 가지 난제
미국과 이란이 60일간 휴전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면 일단 해결의 실마리는 풀린다. 하지만 개방이 곧바로 원활한 석유 공급과 원유 가격의 예전 수준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꼽는 정상화를 가로막는 난제는 대략 5가지이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안에 갇혀 있는 유조선 1500여 척을 움직이는 작업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쉽지 않다. 해협의 항로가 열리더라도 이란 혁명수비대가 여러 가지 절차를 요구하면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세계 각국이 원유를 공급받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다.
둘째, 이번 전쟁으로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 시설의 피해 규모를 집계한 뒤 보수 계획을 세우고 재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산업연구기관인 울프연구소는 중동 지역의 석유 시설과 재고 물량을 예전 수준으로 재건하는 작업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완전 복구에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넷째, 국제 유가에 이란의 변심 리스크(불확실성)가 반영되어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석유 투자자들은 이란이 변심해 언제든지 다시 해협을 봉쇄하고 해협 통과를 위한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위험 요소를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예전보다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다섯째,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자체가 아직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으나 곧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미국과 이란이 향후 60일간 휴전한다고 해도 그 기간이 끝나면 해협이 다시 봉쇄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대로 유가가 곧 급락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유가 전망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올해 여름에 1갤런(3.8L)당 4.8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 전보다 50%나 오른 가격이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이 즉각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지난 5월 26일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타결되면 1~2개월 사이에 전 세계 정유소에 석유가 가득 찰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은 전례 없는 속도로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도 미국과 이란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면 국제 유가가 급락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1일 백악관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EPA 연합뉴스
트럼프의 딜레마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유가 안정을 위해 많은 정책을 폈다. 전략 비축유를 방출했고, 석유 수송을 위해 외국 배들의 미국 내 운항도 허용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제재를 완화했다.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자 일부 의회 의원들은 미국 석유의 수출 물량을 줄이거나 수출을 아예 금지하는 정책을 쓰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석유 수출을 통제할 경우 미국 내 유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하겠지만 에너지 시장 전체가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 수출 물량 감소로 정유사가 가동을 줄이기 때문이다. 또 세계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르면서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고유가를 타개하려면 석유생산업자들이 생산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채산성 때문에 쉽지 않다. 사진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엑손모빌 주유소./AP 연합뉴스
그래서 예전 미국 대통령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전화해 석유 공급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다. 사우디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주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석유 생산을 빨리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사우디의 석유 수출도 상당히 막혀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이 효과가 적다고 석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국제 유가를 신속하게 예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일단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지난 5월 25일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유조선들./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새로운 전쟁은 중동 지역의 에너지 시설이 더 손상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추가 전쟁으로 이란을 압박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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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기자 k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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