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도 前총리도 떠났다 … 뉴질랜드 엑소더스
2026.05.29 17:56
일자리 부족에 인재 이탈 봇물
아던 前총리 올봄 시드니 이주
30년 부동산 불패 거품 붕괴에
수도 웰링턴 주택가격 27%↓
제조업 없는 취약한 경제 구조
코로나19·이란전쟁에 직격탄
한때 이민자들의 천국이자 안정적인 사회보장 모델로 칭송받던 뉴질랜드에서 정작 고국을 떠나는 국민이 크게 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농축산과 관광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 구조에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일자리가 고갈되고 삶의 기반이 위태로워졌다는 분석이다.
◆ 총리도 호주행…한 해 6.6만명 탈출
지난 2월 뉴질랜드 국민의 자국 이탈에 대한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뉴질랜드를 이끌었던 저신다 아던 전 총리가 호주 시드니로 이주한 것이 언론 등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뉴질랜드인의 자국 이탈 물결은 통계에서 확인된다. 29일 뉴질랜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만6000명이 넘는 뉴질랜드 시민권자가 타국으로 떠났다. 2020년(1만5334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23~2025년 연간 이주자가 6만명이 넘었는데, 뉴질랜드 인구가 약 530만명임을 감안하면 매년 1% 이상의 국민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와 내수시장이 발달한 이웃 나라 호주로 이주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앨런 갬런 호주국립대 이주연구소장은 "아던 전 총리의 이주는 뉴질랜드의 인재 유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많은 젊은 뉴질랜드인이 고국에서 더 이상 번영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영구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고 짚었다.
뉴질랜드 국민이 고국을 등지는 이유는 경제 문제로 분석된다. 최근엔 이란 전쟁의 여파가 이 나라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은 뉴질랜드는 국제 원유 가격 상승 여파가 고스란히 기업들에 생산비용과 물류비 부담으로 전가됐다.
지난 3월 기준 뉴질랜드의 실업률은 5.3%로 3년 전(3.5%) 대비 1.8%포인트 상승했다. 물가도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름세를 기록해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1%를 기록했다. 일자리는 부족한 가운데 물가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 30년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말
전문가들은 현 경제위기를 단순히 외부 충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뉴질랜드 위기의 본질은 지난 수십 년간 누적돼온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는 진단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경제의 핵심을 차지해온 부동산 시장 붕괴다.
뉴질랜드는 30여 년 동안 '부동산 불패 신화'가 지배해온 나라다. 오죽하면 '바비큐 파티에서 소시지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누군가 집값 이야기를 꺼내면 당신은 진짜 키위(뉴질랜드인) 파티에 와 있는 것'이라는 농담이 성행했을 정도다.
특히 주택 양도소득세 감면, 투자 부동산의 담보대출 이자에 대한 소득공제 등 친부동산 정책이 주택 시장 거품을 키웠다. 여기에 코로나19 시기 단행했던 초저금리 정책에 따른 막대한 유동성은 거품을 통제 불능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부동산 정보 업체 쿼터블밸류(Quotable Value)에 따르면 2022년 초 뉴질랜드 평균 집값은 106만3765뉴질랜드달러(약 9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하면서 신화는 비극으로 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수도 웰링턴 집값은 현재 고점 대비 27%나 폭락했다. 한번 꺾인 부동산 심리는 최근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클랜드의 56층 초고층 타워인 시스케이프 개발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마저 좌초되며 금융권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자산가치 상승이 소비를 부양하는 '자산 효과'를 완전히 깨뜨렸다. 가계는 지갑을 닫았고,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급기야 작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0.9%)을 기록하기도 했다.
◆ 제조업 부재 속 치솟는 국가부채
부동산 거품이 빠진 자리를 채워줄 대안 산업이 없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뉴질랜드 경제는 소고기, 양고기, 분유 등 농축산물 수출과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 등 두 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인구가 530만명 남짓에 불과해 대외 충격을 흡수할 내수시장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부각될 때 경제가 무방비로 노출되기 쉽다.
정부의 재정 여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2025년 59.4%에서 2027년 63.1%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의 연금과 복지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60년 국가부채가 GDP 대비 20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자리 고갈, 부동산 붕괴, 재정위기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오는 11월로 예정된 뉴질랜드 총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극심한 민생고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만큼, 이번 경제위기가 표심을 가를 가장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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