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
'깜깜이' 교육감 선거,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쓴소리 곧은소리]
2026.05.29 12:00
선관위 공약 검증·정책 토론 강화…'묻지마 투표' 막아야
진영 대리전 벗어나 교육 철학·미래 경쟁 중심으로 재편을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교육감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과 혼란은 이번에도 계속되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누가 어떤 성향의 후보인지' 한눈에 알기 어려운 교육감 선거 특성상, 의도치 않은 실수나 '깜깜이 백지 투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교육감 선거에서 쏟아져 나온 전국 무효표만 90만 표가 넘는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21만7449표로 서울시장 선거 무효표의 5배 이상이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는 19만6761표로 경기도지사 선거 무효표의 3배 이상이었다. 정당도, 기호도 없이 후보 이름만 적힌 투표용지 앞에서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 낮은 후보 인지도와 지방선거의 복잡함도 원인이었다.
"교육감 후보 잘 모르겠다" 60% 달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깜깜이 선거' 구조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58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서울은 보수·진보 진영이 갈라지며 역대 최다인 8명의 후보가 나왔다. 유권자들은 누구를 왜 찍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실제로 교육감 후보를 '잘 모르겠다'거나 '눈길이 안 간다'는 응답이 10명 중 6명(60%)에 달한다.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한 건 2006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이후다. 중앙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교실의 자율성을 지켜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결과는 초라하다.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던 약속은 사라졌고, 선거판은 진영 대리전으로 얼룩졌다. 진보 후보는 파란 점퍼를, 보수 후보는 빨간 점퍼를 입고 거리로 나선다. 당 마크만 가렸을 뿐 거대 양당 정치와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교육감 자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무대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다음 자리'를 위한 디딤돌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전직 의원, 장관, 청와대 참모들이 앞다퉈 뛰어든다. 교육 철학과 현장 전문성보다 이름값과 진영 대결이 표를 모으는 왜곡된 풍경이 굳어졌다.
후보들은 알맹이 있는 정책보다 '돈 풀기' 경쟁에 몰두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 정근식 후보는 만 3~5세 교육비 전액 지원, 1교실 2교사 배치, 초중고 버스·지하철 요금 지원 등을 내세웠다. 반면 보수진영 윤호상 후보는 초등 1학년 영어 수업, 유명 학원 강의 연계, 공립형 학원 설립, 야간·휴일 돌봄센터 운영 등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도 비슷하다. 안민석 후보는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100만원씩 지급하는 '씨앗펀드'를 공약했고, 임태희 후보는 지난해 372억원이 투입된 고3 운전면허 비용 지원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교실의 체질 개선보다 현금성·무상 공약으로 표심을 얻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각 지방 교육청 예산은 역대 최대 수준인 8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우리 아이 교실이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 돈 잔치가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의문이다.
교육감 권한은 막강하다. 학교 설립과 폐지, 교원 인사권, 교과서 선택, 수조원의 예산까지 좌우한다. 서울만 해도 학생 80만 명의 일상과 11조원의 예산이 교육감 손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후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하거나 익숙한 정당 색깔만 보고 선택한다. 이렇게 눈먼 투표 속에선 교실 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렵다.
교육자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중앙당의 공천권과 하향식 지배구조가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의 하부 조직으로 예속시키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약화됐다. 교육감 후보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진영 논리에 포섭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교육을 진영 논리에서 분리하는 게 중요
우리 지방자치는 주민 삶의 문제보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에 휘둘리고 있다. 중앙당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에 개입하고, 지방 일꾼들은 주민보다 중앙당 눈치를 본다. 지방선거가 지역 현안 해결의 장이 아니라 중앙 정치의 축소판이 된 이유다. 교육감 선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당 공천은 금지돼 있지만 실제로는 진보·보수 진영의 지원 속에 치러지고 있으며, 유권자들도 교육철학보다 정치 성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행정 구조의 비효율도 문제다. 교육청은 일반 지방행정과 분리돼 운영되지만 돌봄, 청년 정책, 지역 소멸, 취업 문제 등은 교육과 지방행정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교육청과 지자체는 정책과 예산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주민 참여 부족 역시 심각하다. 현재 교육자치는 교원과 교육행정가 중심의 공급자 체계에 머물러 있으며 학생·학부모·주민 참여 통로는 제한적이다.
5월9일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지방교육자치가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에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긍정 평가는 10% 남짓에 불과했다. 국민들이 지방교육자치의 효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교육감 직선제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찬반을 넘어 실질적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핵심은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주민 참여와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다. 우선 직선제를 유지한다면 유권자의 알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선거공보와 형식적 TV토론만으로는 후보의 철학과 역량을 검증하기 어렵다. 선거관리위원회 차원의 공적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 공약 재원과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교호순번제로 인한 혼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책 중심 비교가 가능하도록 공개 토론과 미디어 검증을 확대해야 한다. 선거 비용 문제도 손봐야 한다. 막대한 선거 비용은 결국 정치 세력 의존을 키운다. 온라인과 공공 미디어 중심 선거운동을 확대하고 후보 자격 요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러닝메이트제와 임명제 논의도 배제할 수 없다. 러닝메이트제는 교육행정과 일반행정 협력을 강화할 수 있고, 임명제는 행정 책임성과 정책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제도 모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진영 논리에서 분리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교육은 학령인구 감소, AI 확산, 교권 붕괴, 기초학력 저하, 지역 교육 격차라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이념 경쟁이 아니라 정책 경쟁이 필요하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다. 교육감 선거가 계속 '깜깜이 선거'와 '정치 대리전'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면 교육자치에 대한 국민 신뢰는 더욱 무너질 것이다. 이제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되살리면서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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