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베네수엘라 침공에서 ‘5월 광주’ 떠올리는 이유
2026.01.19 07:54
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해제되지 않았다면 한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서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았을 것이다. 계엄 모의 전반에 깊숙이 개입한 민간인 노상원의 수첩엔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에 대한 납치·살해 음모로 의심되는 메모가 적혀 있다. 저항과 학살의 반복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시민들은 다시 미국을 기다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1980년 5월 광주로 오지 않았다. 만약 12·3 내란으로 참극이 벌어졌어도 오기 힘들었을 수 있다. 그 미군이 2026년 1월, 베네수엘라에 진입해 ‘니콜라스 마두로’라는 독재자를 제거했다. 사태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치닫는다. ‘마두로 없는 마두로 체제’다.
1월3일 새벽(현지 시각), 미군은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 등 이 나라의 주요 지역에 공습을 가했다. 방공망이 무력화된 사이에,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카라카스 남쪽의 군사기지에 숨은 마두로 부부를 덮쳤다. 마두로에게 수갑을 채운 미국인들은 연방수사국(FBI)과 마약단속국(DEA)의 수사관이었다. 미란다 원칙도 낭독했다. ‘군사작전’에 왜 수사관들이 참여했는가. 델타포스는 마치 수사관들의 체포영장 집행을 돕기 위해 마두로의 은신처로 침투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체포 즉시, 마두로는 마약 밀매 및 테러 연루 혐의로 미국 뉴욕으로 이송(?)되었다. 남미 ‘마약왕’을 처리하는 절차와 비슷했다. 전투기 150여 기를 동원한 트럼프의 ‘확고한 결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전부터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자유주의 국제질서(외국에 대한 군사 침공 금지)’를 옹호해온 유력 싱크탱크들 역시 ‘베네수엘라 문제만은 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초당파적 합의를 이루고 있었다.
〈포린 어페어스〉는 지난해 11월20일 엘리엇 에이브럼스의 기고문을 실었다. 〈포린 어페어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미국 외교협의회(CFR)가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지다. 에이브럼스는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 무기를 이란에 밀매한 돈으로 니카라과의 우파 반군을 지원하는 ‘더러운 전쟁’을 설계했다. ‘외교적 해결’과 ‘국제법 준수’를 강조하던 CFR이 ‘더러운 전쟁’의 상징인 에이브럼스에게 지면을 내준 것이다. 기고문에서 에이브럼스는 “(경제제재로) 단지 굶겨 약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군사적 타격으로 정권을 권좌에서 밀어내야 한다”라며 ‘베네수엘라 본토 타격’을 주장했다.
역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강조해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10년대 하반기부터 베네수엘라를 “초국가적 조직범죄를 국가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범죄화된 국가(criminalized state)’”로 규정했다. CSIS의 아메리카 총괄국장인 라이언 버그는 지난해 12월17일자 〈아메리카스 쿼터리(Americas Quarterly)〉(남·북아메리카 정세를 총괄하는 전문 계간지)에서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재건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그 전제는 ‘체제 전환(regime change)’, 즉 ‘마두로 제거’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30일 발간된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CRS)는 베네수엘라의 정치 탄압, 인도적 위기, 난민 상황 등을 열거한 뒤 “의회는 베네수엘라 내 ‘외국 테러 조직(FTO)’에 대한 미군 사용승인을 검토할 수 있다”라고 썼다. 의회 차원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 수행이 의제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제국주의적 본성을 드러낸 침략 야욕’으로 보기도 한다. 이미 미국 정부는 정보기관과 비자금을 동원해서 남미의 합법적 진보 성향 정부를 전복한 바 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칠레의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반란군과 싸우다 자결했다. 쿠데타의 주역인 피노체트는 이후 17년 동안 칠레를 통치하면서 시민 수만여 명을 구금·고문하고 그 일부(약 3000명)를 살해했다. 이 처참한 비극의 배후가 미국 정부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마두로는 아옌데가 아니다
그러나 마두로는 아옌데가 아니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마두로의 전임자인 우고 차베스는 민중에 대한 선의를 가진 지도자였다. 석유를 팔아서 번 돈으로 생필품 및 저가 주택 공급, 문맹 퇴치, 빈민촌 무료 진료소 설치 같은 복지정책을 펼쳤다. 원주민·흑인·빈민 등 소수자의 정치적 발언 통로도 넓혔으니 ‘정체성 정치’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차베스는 석유산업의 잉여 수익을 새로운 산업에 투자해서 국가 경제를 고도화할 구상은 없었다. 소비재는 수입해서 민중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수입 소비재의 국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베네수엘라 통화(볼리바르)의 달러 대비 가치를 높게 유지했다(자국 통화가치가 높을수록 수입품의 국내 가격은 하락한다). 단기적으론 민중들의 살림살이에 이로웠다. 장기적으론 그렇지 않았다. 볼리바르의 가치 상승은 베네수엘라 수출품의 국제가격을 높여 판매량을 줄인다.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은 수입 상품에 밀려 하락한다. 베네수엘라에선 공산품이나 농산물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비용이 오히려 저렴했다. 차베스의 ‘선의’는 이 나라 제조업과 농업의 씨를 말려버렸다.
차베스는 운이 좋았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기, 국제유가(WTI 기준)는 역사적인 상승세였다. 배럴당 20달러 수준에서 임기 중반엔 최고 147달러, 이후에도 100달러 안팎이었다.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한 직후 국제유가는 20~6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후계자인 마두로는 곤란해졌다. 경제 전체의 석유 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에서 유가 폭락은 가용한 정부 예산의 축소를 의미했다. 소비재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생필품 공급이 줄었다. 이는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마두로 정부는 묘안(?)을 냈다. ‘환율을 고정시켜버리자.’ 예컨대, 베네수엘라에서 10달러짜리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려면 1만 볼리바르를 줘야 했다고 치자(실제 시장환율이 ‘1달러=1000볼리바르’). 그런데 마두로가 공식 환율을 ‘1달러=100볼리바르’로 정하면서, 다르게 거래하면 처벌하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수입업자로서는 10달러짜리 미국산을 1만 볼리바르에 살 수밖에 없다. 그 이하로는 미국 수출업자가 팔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상인은 10달러짜리를 1만 볼리바르로 매입해서 1000볼리바르로 팔아야 한다(마진은 제외하는 것으로 가정). 한 개 팔 때마다 9000볼리바르씩 손해다. 상점에서 물건이 싹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국내 제조업체는 이미 망했다. 상품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은 몇 배로 치솟는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엔 어떻게 대응하나. 그렇지! 물건 가격이 오른 만큼 소비자들에게 돈을 더 주면 되겠네(통화량 증가).’ 믿기지 않을 정도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했다. 남미 특유의 문학 장르인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마술적 경제학’이다.
2010년대 중반 이 나라의 물가인상률은 연간 500~600%에 달했다. 1기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은 2017년부터였다. 베네수엘라 경제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제국주의’가 아니라 차베스-마두로 경제체제가 유가 폭락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제’가 한 일은 환자로부터 산소호흡기를 떼버린 것이다.
마두로가 집권한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80% 이상 감소했다. CRS가 유엔 등 여러 국제기구의 데이터를 활용해 보고한 바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베네수엘라 인구 2670만명 중 약 73.2%가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다. 인구의 790만명(28.6%)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더욱이 다른 800만여 명은 정치·경제적 이유로 다른 남미 국가나 미국 남부 지역을 떠도는 ‘난민’이 되었다.
장군들의 ‘태양의 카르텔’
마두로는 독재자였다. 그는 유력 야권 후보의 출마를 막았다(그중 한 명이 202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다). 투표소별 개표 결과도 공개하지 않는다. 투표소별 결과는 ‘부정선거 판독기’다. 투표소들의 개표를 합산한 수치가 전국 단위 선거의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내가 표 도둑이야’라는 고백과 다를 바 없다. 한국만 해도 읍·면·동 단위는 물론이고 그 아래 모든 투표구별로 각 후보자들의 득표수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2024년 7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는, 야권 운동원들이 목숨을 걸고 각 투표소의 개표 결과지(총투표의 83.5%)를 확보했다. 합산하니 ‘마두로 30% 대 에드문도 곤살레스(당시 야권연합 후보) 67%’였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마두로가 51%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는 총계만 발표한 채 투표소별 상세 데이터는 내놓지 않았다.
마두로는 이 대선을 치르기 전에 ‘유럽연합, 유엔 등 해외의 선거 감시단을 부르겠다’고 미국과 합의했다. 대신 경제제재를 유예받았다. 그러나 유력 후보인 마차도의 출마를 차단했다. 유럽연합과 유엔의 정식 감시단 입국은 허용하지 않았다. 남미 민주 정부들에 친화적이었던 미국의 카터 센터(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인권단체)만 불렀다. 그러나 선거 직후 카터 센터는 성명서에서 ‘베네수엘라 대선이 민주적 선거의 국제표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라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는 물론 바이든 정부도 마두로를 베네수엘라의 정당한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뿐 아니라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단도 보고서를 통해 마두로 정부의 살인·고문·성폭력 등 ‘반인도적 범죄’를 고발한 바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수사 중이다. 마두로를 아옌데와 비교하는 것은 아옌데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마두로를 납치한 가장 큰 명분은 독재가 아니라 그와 ‘테러조직’의 연루다. 미국 측이 베네수엘라의 테러조직으로 찍은 두 집단이 있다. 하나는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 베네수엘라에서는 국가의 교도소 통제 기능이 무너진 상태다.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 자율 통치 규범은 물론 수영장, 나이트클럽, 비트코인 채굴장까지 만들어놓고 외부의 범죄집단을 지휘한다. 수천 명 규모로 추정되는 조직원들은 인근 콜롬비아·페루·칠레뿐만 아니라 미국으로까지 밀입국해서 인신매매·납치·살인·마약 공급 등 중범죄를 저질렀다. 실존하는 조직이고 그 죄상도 낱낱이 입증된다. 다른 하나는,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Cartel de los Soles, 태양의 카르텔)’다. 공식 조직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군 장성, 마두로 친지 등의 마약 관련 범죄들이 여러 차례 적발되었다. 콜롬비아 마약이 베네수엘라 국경과 항구를 통과하려면 베네수엘라 군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용기, 대통령 전용 공항터미널, 국경 수비대 등이 마약 밀매에 활용되었다. ‘마두로가 콜롬비아 반군의 마약 수송로를 열어준 대가로 달러를 받아 군 장성들에게 뿌리거나 식량 수입 등 국가 운영비로 사용했다’는 증언이 베네수엘라 정보기관의 수장이나 대통령 경호실장으로부터 나왔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미국 측은 베네수엘라 군 장성들과 고위 관료들이 마약 밀매 네트워크로 엮여 있다고 주장하며, 그 네트워크에 ‘태양의 카르텔’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네수엘라 장군들은 어깨에 태양을 모사한 무늬를 단다.
‘트렌 데 아라과’와 ‘태양의 카르텔’은 베네수엘라 침공의 결정적 명분이었다. 미국 사법부는 마두로가 의도적으로 ‘트렌 데 아라과’ 조직원들을 미국 내에 침투시켜 사회 혼란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걸고 있다. 또한 ‘태양의 카르텔’엔 수많은 군 장성들이 연루된 만큼 군 통수권자인 마두로를 ‘수괴’로 지목할 수밖에 없다고 엮어냈다. 미국 사법부는 마두로를 기소해놓은 상태다. 현상금도 걸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나서 마약 밀매와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베네수엘라는 ‘정상 국가’가 아니라 ‘범죄화된 국가’ 혹은 ‘테러리스트와 마약 범죄자들의 소굴’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측 논리다.
그렇다면 ‘정의의 실천’은, 마두로를 미국 법정에 세우는 것. 그러나 마두로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다. 다른 나라 대통령을 강제로 데려오려면 전쟁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전쟁 도발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장 큰 금기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회원국은 무력으로 다른 국가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정치적 독립을 박탈할 수 없다. 다른 국가에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그 국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로 제한된다. 또한 국제관습법상 다른 나라의 현직 국가원수를 자국 법정에 형사피고인으로 세울 수 없다(국가원수 면책특권). 미국이 1940년대에 주도해서 정초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을 견제하는 규범이다.
이 규범에 따르면,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침략 범죄’다. 물론 미국 측이 마두로의 마약 밀매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가능하다. 그러나 마약 밀매는 ‘무력 공격’이 아니다. 그러니 국제법상 베네수엘라 침공을 일으킨 트럼프는 전범(戰犯)이 된다.
여기서 미국 측은 ‘법 기술’을 부린다. 우선 마두로의 국가원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었으니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역외 관할권(Extraterritorial Jurisdiction)’ 원칙을 확장했다. 원래 ‘역외 관할권’은, 냉전 시기 소련·중국 등 적국이 미국의 기술을 도입해서 미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 같은 제3국의 제품이라도 미국의 기술이나 부품이 포함되었다면 미국의 적들에게 팔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개념을 ‘미국인에게 마약을 판 자는 지구 어떤 나라에 거주하든 미국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로 확장했다. 이제 1월3일 미국 수사관이 델타포스와 함께 마두로의 은신처로 들어간 이유를 알 수 있다. 미국 측 논리에 따르면, 그날의 군사작전은 ‘전쟁’이 아니라 마약사범(형사범) 검거였다. 또한 미국 대법원엔 ‘커-프리스비 원칙(Ker-Frisbie Doctrine)’이라는 판례가 있다. 용의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 해도 일단 미국으로 데려오기만 하면, 그 수단이 납치든 고문이든 상관없이, 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법으로 보면, 미국의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 작전은 불법 침략이자 납치다. 그러나 미국 법에서는 합법으로 정당화된다. 마두로는 미국 법정에서 일개 마약사범 ‘니콜라스’로 관련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겨울
마두로는 독재자다. 마약 거래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 참여가 아니라 방관이라도) 관련되었을 정황이 있다. 카우보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같다. 이런 영화에서 보안관이나 정의의 방랑자는 거칠거나 편법을 사용하더라도 악당을 처치하고, 그 마을 사람들에게 빵과 자유를 돌려준다. 트럼프가 그렇게 보인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정의를 돌려줄 것인가? 그러나 트럼프는 절대 ‘포스트-마두로’ 시대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미국)가 이 나라를 운영(run)할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정상화될(fixed)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뿐이다. 미국 전쟁부(국방부) 관할인 〈펜타곤 뉴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1월3일 ‘마두로 확보’를 확인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네수엘라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이 나라를 운영할 그룹이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사실상의 보호령으로 두고 간접 통치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현지 협력자’는 누구로 선정했을까. 강력한 후보들이 있다. 지난 베네수엘라 대선의 사실상 승리자인 곤살레스. 트럼프는 그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마두로 정권과의 투쟁 경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차도. 그녀는 과격한 ‘시장자유주의자’로, 정권을 맡을 경우 ‘첫 100시간과 첫 100일’의 업무 청사진까지 트럼프에게 건넸다. 실제로 양보하진 않았으나 “노벨평화상은 트럼프가 받아야 한다”라고 립서비스도 퍼부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냉정하고 뻔뻔했다. “(마차도는) 매우 멋진 여성이지만 베네수엘라를 책임지기엔 너무 약해빠졌다. 베네수엘라에서 지지나 존경도 받지 못하고 있다.”
놀랍고 어이없지만, 트럼프가 지명한 현지 협력자는 차베스–마두로 체제의 핵심 중 핵심인 반미 강경파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1월5일 임시 대통령 취임)이었다. 친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최고 실세 남매’로 불린다. 마두로가 “나의 암호랑이”라고 부를 정도로 맹목적 충성을 바쳤다. 1월3일 직전까지 마두로의 금고지기로 서방의 제재망을 우회해 ‘검은돈’을 세탁해온 전문가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방금 로드리게스와 통화했고, 그녀는 베네수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MVGA: Make Venezuela Great Again) 일들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베네수엘라 정치체제는 ‘독재’에서 ‘미국의 괴뢰정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월5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CIA가 마두로 이후 “임시정부를 이끌며 단기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로 “델시 로드리게스 등 마두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꼽았다. 이 평가는 트럼프가 마차도 대신 로드리게스 지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빵과 자유, 민주주의를 돌려주려면 할 일이 많다. CSIS 라이언 버그 국장은 ‘경제제재의 신속 해제’ ‘공정선거를 통한 민주정부 구성’ ‘IMF 등 국제 금융기관들의 금융지원’ ‘미국-베네수엘라 무역협정’ ‘신속한 인프라 재건’ 등을 꼽은 바 있다. 트럼프는 이런 방안들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더니 1월6일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석유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이 나라의 석유 생산 시스템을 ‘가동 상태(up and running)’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그 수익을 상환받을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방대한 천연가스와 풍부한 광물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는 고작 ‘마두로 없는 마두로 체제’를 위해 ‘확고한 결의’를 보였던 것인가. 트럼프는 사모펀드 운용자처럼 베네수엘라를 대하고 있다. 그에게 베네수엘라는 민주화로 ‘테러리스트와 마약 범죄자들의 소굴’이라는 오명에서 해방시킬 국가 공동체라기보다 ‘경영권 분쟁 중인 부실기업’이다. 그는 마두로라는 무능한 CEO를 새로운 CEO(로드리게스)로 갈아 치우고, 주주(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배당금(석유 수익)을 약속했다. 또한 자신은 펀드 운용자로서 막대한 ‘성공보수(상환금)’를 챙기겠다고 공언했다.
1980년, 미국은 전두환을 용인했다. 그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는 대신 미국의 안보 이익(반공)은 확실히 지켜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터이다. 2026년, 미국은 마두로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로드리게스를 앉혔다. 독재자를 맹종한 자라면 새로운 주인의 이익도 착실히 챙겨줄 것이다.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시차를 두고 비슷한 사태를 겪고 있다.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자유’는 언제나 ‘미국의 이익’보다 뒷전이었다. 트럼프의 델타포스 부대와 수사관들이 베네수엘라에 가져다준 것은 ‘카라카스의 봄’이 아니라, 독재자가 그의 충복으로 교체된 ‘새로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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