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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생명 지키는 '몸짱 소방관'…화상환자들의 상처를 위로하다

2026.05.29 11:34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 소속 김형윤 소방교가 자신이 모델로 나온 ‘몸짱 소방관 달력’을 보여주고 있다. [손인규 기자]


엄마와 손을 잡고 집에 가던 유치원 아이는 동네에서 불이 난 광경을 봤다.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던 소방관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자라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어릴 적 봤던 소방관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 소방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 소속 김형윤(29) 소방교가 소방관이 된 사연이다. 군 제대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김 소방교는 어릴 적 기억에 이끌려 소방관의 길로 들어섰다.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에서 근무하던 김 소방교의 체력은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다. 최근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에서 만난 김 소방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해 4년 넘게 군에만 있다 보니 체력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며 “반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목표가 뚜렷했고 열심히 했기에 준비 1년 만에 소방대원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렇게 2021년 소방관이 된 김 소방교는 2024년부터는 119특수구조대에 지원해 특수구조를 담당하고 있다.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전문적인 구조 기술 등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김 소방교는 지난해 ‘몸짱 소방관 희망나눔 달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 소방교는 “운동은 더 힘들게 하면서 식단 조절까지 하는데 업무는 평상시처럼 해야 하니 24시간 통제받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6개월간 운동과 식단 조절을 한 김 소방교는 지난해 5월 ‘몸짱 소방관 선발 대회’에 출전했다. 30명이 참여한 예선에서 본선 진출자 12인에 선정돼 본상을 받았다.

웃옷을 벗고 많은 사람 앞에서 포즈를 하는 경험은 어땠을까. 김 소방교는 “사실 대회에 나갈지 말지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였다”며 “개인적인 의미만 있었다면 못 했을 거 같은데 이걸로 화상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좋은 의미가 있어 용기가 생겼던 거 같다”고 수줍게 말했다.

특히 김 소방교는 “수혜자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수익금 전달식에서 ‘얼굴도 모르는 나를 위해 애써준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됐다’ ‘마음이 많이 무너져 있었는데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등의 말씀을 해주셨다고 들어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멋진 몸으로 좋은 일에 참여한 김 소방교의 꿈은 다소 소박했다. 김 소방교는 “대단한 소방관이라기보다는 오늘을 잘 지키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며 “근무할 때에는 출동하는 모든 현장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있는 믿음직하고 강한 소방관으로, 쉴 때에는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의 일상을 지켜주는 가장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나영 씨가 직접 제작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전달한 일러스트레이션. [전나영 씨 제공]


홍익대 디자인컨버전스학부 학생인 전나영(20) 씨는 이런 몸짱 소방관들이 달력을 제작해 모은 기부금으로 혜택을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최근 전화로 만난 전씨는 10여 년 전 여덟 살 때 집에서 촛불이 옷에 옮겨붙으면서 허벅지부터 목 아래까지 3도 화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생존이 위태로울 만큼 위중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크면서 여러 번의 화상 치료를 받아 왔는데 그 치료비 중 일부가 몸짱 소방관 달력 판매 수익금에서 나왔다는 걸 올해에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상 경험자였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내성적이거나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전씨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더운 날에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혀 외출했다. 화상 상처를 감추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행동하니 주변 사람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범한 20대 여대생의 발랄함이 묻어있었다.

다만 전씨는 화상으로 신경이 손상된 오른손은 물컵조차 들기 어려워 디자인 작업은 모두 왼손으로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몸짱 소방관 달력’ 기부금 전달 행사에서 소방관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직접 제작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이하 본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전씨는 “화상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부끄럽다고 집에만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며 “지금 전공을 살려 산업디자이너가 된다면 나같이 몸이 좀 불편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본부가 2015년부터 12년째 제작 중인 몸짱 소방관 달력은 현재까지 총 12만부가 넘게 팔렸다. 이를 통해 모인 총 12억원의 기부금은 화상 환자 300여 명의 치료에 쓰였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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