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2단계 협상 개시…'시장 개방' 유혹 뒤엔 '경제 안보'의 덫
2026.01.19 15:48
서비스·투자·금융 '골든타임' 확보할까
美 트럼프발 공급망 재편 속
'안미경중' 공식 붕괴
'독이 든 성배' 우려도
한·중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금융 부문 후속 협상을 벌인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된 협상을 통해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활동할 중국 서비스, 투자, 금융 시장을 열어젖히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은 10년 전 FTA 발효 당시와는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개방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경제 안보'에 대한 빗장을 걸어온데다, 한국도 트럼프 관세 정책과 그 이후의 미국과의 공급망 동맹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는 등 복잡함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권혜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오는 23일까지 베이징에서 린 펑 중국 상무부 국제사 사장과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지난 1월 5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연내 의미 있는 진전’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서비스, 투자, 금융 3개 분야에서 중국의 시장 개방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AI, 에듀테크, 헬스케어 등 2015년 FTA 첫 체결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신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 경제가 내수 중심의 소비 구조로 전환되면서,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종에 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급격한 고령화 때문에 의료와 실버 산업에 대한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며 “병원 경영, 요양 서비스 분야의 지분 제한이 완화될 경우 대규모 시장 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단계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탄소중립 기술과 환경 정화 서비스가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는 나라라서다.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 및 신재생 에너지 관련 컨설팅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수익화될 수 있는 구간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번 협상은 그 자체로 요소수 사태나 핵심 광물 수출 통제와 같은 돌발 변수를 FTA 틀 안에서 관리하는 ‘공급망 핫라인’을 구축한다는 의미도 적지 않다. 앞으로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 등 미래 산업의 표준을 제정할 때 중국과 협력하고, 중국과의 FTA에서 얻어낸 시장 개방 수준을 바탕으로 추후 다른 국가들과의 통상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와 현지 기업들 사이에서는 기대보다 우려 섞인 목소리가 더 높다. 2015년 한·중 FTA 발효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대외 환경과 중국의 이중적인 법적 규제가 한국 기업들에게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중국은 그동안 명목상 시장의 문은 열어주되, 실제 운영은 닫아거는 방식의 제한적 개방을 해왔다는 점에서다. 즉 서비스, 투자, 금융 등의 분야에서도 중국이 실제로 문을 열진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은 2020년 즈음부터 반(反)간첩법과 데이터보안법을 서서히 강화하고 있다. 금융이나 서비스업은 데이터의 흐름이 필수적인데, 이를 ‘국가 안보’라는 잣대로 통제하기 시작하면 2단계 FTA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실질적 시장 개방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일 중국이 외국인 금융회사 지분 제한 완화 등을 하더라도 현지 법인 설립 과정에서의 인허가 지연, 유통망 접근 차단, 국유기업 우선 정책 등 '국내 규제'를 통한 차별이 이뤄진다면 이는 FTA 협정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한국 국민과 기업들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문화·콘텐츠 분야 개방 역시 안갯속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얼음은 하루아침에 녹지 않는다”는 발언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최근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확대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문화 안보'를 이유로 외국 콘텐츠에 대한 검열의 칼날을 더욱 세우고 있다.
중국 정부의 한국산 게임 판호(版號·서비스 허가) 발급이 일부 재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기업과의 합작이나 IP(지식재산권) 공유를 조건으로 내거는 등 한국의 핵심 콘텐츠 경쟁력을 흡수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실질적인 방송 송출이나 공연 허가라는 대문은 닫아둔 채, 온라인 교류라는 '바늘구멍'만 열어주는 식의 협상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 희망 고문을 안겨줄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5년 FTA 1단계 발효 당시에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줄타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현 시점 미중 패권 경쟁은 무역 전쟁을 넘어 기술 및 체제 경쟁으로 확전됐고, 미국이 ‘대중국 견제망’에 동참하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어떻게든 2단계 협상이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전문가는 한중 2단계 FTA 협상은 시장 접근성 확대에 환호할 내용이 아니라 중국의 자의적인 법 집행으로부터 우리 기업과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성과주의에 매몰됐다간 자칫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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