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발전용 LNG 가격상한제 추진
2026.05.29 19:01
이 기사는 5월 29일 오후 3시 한국경제신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 게재됐습니다.
정부가 발전용 가스 판매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란전쟁에 따른 국제 가스 가격 급등이 국내 전기 가격을 밀어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가스 가격 상한제가 위기 상황에서 가스 공급 불안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손실 보전과 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9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가스공사가 발전사에 공급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안을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와 논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가스를 들여오더라도 국내에선 상한선 이하로 판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한선은 가스를 직수입해 발전용으로 쓰는 SK이노베이션E&S, 포스코인터내셔널, GS에너지, 한화에너지 등 민간 발전사업자에도 적용된다. 한국전력이 발전 대금을 정산할 때 연료비를 상한선 수준까지만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정부가 가스 가격 상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가스 가격이 국내 전기 가격을 사실상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도매가격(SMP)은 시간대별로 가장 비싼 발전원의 연료비를 기준으로 책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료비가 비싼 가스발전소는 전기를 공급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가스 가격이 급등해 SMP가 높아지면 한국전력은 원가가 낮은 재생에너지·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도 같은 가격에 사줘야 해 전기요금 급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동북아시아 시장 근월물 기준)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전인 지난 2월 27일 100만BTU(열량 단위)당 10.73달러에서 이달 28일 18.34달러로 급등했다.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풀리더라도 가스 공급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타르의 LNG 시설 일부가 이란 공습으로 피해를 봐 한국 장기 계약 물량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름철 냉방 수요까지 급증하면 가스 공급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유럽과 한국, 중국, 일본 등 북반구 주요국이 겨울철 난방용 가스 재고 확보 경쟁에 나서는 오는 10월부터는 가격 변동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정부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도 전기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격 규제에 나섰다. 당시에는 한국가스공사의 가스 도매가격이 아니라 한국전력의 전력도매가격(SMP)에 상한선을 뒀다. 이후 손실 보전 규모와 방식을 둘러싸고 발전업계와 대규모 소송전을 벌여야 했다. 가격을 억눌러 시장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에 이번에는 전기 도매가보다 앞단에서 연료비를 안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SMP를 직접 통제하는 것보다 가스 가격 상한제가 시장에 주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다”며 “유럽에서도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스 가격 상한제로 전력 시장을 안정시킨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다만 “가스 가격 통제로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더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재정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스공사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판매 가격 차이에 따른 누적 손실 규모를 뜻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가스 가격 상한제로 발생하는 손실을 세금을 투입해 보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손실 보전 규모 및 방식과 관련한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을 놓고도 정유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가스 가격 상한제가 위기 국면에서 가스공사의 긴급 가스 조달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스공사 실무진이 상한보다 높은 가격에 현물 시장에서 LNG를 신속히 사들이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몇 시간 안에 현물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가 많다. 가스시장 전문가는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왜 이렇게 비싼 가격에 가스를 들여왔느냐’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간 직수입사가 해외에서 비싸게 사들인 현물 LNG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가격 통제가 없는 해외에서 되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가스 공급이 더 꼬일 수 있다는 뜻이다. 2022년에도 이런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가격 신호를 정상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는 “전기와 가스 가격 중 어디에 상한을 두더라도 부담의 주체만 바뀔 뿐 시장이 왜곡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공급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용량을 줄이는 것인데, 전기요금 인상 등 가격 신호가 없으면 소비를 줄일 유인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가스 가격이 전기요금을 좌우하는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추진하는 만큼 LNG 발전 중심의 현행 가격 결정 구조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영국은 이 같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지난달 가스와 전기 가격의 연동성을 낮추는 ‘디커플링’ 정책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에 장기 차액정산계약(CfD)을 확대 적용해 가스 가격 급등으로 시장가격이 치솟더라도 고정된 가격으로 정산하기로 했다. 백철우 덕성여대 교수는 “전기 가격이 연료비에 연동되는 체계에서 벗어나 발전사들이 가격 경쟁을 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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