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00㎞ 찍고 364㎞ … 새해에 달뜬 동해
2026.01.17 00:38
동해선 KTX 타보니
바다다. 지난 7일 동해선 부전발 KTX-이음 첫차. 자칭 ‘부전댁’이라는 할머니는 정말 ‘부산스러운’ 감탄사를 터뜨렸다. 처음 보는 바다도 아닐 텐데. “KTX는 난생처음이야. 아들이 좋은 거 타고 강릉 다녀오라고 끊어줬어. 아재는 어디서 왔누?”
KTX도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동해선에 투입됐다. 열흘도 안 됐으니, 부전댁의 발은 빠른 편이었다. KTX에 몸을 싣고, 때로는 국도 제7호선과 지난해 11월 개통한 포항영덕고속도로 신세도 지며 동해선 역들과 그 근처를 속속 들어가 봤다. 가볼 만한 곳도 새로 뜨고 있었다.
동해선이라지만, 동해가 안 보이는 구간이 더 많다. 그래도 바다 조망 구간이 얼추 3할을 넘는다. 야구로 치면 강타자다. 동해선 개통 전에도 운행 중이던 강릉~삼척 구간 중 정동진·추암·삼척해변역은 알아주는 곳이다. ‘레알 동해선’ 구간에서는 이곳 월포역과 고래불역·울진역·근덕역을 지날 땐 눈을 좀 더 크게 떠야 한다. 바다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바다 쪽 창가자리 D열 표를 구하지 못한 부전댁은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다.
해서 올라가니 곤륜산(177m) 정상. 웬 그린이 펼쳐져 있다.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다. 시내(포항)에서 왔다는 남성이 “패러글라이딩장이 있는 만큼 조망이 워낙 좋아 숨겨진 일출 명소”라고 했다. 한 문화관광해설사는 “정동진·호미곶도 있지만 사실 동해선 어느 곳이나 일출 명소인데, 열차 안에서 맞이하는 일출도 좋다”고 추천했다. 그런데 동해선 KTX 안에서는 일출을 볼 수 없다. 하루 왕복 6회만 운행하는데, 첫 열차 출발이 일출 뒤인 오전 7시50분(상행)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뜨는 누리로(하행)나 ITX-마음(상·하행) 첫차라면 가능하다.
영덕의 과메기 자부심은 대단하다. 메뉴판에 ‘청어’를 꼭 붙인다. 해맞이공원 남쪽 창포리. “우린 청어만 계속 써요. 잘 안 잡힐 때도 꽁치를 쓰지 않았죠.”(거북바위 횟집 정옥자 사장) 청어 과메기는 감칠맛과 바다향이 강하고, 꽁치 과메기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쫄깃하다. 원조 논란도 있지만, 취향대로 먹는 게 정답이다. 영덕역 모양새가 해변이다. 영덕 대표를 넘어 국가대표급으로 꼽히는 고래불해변에서 따왔다.
고래불역. 이름도 곱다. 안성기·김수철 주연의 영화 ‘고래사냥’ 속 ‘예쁜 고래 한 마리’가 아닐까. 역 안에 고래 몇 마리가 노닌다. 미술 작품으로 바닥과 벽, 천장에 있다. 밖에서 본 역 형상도 고래다.
고려의 이색이 이곳 상대산(184m) 정상 관어대에 올랐단다. 고래가 물을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뻘’이라 했다. 그래서 고래불이다. 관어대에서 고래불해변 4.8㎞가 펼쳐진다. 그래서 ‘명사십리’도 아니고 ‘명사20리’라는 애칭이 붙었다. 관어대는 현재 보수공사 중. 6월까지다. 고래불역 환경관리원 이순자(60)씨는 “동해선 중심이 바로 고래불역”이라고 추켜세웠다. 동해선 역은 모두 34곳. 부전에서 17번째, 한가운데가 고래불역이다. 이 역에는 홍보대사도 있다. 배우 송지효다.
현재는 경부선이나 강릉선을 타고 각각 부산이나 강릉에서 ‘환승’해야 동해선을 탈 수 있다. 철도노선 경부선-동해선-강릉선 노선이 삼각형으로 이어져 ‘철의 삼각 여행’이라고도 한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철도 구조로는 환승 없이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철도 운영상의 문제”라고 했다. 후포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등기산스카이워크는 올 새해 일출 인파가 몰릴 정도로 인기다. 스카이워크 아래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가 있다. 파도가 묘하게 빚은 영험한 바위다.
울진대게와 영덕대게는 다를까. 대게의 주요 서식처는 울진 왕돌초 인근과 울릉도·독도 해역. 어선이 영덕 강구항과 축산항에 입항해 팔면 영덕대게이고, 울진 후포항과 죽변항에서 유통하면 울진대게다. 너도나도 같은 대게다.
“서울서도 직행열차 생기면 좋겠어요”
KTX-이음은 2021년부터 고속철도에 투입됐다. 최고 시속 260㎞까지 낼 수 있는 ‘준고속열차’다. 동해선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포항~삼척 구간에서 시속 200㎞까지만 찍었다. 단선 구간이고 설계속도 자체가 시속 200㎞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을 지날 때 서행을 반복한다. 기존 누리로와 ITX-마음으로 최고 시속 150㎞로 5시간 걸리던 길이 3시간 50분대로 줄었는데, 당초 목표는 2시간 30분대였다. 열차는 속도를 다시 늦췄다. 삼척역이다.
남쪽에서 들렀던 곤륜산·등기산·상대산이 그렇듯, 삼척 덕봉산(54m)도 해변에 난데없이 난 산이다. 찐빵처럼 봉긋하다. “사실은 섬이지. 산이 아니라.” 삼척 토박이 이모(70)씨의 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덕산도’라 불렀으니, 원래 섬이었고 해안가에 모래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덕봉산 북쪽은 BTS가 찾은 맹방해변, 남쪽은 섬 이름을 가져온 덕산해변이다. 바다에서 몸을 솟구친 기암괴석이 춤춘다.
추암역에서 KTX는 바다와 한껏 가까워진다. 추암촛대바위가 저 너머에 있다. 동해안의 촛대바위는 두 개. 이미 지나온 삼척에도 초곡 용굴촛대바위가 있다. 울진 대게와 영덕 대게, 포항 과메기와 영덕 과메기처럼 경쟁과 상생의 관계가 된 동해 명물이다.
KTX는 강릉역까지 11개 역에 정차했다. 그리고 다시 남행 준비. 부전댁은 “내려갈 때는 바다 쪽 D열 표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좌석 변경이 가능할까. 동해선 KTX 예매율이 100%를 넘는데….
영화 ‘고래사냥’ 마지막 장면은 동해다. 촬영 장소가 양양 남애항. 현재 동해선은 그곳에 닿지 않지만, 2년 뒤에는 이어진다. 그때는 ‘더 빨라진 동해선’을 탈 수 있을까.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노래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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